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정 호치민시한국국제학교 학부모
글로내컬 리포터 3기
막연하게 꿈꿔왔던 해외살이. 늘 선망하던 삶이었기에 내 앞에 찾아 온 기회 앞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두 달 만에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호치민으로 왔다. 무지막지한 팬더믹을 지나 그간 크고 작은 이벤트를 겪으며 더욱 단단해지고 있는 나는 어느새 호치민 생활 6년차다.
6년차 호치민 생활을 하면서 만족하는 부분과 아쉬운 부분, 주변 지인과 공감하는 내용 위주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입성을 고민하시는 분이나 결정되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호치민에 와서 정말 만족스러운 점을 먼저 꼽아보겠다.
첫째, 저렴한 인건비
한국에서 맞벌이를 하며 가까이 사시는 시부모님의 도움을 받아가며 일을 했고 며느리 입장에서 눈치가 많이 보였다. 일 때문에 퇴근이 늦어지거나 가끔 잡히는 회식으로 귀가 시간이 늦어질 때면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데 호치민에 오니 아이 돌보미를 채용하는 것이 너무 쉽고 그만큼 육아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 일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다. 청소도우미를 쓰지 않으면 손해보는 느낌이 드는 건 나만 그럴까?
그 외 스포츠 및 여러 가지 취미 관련 수업 비용이 저렴해서 부담이 없고, 취미로 골프나 테니스를 즐기는 한국인들이 참 많다. 타국 생활의 활력소가 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수업이 많은 것이 큰 장점이다.
호치민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귀임하는 분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것이 바로 저렴한 인건비로 누릴 수 있는 혜택들이 아닐까?
출처. 비타스키 홈페이지
둘째, 경쟁이 아닌 함께 성장하는 분위기
내가 여기 오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 빡빡한 사교육 일정으로 아이를 경쟁 속에 내몰고 싶지 않았고, 나의 노후를 포기한 채 모든 것을 아이의 사교육에 쏟아 붓고 싶지 않았다.
두 아이는 현재 호치민시 한국국제학교에 재학 중이다. 치열한 경쟁을 강요 받는 분위기가 아닌 함께 고민하고 경험해가며 성장하는 분위기 속에서 옆에 있는 친구는 경쟁자가 아닌 동지.
그런 마음의 여유가 있기에 아이의 문화적 소양을 위한 평생 악기 교육을 챙기는 것이 자연스럽고, 다양한 도전을 응원하며 지켜보는 학부모들이 많다.
학교에서 주최하는 다양한 행사에 참여도 및 성취도가 높고, 해가 갈수록 교내활동이 활성화 되는 선순환으로 학생들이 다양한 기회를 제공받고 있다.
출처. 호치민시 한국국제학교
셋째, 활성화 된 배달 문화
진짜 배달의 민족은 베트남인들이 아닐까? 오토바이가 주 교통수단이라서 그럴 수 있는 건지 배달문화가 굉장히 활성화 되어 있다.
음식 배달, 물건 배송, 이동 수단 등 선택하여 이용이 가능하고, 무엇보다 비용이 저렴해서 좋다. 진짜 저런 걸 다 배달하네? 싶은 것도 오토바이로 배달이 가능한 여기는 베트남. 식당, 까페에 대기하는 그랩 기사는 참 친숙하다.
넷째, 365일 수영이 가능한 환경
일년 내내 따뜻한 동남아 국가에 살면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물과 친숙해졌다. 동남아 아파트들은 기본적으로 야외 수영장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주말에 심심하면 수영장으로 가고, 친구들과 마땅히 할 것이 없으면 함께 모여 물놀이를 한다. 운동을 싫어하는 집순이 집돌이에게도 코앞 수영장은 밤낮으로 만만한 놀거리다.
수시로 수영장에 가다보니 저절로 수영 실력이 습득되어 별도 생존수영 수업도 필요없고, 건강한 삶에도 도움이 되니 일석이조다.
만족스러운 점도 많지만, 6년차 호치민 생활에도 여전히 적응 안되는 것도 많다.
첫째, 보호받지 못하는 보행자
보행자를 위한 인도를 보기가 어렵고, 인도가 있어도 오토바이 주차장으로 바뀌어 있는 이곳.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어쩌란 거지 궁금했는데, 베트남 사람들은 오토바이로 이동하니 보행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듯 하다. 걷는 사람은 열이면 열이 외국인.
신호등도 보행자 입장에서는 형식적인 수준이고, 오토바이가 우선인 분위기 속에서 보행자는 본인의 안전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 게다가 인도를 점령한 오토바이 때문에 보도블럭 상태도 매우 나쁘고, 보도 위를 활보하는 오토바이를 마주하는 황당한 상황도 종종 겪게 된다..
둘째, 예민하거나 급하지 않는 문화, 좋은 게 좋은 거지.
소음을 대하는 자세, 남다르다. 층간 소음에 대해서는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마음이 편한 점도 있다. 체감만이 아니라 소음 허용 기준치를 확인해보니, 베트남의 경우 오전6시부터 오후 9시까지 공용공간은 70데시벨까지 허용되는 반면, 한국 환경부 자료는 60데시벨을 넘지 못한다. (예시. 60데시벨-일반적인 까페 소리, 70데시벨-시끄러운 상권 소리) 통상적으로 밤 10시까지는 소음에 대해서 이해해야 하는 분위기인데, 노래방 기계를 집 앞 길거리에 꺼내두고 동네가 떠나가라 노래하는 모습에 문화적 충격을 크게 받았다.
수리나 청소 등, 업체와의 약속에 시간을 엄수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시간 관념 부족한 그들에게 화가 나지만 이 또한 베트남 살이에 흔한 점임을 염두해야 하며,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정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보는 한국인은 어떨까? 너무 조급하고 참을성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해온 우리에게 마음챙김 훈련이 절로 되는 이러한 상황들도 해외살이의 고충 중 하나이다.
셋째, 전무한 한국 문화생활과 문화시설, 신간 한글서적에 대한 갈증
한국에 그 흔한 박물관, 체험관은 호치민에 살고 있으니 그림의 떡.
최근 몇 년 사이에 동네 도서관 조차 꽤 그럴 싸하게 갖춰져 가는 한국의 변화가 너무 부럽다. 해외살이 중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문화 시설 그리고 한글책에 대한 갈증이 크다. 교민 중고서적 단톡방이 활성화 되어 있지만, 수년간 돌고 돌았던 너덜너덜한 중고 서적도 구매하기 쉽지 않고, 한국 서적은 한국에서 구매하여 받아야 하는데 배송비에 대한 부담이 크다. 그래도 한국-베트남 간 물류 배송이 순조로우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상 택배라는 대안으로 채워가고 있으나, 외국에 살고 있는 한국 아이들이 동일하게 겪는 어려움이 한국 문화, 서적을 접할 기회가 적다는 점이다.
팬더믹 이후 생겨난 온라인 박물관과 미술관이 더욱 활성화된다면 해외에서 살고 있는 한국 아이들의 정체성을 키우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며, 다양한 미디어를 통한 노출 빈도가 늘어난 점을 더 활용하면 부족한 부분을 조금이나마 채워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기타 등등으로, 동네 뒷산
막연하게 베트남에 가면 더 자연친화적 환경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한국에서 그 흔한 산이 없다. 주말에 아이들 데리고 가던 울창하던 숲, 여기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고 흙을 만질 수 있는 환경이 아닌 점이 아쉽다.
내가 원해서 왔기에, 그리고 가볍게 경험해보자 하고 내린 결정이 아니었기에 불편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들춰내며 불평하기보다는 만족도 높은 면에 집중하려고 하고 있고, 늘 대안을 고민하면서 긍정적 마인드를 기르고자 하는 중이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관점을 바꾸면 마음 가짐도 달라진다.
가치 있는 하나를 얻기 위해 두 개쯤은 버릴 수 있다는 쿨한 자세로 포기할 건 포기하고, 취할 수 있는 장점은 극대화하는 슬기로움이 필요하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 살 건, 현지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과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도록 현명하고 슬기롭게 대처한다면, 더욱 의미있고 만족스러운 해외살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