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란 주파라과이한국교육원 한국어 강사
주파라과이한국교육원은 유치부에서 고등부까지 사용할 수 있는 교재를 자체개발하여 각 학년에 맞추어 선별, 사용하고 있다. 다양한 컨텐츠로 학생들의 관심과 흥미가 유발되도록 알차게 구성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막상 학생들의 열의가 교재에 담긴 우리 교사들의 것들과 마냥 비례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내가 아닌 다른 교사들에게 2년, 3년을 배웠을 학생들을 이어서 가르치려고 수업을 시작해보면 망연할 때가 있다. 자음과 모음의 위치조차 몰라서 엉뚱한 곳에다가 모음을 써놓고 만다. 태극기, 무궁화의 이미지를 보고서도 북한의 국기냐고 질문도 한다. 그런데 배움의 햇수가 오래됐다는 이유를 들며 전 단계의 교재를 사용하려는 나의 모습에 도리질을 해댄다. 마음 같아서는 유치부에서 사용하는 기초 컨텐츠를 긁어와서 사용하고 싶지만 이럴 때 나는 <추출과 병합>이라는 한 프로그램의 기능을 사용한다. 개별화, 차별화된 교재를 간단하고 쉽게 만들 수가 있다. 알PDF의 여러 기능 중 PDF병합 기능은 원하는 교재 중의 파일을 준비한 후. 각 학년의 한국어 수준에 맞추어 낱장으로 추출한 파일을 순서대로 첨부한 후 적용하기까지 고작 3~5초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는다. 이 최적화된 교재는 유치부 교재의 파일을 끌어오거나 1단계에 실린 자음과 모음의 구성 방법 같은 상당히 기초적인 부분을 끌어와 만들었어도 학생들은 새로운 교재로 인식하여 안 하겠다면서 저어대던 고개를 바꾸어 수긍의 고갯짓하며 힘차게 교사를 따라온다. 하지만 이렇게 만든 교재의 내용에 돌발 상황도 발생한다. 하지만 걱정 필요 없다. 수정할 부분이 발생해도 <한글파일로 변환하기> 기능을 사용하여 원하는 부분을 수정한 후 다시 PDF로 변환, 병합하면 또 다른 멋진 교재가 만들어진다. 이런 준비를 위해서 사실 교사는 교육원의 교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숙지가 반드시 앞서야 함을 잊어선 안 된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수준의 특화된 교재를 들고 출근하는 길의 뿌듯함은 힘듦과 피곤함을 눌러 적극적으로 도전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제비처럼 입을 벌려 가,나,다,라, 나무, 곰, 병아리 등의 한글을 줄줄 읽는 모습에 그만 나도 모르게 콧날이 시큰해진다.
다음은 한국어 강좌에 대한 이야기다. 앞서 설명한 현지 초, 중, 고등학교의 채택교 교육은 교사가 직접 발로 뛰어 찾아가는 모습이라면 한국어 강좌 반은 거꾸로 학생들이 교사가 있는 교육원으로 찾아와서 한글을 배우는 모습이다. 열의와 정성이 현지 채택교 학생들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지난 1학기 때 나는 토픽2의 강좌를 맡게 됐다. 첫날 강의는 많이 힘들었다. 우리 한국인들이 자연스레 이해하는 관용어구나 사자성어 등의 교육이 말처럼 쉽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53번의 쓰기 문제는 눈앞이 캄캄할 정도였다. 파라과이 현지 대학의 한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한 학생들도 와서 강의를 듣던데 한자에 대해서는 거의 이해를 못 하는 수준이었다. 잠이 오질 않았다. 하지만 한계에 부딪혔을 때 내가 쓰는 방법은 일단 숨 고르기다. 숨을 고르고 천천히 생각하다 보면 또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도록 용기가 생겼던 날들이 많았다. 토픽 2를 쉽게 가르치기 위하여 선행되어야 할 한자 교육을 생각하였다. 그래, 이곳이지 하며 찾아가는 사이트는 <스터디 코리안>이었다. 수업용자료 중 관용표현과 고유어, 사자성어는 요즘 아이들이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대박이었다. 학생들이 너무도 좋아하였고 말에 대한 이해가 쌓이면서 최고의 난코스라고 힘들어하던 토픽2의 53번과 54번을 줄줄이 쓰기 시작하였다. 교사로서 참으로 기운이 나는 시간이었다. <흥청망청>이라는 표현을 가르치면서 왜 흥청이가 망청이가 됐는지 그 유래를 같이 이야기하면서 한국의 문화에 대하여 친화력 있게 다가올 수 있게 길잡이 역할을 하였다고 자부할 수 있다. <간이 콩알만 해졌다>는 관용표현을 알게 하려면 상황극이 적합하리라 싶어 두 학생을 지정하여 서로 읽게 하였다. 그 다음으로 교사와 학생들이 각각 역할을 맡아 번갈아 가며 목소리를 크게 하여 읽는 연습도 여러 번 하였다. 발음도 직접 듣게 하였고 마칠 시간이 되면 꼭 받아쓰기 시험을 실행하였다. 그리고 결과를 다음 시간에 같이 확인하는 단계를 빠뜨리지 않았다.
이제 2학기가 시작됐다. 학교 문을 들어서기 전, 또 교육원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학생들을 맞이하기 전 나는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한다. 가르치면서 한편으로 나도 배우고 부딪힌 한계를 넘어서고자 기울이는 노력이 반드시 정비례하여 나와 학생들을 자로 잰 듯 성장시키지는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조금씩 조금씩 보이진 않을지언정 우리 안의 어디에서 쌓이고 있음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손 유희와 판서의 자유로움을 위하여 나는 얼마 전, 헤드셋 무선 마이크를 구매하였다. 목소리가 카랑카랑 울리면서 교실 밖으로 흘러 나갈 것 같아 조금 긴장도 한다. 나의 한국어가 옆 교실의 교사들에게 학생들에게 들릴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가 한편으로는 기대도 한다. 들려서 듣는 한국어라도 바르게 구사하는 우리 말이니 자부심으로 가득한 한국어다. 자랑스럽기 짝이 없다. 파라과이 더운 나라의 한복판에 서서 목청껏 외치는 “말”, “호랑이!”, “비가 와요!”, “생일 축하해요” 같은 말이 맴맴 울려 퍼진다, 나의 자부심도 따라서 같이 팡팡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