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희정 대련한국국제학교 교사
재외한국학교로 오기 전, 나는 지역 교육청의 연극 연구회 회원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었다. 물론, 연구회에서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지속적으로 학생들과 연극 활동을 꾸준히 해오며, 정서적 유대감을 많이 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나의 과거를 늘어 놓는 이유는 재외한국학교에서는 이런저런 형태의 연극 수업을 마음껏 펼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 마음과는 다르게 살아왔다는 고백을 하기 위해서다.
올해 재외한국학교 근무 4년차를 맞이하여,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문학 시간을 이용하여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과 합을 맞춰 보기로 했다. 여기에는 순서가 필요하다.
첫째, 학업적 부담이 가장 큰 고2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둘째, 내 자신부터 큰 기대를 갖지 않고 맛보기로 시작한다는 마음 갖기.
셋째, 학생들에게 칭찬과 조언 등 더 바쁘게 내 발과 입을 놀리기. 다만 학생들의 의견에는 절대 반대하지 않기.
자, 이제 시작해 본다. 우리 학생들은 그동안 따분한 시, 소설 읽기에서 벗어난다는 생각만으로도 의욕을 보인다.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첫 시작이 좋다. 주제는 <문학 작품, 연극 작품으로 각색하기>. 몇몇 학생들은 벌써부터 강한 의욕을 가지고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저희 모둠 1시간 공연도 모자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에요.”
모둠을 구성하고 작품을 선정한다. 춘향전부터 어린 왕자,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마탄의 사수까지 생각지도 못한 작품들을 선정하여 읽는다. 너무 긴 장편 소설의 경우, 한 챕터를 선정한다. 모둠 간 의견을 교환하여 주제를 잡고 희곡을 써 내려간다.
여기까지의 활동이 너무나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내가 우리 학생들을 너무 얕봤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여기에서 조금 더 나가보자. 원래의 계획과는 다르게 몇 가지를 추가한다.
첫째, 모든 대사를 다 외울 것.
둘째, 소품, 배경, 음향 등을 장면 분위기에 맞게 추가할 것.
셋째, 모든 모둠원들은 배우 외 여러 역할을 맡을 것.
순간적으로 아이들이 아우성을 친다. “선생님, 너무해요. 이 긴 대사를 어떻게 다 외워요?” “야, 다시 수정하자. 짧게.” “음향은 누가 준비하지?” “한복 있는 사람?” 교실은 원망의 목소리로 가득 찬다. 순간적으로 나는 찔끔하고 잠시 도망간다.
연습 시간을 3차시 정도 준 뒤, 드디어 실전 무대를 갖는 날이 왔다. 장소는 우리 학교에서 시설이 가장 좋은 음악당. 음향과 배경 처리는 완벽하게 할 수 있고, 제일 중요한 무대도 넉넉하니 아이들의 데뷔 무대로는 손색이 없다.
첫 번째 모둠이 나온다. 무대가 시작되기 전 고요한 설렘과 긴장된 숨소리가 음악당을 감싼다. 연극을 보기도 전에 나는 눈물이 난다. 연극이 시작된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대사 처리는 물론이거니와 학생들의 행동, 목소리 하나하나 완벽하다. 주어진 대본이 아닌, 학생들이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꾹꾹 담아 온몸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학생들 한 명 한 명이 하나의 세계였기 때문이다.
부디 이 수업이 학생들에게 존재의 의미와 자유, 삶을 노래하는 철학이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