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기에는 비슷하게 보일 수 있으나 각 교실의 색깔은 백이면 백, 모두 다릅니다. 세상에는 중요한 덕목과 가치들이 너무나 많고, 지켜야 할 규칙은 수십, 수백 가지이지요. 그중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하나도 없기에 작은 사회인 학급을 운영하면서 교사마다 우선순위로 두는 것이 조금씩 다르며, 그에 따라 학급경영의 모습은 판이하게 달라지기도 합니다.
저는 그중 ‘참여와 선택’에 대한 가치를 두고 있는 편입니다. 내 교실이 아니라 학생들의 교실이기를, 학생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교실이기를 바랍니다. 우스갯소리로 초등교사는 교실의
왕이며, 입법/사법/행정권을 다 가지고 있다고들 합니다. 한 주에 적게는 17시간부터 많게는 24~25시간을 함께하기도 하니, 시간으로 보아도 담임의 영향력이 큰 편이지요. 그리고
초등학생은(특히 저학년일수록) 선생님의 말을 잘 듣고 싶어 합니다. 선생님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착한 어린이이고, 선생님의 말이 곧 규칙입니다. 그 규칙이 왜 필요한지 고민하지
않고 선생님이 지키라고 했으니 그게 규칙이라고 말하는 어린이도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행복한 교실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더욱 스스로 고민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정기적으로 학급회의를 열어 ‘선생님~ 이거 해주세요.’ 하고 얘기하던 사항을 같이 이야기하고 스스로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이 과정은 무척이나 비효율적이고, 갈등을 낳기도 하며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도 참여의 중요성을 느끼고 선택에 책임지게 됩니다. 규칙적으로 학급회의를 열면 교사를 조르기보다는 학생들도
어떻게 의견을 내야 효과적인지 생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정기적인 학급회의 외에도 정치교실이라는 프로젝트를 운영하기도 했는데, 이는 ‘EBS 다큐프라임 – 학교의 고백 5부’의 내용을 차용한 것입니다. 저는 학급 운영방법으로도
사용했지만, 6학년 사회 ‘정치’ 단원과 관련지어 프로젝트 학습으로 운영했을 때도 효과적이었기에 자세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행복한 학교 만들기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여러 대답이 나오면 그 대답을 크게 그룹화해서 묶습니다. (초등학생의 경우 체육/급식/자유시간 등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각 대답에 대한 생각이 같은 사람끼리 모여 앉게 하고, 이를 정당으로 칭합니다. 각
그룹은 정당의 이름을 만들고, 구체적으로 학교에서 어떤 것이 바뀌면 좋겠는지 말하도록 합니다. 이때 선거에서 이기면 학급에서 실현한다고 하거나 학교에 말할 기회를 부여한다고 하면 자연히 동기부여가 됩니다.
정당에서는 당 대표와 대변인을 선출합니다. 당원으로서 함께하고 싶은 사람은 공약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그 밖의 학생들은 언론(기자, 카메라맨), 선거관리위원회의 역할을 주었습니다. 언론은 여러 정당을
돌아다니면서 기사를 쓰고,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에 대한 규칙과 시행방안을 마련하도록 합니다.
최종 결정된 공약 포스터는 복도에 게시하고, 정책토론회 시간도 갖습니다. 정책토론회에서 대표와 대변인은 공약과 그 이유에 대해 발표하고, 질의응답을 받습니다. 투표권의 범위는 설정하기 나름입니다. 활동과 투표
모두 학급 내에서 해도 되고, 정책토론회를 참관하게 하고 투표만 해당 학년 학생들이 투표를 하도록 해도 됩니다. 이렇게 결정된 공약에 따라 활동을 하도록 하거나, 영양 선생님이나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
이야기하도록 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실제 정치과정의 많은 부분(탈당, 당 대표 교체, 창당, 로비(?)와 선관위의 제재)이 자연스럽게 표출된다는 점입니다. 뉴스에 나오는 것으로 막연하게 인식하던 정치가 아이들의 ‘의사결정과정’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제게 ‘오늘도 체육해요!’라고 조르던 때보다 ‘이게 정말 필요할까? 실현 가능성이 있을까? 설득력이 있을까?’를 고민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의 행복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어린이들을 보며 제 의견 중심으로만 끌고 갔던 모습이 떠올라 사실 조금 뜨끔하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정보와 가치들이 혼재하고 급속한 사회적 변화가 이루어지는 오늘날, 참여와 선택의 경험을 밑거름 삼아 자기 자신과 우리, 그리고 사회의 행복에 대해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사람으로 자라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류 수 연 Sekolah Menengah Sains Tuanku Aishah Rohani 한국어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