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연 방콕한국국제학교 학부모
글로내컬 리포터 3기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연신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그러면서 오늘은 점심시간에도 급식을 빨리 먹고 합창 연습을 했다고 했다. 음이 어렵다며 가끔 틀리기도 했지만 ‘아리랑’을 연습하는 아이들의 얼굴은 무척 진지해 보였다.
6월 25일, 학교를 마치고 방콕한국학교 학생들이 향한 곳은 주태국 한국대사관에서 마련한 ‘한국전쟁 발발 74주년 기념식’이었다.
행사장 바깥에는 ‘리틀 타이거(Little Tiger)’라고 불린 한국전에 참전한 태국용사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실 나는 ‘리틀 타이거’에 대해서 잘 몰랐었다. 특히 한국전쟁이 나고 미국을 제외하고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파병을 한 나라가 태국이라는 사실 또한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태국에 살고 있어서 한국만큼 가깝게 느껴지곤 했었는데 실제 한국전에 파병된 태국군들은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추위속에 130여명이 전사하고 천명 넘은 사람이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이번 기념식을 통해 ‘리틀 타이거’의 고귀한 희생을 알게 되고 더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기념사가 끝나고 참석한 참전용사 한 분 한 분께 고마움을 전달하는 식이 이어졌고 드디어 우리 아이들의 차례가 되었다. 아이들은 들뜬 마음으로 입장했다. 한 손에는 한국 국기를, 다른 한 손에는 태국 국기를 들고 지휘 선생님의 손짓에 따라 합창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서른명이 넘는 아이들은 처음엔 긴장한 듯 보였지만 노래가 시작되자 서로를 배려하며 차곡차곡 곡을 완성해갔다. 그동안 점심시간도 아껴가며 아이들이 함께 쌓아올린 ‘아리랑’은 이전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순수한 감동을 자아냈다.
그리고 이어진 태국 노래인 ‘어머니의 노래’ 역시 참석한 사람들이 따라부를 정도로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렇게 아이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무대가 끝나자 어느 때보다 큰 박수가 터져나왔다. 실수하면 어쩌나 내내 긴장하던 아이들도 무대가 끝나자 안도한 듯 큰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오기 전 아이들은 몰래 감추어 두었던 편지를 꺼내어 참전용사분들께 드렸다. 조금은 서툰 태국어지만 작은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간 정성에 ‘리틀 타이거’들도 손을 맞잡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렇게 올해 6월 태국은 다른 깊이로, 큰 울림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6월 8일 방콕에서는 통일을 염원하는 ‘청소년 통일캠프와 통일 골든벨’이 열렸다. 10년째 개최되고 있는 행사로 코로나 시기에는 원격으로 참여했던 캄보디아, 미얀마 등 다른 나라의 학생들도 직접 함께 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통일과 우리의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특히 올해 처음 ‘통일 골든벨’에 참가하게 된 큰 아이는 방콕한국학교 여러 친구들, 중·고등 선배들과 함께 배우고 경험하며 대회 내내 즐거워했다. 비록 통일 골든벨은 어려웠지만 강연회에서 들은 특강에서 탈북민이자 지금은 배우로 활동하는 분이 고난을 이겨내고 지금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는 점이 참 대단해 보였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서 ‘나에게 통일이란?’ 주제로 통일 감상문 쓰기가 있었고 시상이 끝난 후 모든 참석자들이 온라인 합창단과 함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막을 내렸다. 그런데 어릴 적 학교에서 으레 많이 불렀던 이 노래가 여기에서 내게 잔잔한 파동을 불러일으켰다. 화면 속 아이들의 손에 적은 통일에 대한 염원도, 여기 있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내는 멜로디도 모두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사실 나도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니기에 나에게 6월은 달이 가진 깊이에 비해 가볍게 지나가곤 했던 달이었다. 그런 내가 태국에서 6월을 맞이하고 아이들도 노래로 함께 하면서, 어느 때 어느 순간보다 진한 6월을 보냈던 것 같다.
아이들의 순수한 노래가 빚어낸 큰 ‘울림’이 앞으로 더 커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