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채택교사와 한국 교육원 강사로 있는 김진해입니다.
어느덧 일 년을 훌쩍 넘게 영상수업으로 진행하면서 나 자신만의 요령을 쌓은 것 같다. YouTube의 “유”도 몰랐던 나에게 이런 담대함은 역시 우리 학생들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서로 다른 나이에, 다른 학년에서 쏟아지는 다양한 상황들은 한정된 노트북 사각형에서 해결을 했어야만 했다.
끝도 없는 정보를 한 손에 쥐고 내 마음껏 주물러 한없이 학생들에게 퍼붓고자 했던 각오는 씩씩하게 의자에 앉는 순간부터 어려움이 닥치기 시작했다.
먼지만 뽀얗게 쌓여있던 사무실용 꽤나 비싼 의자가 곤욕 그 자체였다. 하루 10~14시간을 앉아있노라니 엉덩이 근육이 호소를 한다. 방석을 두세 겹 깔고 자동차용 특수 방울 방석을
배치했건만 온몸이 슬슬 비틀어지면서 다리가 책상 밑에서 옆으로 빠져간다. 고민 끝에 막내 아이의 최신용 의자를 대신 놓고 안마용 발받침을 두어 완전 무장했다.
소박하고 볼품없었던 내 컴퓨터 책상이 이젠 가족사진, 달력, 스케줄러, 온갖 연필, 볼펜, 형광펜으로 손바닥 디딜 틈도 없다. 아무래도 따뜻한 차 한 잔은 만만치 않은 이 브라질
상파울루의 날씨엔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일 것이다.
이 정도의 장비로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이해하겠는가. 가르침에 뿌듯한 이 황홀함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 교육자들의 사명일 것이다.
먼저 현재 가르치고 있는 브라질 주정부 공립 과학 고등학교의 사례를 나누고자 한다.
지금 한창 사춘기를 벗어나 의젓한 대학생을 꿈꾸는 15~16살의 이 학생들은 말 그대로 야생마들이다. 엘리트란 학생 신분으로, 처음 한국어와 문화를 접하는 이들에게는 자칫 극과
극을 유도할 수 있음을 느낀다. 뚜렷한 목적과 자신들에게 미치는 구체적인 혜택이 없어 보일 땐 단호하게 등을 돌리는 차가운 행동의 장본인들이다.
머나먼 한국의 부채춤, 김치, K-Tiger, 짜파구리, 삼성, 한복... 한글이 왜 필요할까? 어떻게 해야 절실한 필요함을 인식하게 해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해답이 온다.
한국전쟁후의 50~60년대 사진들을 오늘날의 화려한 현황과 나란히 비추어보면, 학생들의 그 어떤 경제, 정치, 사회 논리도, 가치관도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게 된다. 모음, 자음,
받침을 더듬더듬 읽어 내려가면서도 부러움과 존경심의 눈초리가 서슴없이 묻혀 나온다.
한류의 거센 파도보다, BTS의 세계적인 인기보다, 엽기적인 한국의 발전이 이들 젊은이에게는 더 흥미로워 보인다. 한글을 배우려는 것보다 한국을 알아가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다음은 브라질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기초반을 담당하는 나에게 다가오는 또 하나의 도전을 공유하고 싶다.
자영사업자들부터 의사, 교수, 과학자까지 한국어 학생의 신분으로 구성된 야간 강의반은 그야말로 혼합형 공부반이다. 각자의 관심사와 시각이 다른 환경에서 한국어, 즉 한국에 초점을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다양한 문화 테마로 학생들의 주의를 모으기란 거기에 따른 모든 배경과 역사를 세밀하게 소개해야만 했다. 나 자신도 전혀 몰랐던 우리 쇠젓가락에 숨은 역사적
스토리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던 이야기보다 더 흥미진진해 보였다.
세계 방방곡곡에 펼쳐진 한국어 강의 영상을 토대로 날카로운 질문들이 날아오는가 하면 “쉽게 틀리는 우리의 말”까지 총동원해 따발총처럼 불을 뿜는다.
120분 동안 진행되는 강의에 어디 몰래 숨어 답을 찾을 수도 없는 처지다. 모든 상황을 추측해 수업을 준비하자면 두세 배로 시간이 소비된다. 학생을 위한 것인지 나를 위한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영상 수업은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도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 어렵지만 보람차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내 앞에 놓인 시계는 오후 10시이다. 벌써 15시간째 막내 의자에
앉아있다. 엉덩이는 뻐근하지만 마음은 시원하다.
김 진 해 주상파울루한국교육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