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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문화 역량의 의미와 가치

해외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해 살아가는 재외동포 사회는 글로벌 네크워크 속에서 활동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하나의 울타리 속에서 지내는 재외동포 사회가 건강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모두가 문화 차이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감수성을 갖추어야 한다. 최근 들어 문화 간 소통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것도 피아 구분에서 벗어나 문화적 공존과 차이를 인정하며 서로가 나눔의 공동체를 구성하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
나눔의 공동체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00끼리’라는 정체성의 담장을 넘어 ‘다 함께’라는 소통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소통은 말이나 행동을 통해 나와 너가 의사를 주고받는 것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인간의 마음이나 정을 함께 나누는 상황까지도 포함된다. 그렇게 보면 소통만큼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인간은 소통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그저 분리된 개인으로 존재하지만, 소통이 이루어지는 순간에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우리’가 된다. 그동안 한국인들은 이러한 소통의 자질을 그냥 개인적 성격이나 인품 정도로 생각하며, 교육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들어서는 이런 자질도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으로 개발해야 할 핵심 역량으로 인식된다. 더구나 사회가 다문화 공간으로 바뀌면서 문화간 소통역량을 갖출 필요성이 제기되는데, 이것을 별도로 ‘상호문화 역량’이라 부른다. 상호문화 역량은 다양한 문화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는 오늘날 모든 시민이 갖춰야 할 기본적 자질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상호문화 역량은 다문화 역량보다 인간관계와 의사소통을 더 강조한 용어로 간주된다. 유럽에서는 ‘다문화’와 ‘상호문화’를 구분하여, ‘다문화’는 현상적 사실을 지칭할 때(예: 다문화 사회), ‘상호문화’는 추구하는 목표나 가치를 표현할 때(예: 상호문화 역량) 사용한다. 이러한 상호문화 역량은 다른 문화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가치체계와 의사소통 맥락에 적절하게 행동 및 소통하면서 그들과 유익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자질이다.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다른 문화 배경을 가진 파트너와 상호행위를 수행함에 있어, 타 집단에 통용되는 사회규범과 행동 규칙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자신과 파트너의 목표를 함께 실현하고 상호행위의 결과를 효과적으로 창출할 때, 그는 상호문화 역량을 갖추었다고 말한다.
재외동포 사회에서 상호문화 역량은 이주민과 원주민이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여기에 맞게 행동하는 자질, 다문화 상황에서 구사하는 언어 능력,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태도를 두루 포함한다. 한국인끼리는 세상사를 이해하는 같은 바탕을 지니기 때문에 비교적 문제없이 소통이 이루어지지만, 원주민과의 교류는 문화적 배경이 다르다 보니 의도한 바와 달리 여러 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리하여 재외동포 사회는 외국어 구사 능력뿐 아니라 서로 다름을 존중하는 상호문화 역량을 함께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상호문화 역량을 갖추는 것은 나의 삶을 더욱 행복하고 풍부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라 한다. 인간은 낯선 현상을 만나면서 익숙한 부분을 되돌아보고, 이를 통해 사고와 경험을 확대해 간다는 점에서, 낯섦의 경험은 생각과 행동의 깊이를 더해가는 데 필요한 정신의 자양분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늘 보아온 익숙한 현상만 접해서는 자신을 진정으로 관찰하기 어렵다. 인간의 정신 활동은 낯선 것을 통해 자신의 것을 새롭게 인식하고 여기에 익숙해지는 과정이기에, 참다운 정신적 성장을 위해서는 낯선 것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려는 마음가짐을 늘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인간의 창의성 역시 고정된 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과 낯선 것 사이에서 잉태되기 때문에, 다문화적 환경은 창의적 사고를 펼치는 데에도 중요한 기반이 된다. 다양성의 아름다움, 사이의 미학을 통해 세상의 여러 가지 이치들을 새롭게 발견하는 즐거움은 재외동포 사회가 누리는 큰 축복이라 할 수 있다.

정리하면, 상호문화 역량은 남을 통해 나를 다시 보고 존재의 가치를 남에게서도 느끼게 하는 공동체의 참모습이며 더 높은 성장의 디딤돌이 된다. 이는 자신이 소중한 만큼 모든 사람이 다 소중하다는 마음가짐을 갖는 데서 출발한다. 독일에 사는 터키계 이주가정의 삶을 그린 소설 『별을 잡아먹는 보름달』(D. 잡츠올로 作)은 문화적 나눔과 공존을 갈구하는 인간의 소망을 ‘반달’로 상징화하고 있다. 포동포동한 보름달의 이면에는 빛을 잃은 수많은 별들의 아픔이 숨어 있다. 반면에 반달은 항상 겸손하게 다른 사람들의 자리를 배려해주는 나눔의 덕을 실천한다. 인간은 누구나 풍성하고 가득 찬 보름달이 되고 싶어 하지만 완전히 가득 찬 상태에서는 이웃을 진정으로 돌아보기 어렵다. 반달의 겸손함을 가지고 주위를 바라보며, 세상살이에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에게 조용히 자신의 마음과 관심을 전하는 것, 이는 글로벌 네트워크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자세라 하겠다.

권 오 현 서울대학교 교수, 교육부 재외교육지원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