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불안과 공포 속에서 불가능할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한국어 클래스가 2020년 11월 20일 몬트레이 카운티에서도 시작되었다.
”The language capital of the world ”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몬트레이 시는 통역대학원으로 널리 알려진 미들베리 국제학 대학원(Middlebury
Institute of International Studies)과 미 국방 외국어 대학(Defense Language Institute) 그리고 미 해군 대학원(Naval
Postgraduate School) 등이 위치해 있는 교육도시이다.
지역의 특수성 때문인지 몰라도 수업에 등록한 학생들의 배경과 학습 동기는 매우 다양했다. 학생들의 공통점은 딱 한 가지, 한국어 읽고 쓰기를 배워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Zoom을 이용한 비대면 수업 환경에서 읽고 쓰고 말하기를 짧은 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해내기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수업하기 일주일 전에 숙제로 내주었던 영어 네이티브
스피커가 제작한 한국어 대화 비디오 영상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대한 학생들의 두려움을 해소시켜주었다. 아이들용으로 제작된 노래가 포함된 한글 비디오 영상, 짧은 드라마의
장면들, 그리고 K-pop 등은 학생들로 하여금 금요일 오후 수업시간을 기다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수업 전에 쓰기 숙제를 컴퓨터 화면으로 보여주는 학생들을 볼 때면, 성인들을
초등학생처럼 대하는 내가 좀 미안하기까지 했다. 한 세션이 끝날 때마다 스페셜 이벤트로 무김치 만들기, 아리랑 노래 배우기, 호박전 만들기 등이 이뤄졌다. 학생들은 “이 행사가
교사 중심 수업(teacher-centered learning)이 아닌 학생 중심 수업(student-centered learning)으로 진행된 것에 대해 온라인수업의 한계를
극복한 가치 있는 수업이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벤트를 준비할 때는 무의 영양학적 가치와 효능 등을 소개하며 언어뿐만 아니라 건강 정보나 지식 전달에 소홀하지 않았다.
한국음식점에서 맛있게 먹어봤던 음식에 대해 배운 학생들은 행사 후 “뭔가를 많이 배운 것 같다”며 뿌듯함을 표현했다.
또한, 이번 수업도 다른 어느 수업과 마찬가지로 교사 중심 수업이 아닌 학생 중심 수업이 될 수 있도록 나는 강사(instructor)가 아닌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알려주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가끔 혼자 떠들어대는 교사 중심 수업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반성하며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에 친숙한 수업환경을 만들기 위해 항상
깨어있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많은 것을 준비하며 학생들과 함께했던 몬트레이 성인반 한국어 클래스를 6월 11일에 마무리하면서 가장 우수한 학생이 누구였는지를 생각해보았다. 한국의 K-Beauty를
좋아한다며 설화수 화장품과 마스크를 보여주던 인공지능회사에 다니는 컴퓨터 사이언티스트,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한국교포와 결혼해 언젠가는 한국에 가게 될지도 몰라 간단한 회화를
배우고 싶어 온 학생, 케냐에서 미국으로 이민 와 배달 일을 하며 시간상 이유로 한국성당에서 한국어 미사를 드리며 한국말을 배우고 싶어 등록한 학생, “선생님, 한국남자는 왜
이렇게 다 귀여워요?”하며 K-pop과 K-drama에 푹 빠진 학생, 열성 BTS 팬인 학생들, 어렸을 때 미국가정에 입양되어 자란 한국인 모습을 가진 미국인, 최근에 등록한
초등학생과 중학생. 학생들은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한국어와 문화를 배우려는 그들의 눈빛은 항상 진지했다. 모두가 일을 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내어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우수한
학생들이었지만, 특히 75세의 스탠리라는 학생에게 나는 “최우수 학생 상”을 주고 싶다.
귀에 보청기를 끼며 수업을 듣는 데도 7개월 동안 결석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스탠리는 젊은 시절 미군 육군으로 잠깐 한국에 파견을 나갔고, 그 이후 한국인 여성을 아내로 맞이해
45년째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의 평범한 할아버지이다. “아파, 매워, 맛있어” 등 간단한 표현 몇 가지는 자연스럽게 나오지만, 낫 놓고 기역자를 모른다는 속담을
적용할 만큼 몇 개월을 배웠음에도 스탠리에게 한글을 읽기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스탠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재택근무로 집에서 일하면서 쉬는 시간마다 아내에게 물어봐서
배우는 한국말! 가끔 잘 못한다고 구박도 받지만 창피하진 않다. 젊었을 때 아내에게 친절히 영어를 가르치지 못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한국어 자음을 배우고 난 후 이제야 와이프가 왜
특정발음을 혼돈하며 발음하지 못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소설가 엔젤라 카터가 말한 “Language is power”를 매일 체험하고 있다는 스탠리는 한국어를 배우면서
그동안 단절되었던 대화가 서서히 풀림을 느낀다며, 무엇보다도 아내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한다.
한 은 희 샌프란시스코한국교육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