나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학교갈 준비를 하고 차를 탔다. 3월 초 광저우의 아침은 벌써 햇살이 강렬하다. 집에서 약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다 보니 네비게이션에서 목적지에
거의 다 도착하고 있다는 음성 메시지가 흘러 나왔고, 음성 메시지가 끝나자마자 학교 정문에 차가 도착하였다.
그 날은 한국학교에 처음 등교하는 날이었다. 나는 국제학교를 3년 넘게 다니다 전학을 하게 되었고, 학교가 광저우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전에 다니던 국제학교와 주변 환경은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에게는 큰 기대감이나 학교생활에 대한 의욕이 있었다기보다, 단지 학교에 나가는 하루일 뿐, 큰 의미는 없었던 것 같다. 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선생님과 학생이 달랐고, 한글이 눈에 많이 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첫날을 보내고, 매일 등하교를 반복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벌써 6월 중순이 되었다. 학교생활에도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있다.
내가 처음 광저우에 온 것은 2018년 초였다. 국제학교 7학년(한국 중학교 1학년)에 전학을 하였고, 그곳에서 약 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국제학교에서 누릴 수 있는 외국어
학습, 국제학교에서 만날 수 있는 외국 친구들 그리고 다양한 교외 경험들을 기대하며 시작했던 국제학교 생활을 돌이켜 보면, 적응하기 위해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공부량을
소화하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생활하는 법을 익혔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또한, 국제학교 생활은 나에게 사춘기의 시작과 끝을 보낸, 힘들고 지친 생활이 계속되는 시간이었다. 영어
학습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국제학교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즈음, 나는 처음에 국제학교 생활에서 기대했던 자유분방함, 다양한 교외
활동에 대한 기대감을 성취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지난 3년간 무엇을 배웠고 얻었는가에 대한 혼란스러움이 머릿속에 가득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 한국학교로
등교하는 날은 복잡한 마음과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가득했지만, 학교생활에서 무언가를 얻고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다는 기대감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4개월 가까이 지난 지금, 국제학교에서 한국학교로 전학한 것 외에는 크게 달라진 점이 없는데도, 나는 수업 시간에 임할 때나 심지어 방과후 학원에 가서도 집중력이 몰라보게
높아진 것 같은 신기한 느낌을 받고 있다. 한번은 저녁 식사 시간에 부모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남동생이 “누나 예전보다 많이 똑똑해진 것 같아, 맞지 않아, 엄마?”라고 해서
가족 모두 크게 웃었던 일이 있었다. 부모님도 우리 딸 요즘 공부 열심히 하는 것 같다며 우스갯소리를 하셨다. 나는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정말로 내가 변했나 하는 기분에
들떴던 기억이 있다.
3월부터 한국학교 생활을 하면서 속마음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들도 생겼고, 힘들기는 했어도 중간고사와 수행평가 등을 치르면서 학교에 적응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내심 뿌듯함을
느낀다. 영어를 제외하면 모든 과목을 처음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는 느낌도 있어 즐겁고, 특히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학교생활을 통해 국제학교를 다니면서
떨어졌던 자신감이 높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6월 16일은 고3 선배들의 출정식이 있었던 날이다. 입시를 위해 한국으로 출발하는 선배들을 위한 환송의 의미로 한국학교에서는 매년 있었던 행사였다고 한다. 전 학년이 모두
참석하여 마지막 대학 입시를 위해 출발하는 선배들을 응원하는 자리였는데, 나는 혼자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국제학교에서 개인만을 위해 생각하고 공부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제
누군가를 위해 힘껏 응원하고 파이팅을 외칠 수 있고, 서로 힘을 보탤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학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광저우 한국학교의 설립부터
현재까지 많은 분이 헌신과 노력이 있었다는 점과 지금도 한국학교 발전을 위해 기부를 이어가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광저우에 사는 한국 사람들에게 한국학교는 단순한 교육
기관이 아닌 떠나 있는 나라를 생각하게 하고, 무언가를 간접적으로 해줄 수 있다는 뿌듯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국제학교 생활을 하면서 외국어를 익힌다는 큰 경험을 할 수 있었지만, 사춘기를 보내면서 나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것은 친구들, 선생님과의 소통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광저우
한국학교는 내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광저우 한국학교는 내가 어른이 되어 갈
때 무언가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곳, 나의 꿈을 준비하는 모든 것이 되어 줄 수 있는 곳 같다.
김 수 민 광저우 한국학교 11학년 2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