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혜 천진한국국제학교 학부모
글로내컬 리포터 3기
위 백두산 천지. 아래 윤동주 생가 입구. 서시가 적힌 비석 (본인촬영)
푹푹찌는 폭염이 계속되던 7월 말에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중국지역회의에서 개최한 <제 3기 백두화랑단 통일캠프>에 다녀왔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 중국생활 20여 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중국 구석구석 여행을 참 많이 다녔다. 동북지역으로는 빙등제로 유명한 하얼빈(哈尔滨)부터 박지원 선생의 연행길에 들렀다는 요녕성 흥성고성 , 중국과 북한의 국가경계선이 있는 압록강이 흐르는 단동지역 그리고 광개토대왕릉(비) 장수왕릉 고구려성이 있는 지안(集安)까지 다 다녀왔지만 어째서인지 그 근처인 백두산은 아직 한번도 등정을 못해봤었기에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캠프에 참여했다.
일요일 아침 천진에서 아침 일찍 베이징 따싱공항으로 출발했다. 따싱공항은 5년 전 오픈한 세계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신공항으로 동대문 DDP를 디자인한 '자하 하디드'가 설계했고 천진에서 차로 약 1시간 반 정도 떨어져있다. 따싱공항에 도착해서 2시간 반을 날아 드디어 연길공항에 도착했다. 정말 작은 규모의 연길공항은 도착과 동시에 한글/중문으로 된 표지판들에 친근감이 갔다. 캠프 집결지로 가는 길에 창 밖을 보니 모든 간판이 한글/중문으로 되어있어 재미있고 새로웠다. 내가 살고있는 천진지역에는 한국인이 많이 사는 곳에만 드문드문 한글간판이 있는데 이곳은 전체가 다 이중언어로 간판이 되어있어 오래 중국에 살고 있는 나도 신기할 지경이었다. 예전에 중국 러시아 내몽고 접경지역인 만주리(满洲里)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 지역의 간판에는 중국어 러시아어 몽고어가 동시에 쓰여져 있어 이국적이고 신기했었는데 연길도 그랬다.
3시가 넘어 호텔에서 짐을 풀고 근처 호텔 연회장에 모였다. 이번 캠프에는 중국 각 지역에서 선발된 35명의 학생과 민주평통자문위원 등이 참여했다. 박영완 민주평통 중국지역회의 부의장님의 개회사와 설규종 백두화랑단 단장님의 축사에 이어 “백두에서 화랑을 외치다” “신 열하일기를 쓰자” “오늘부터 우리는(작은 통일)”을 주제로 김영식 선생님의 통일 강의를 듣고 아이들은 각 조별로 특색 있는 구호를 만들어 발표했는데 쑥쓰러워하면서도 기발하게 발표를 잘해서 많이 웃었다.
두 번째 날엔 아침 일찍 일어나 재빨리 조식을 먹고 단체버스 두 대에 나눠타고 백두산으로 출발했다. 일기예보에는 캠프기간 내도록 비소식이 있어서 사실 기대도 안하고 우비랑 우산을 챙겨갔는데 웬걸 하늘이 파랬다. 연길에서 백두산 북파로 이동한뒤 백두산 폭포를 먼저 보러 갔다. 당일 백두산 관람객 숫자가 너무 많아서 숫자 제한 때문에 폭포구경과 점심식사후에야 다시 백두산 등정에 나섰다. 점심시간이 넘어가자 저 멀리 살짝 구름이 나오는것이 보였다. 백 번 가면 두 번 볼 수 있다고 해서 백두산이라 농담 할만큼 3대가 덕을 쌓아야만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다고 수없이 들었기에 기대 1도 하지는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맘에 열심히 올라갔다. 생각보다 춥지도 않고 딱 선선한 날씨에 북파 B코스에 올라가자마자 거짓말처럼 쫙 펼쳐진 천지(天池)의 장관에 현실인지 구분이 안될 만큼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사진제공-민주평통 중국지역회의>
백두화랑단 아이들과 지역위원들과 함께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감동의 단체사진을 찍으며 우리민족의 뿌리이자 민족 혼이 서려있는 우리민족의 신령스러운 산 백두산에서 다시한번 한반도의 평화통일 의지를 새겼다. 내려가는 버스를 타기위해 줄을 서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정말 순식간에 날씨가 변하는구나 생각하며 '우리는 천운이야!' 라고 생각했다. 차를 몇번 바꿔타며 내려와서 고깃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각 조별로 2024 통일정책발표와 질문을 받는 시간을 가졌는데 갑자기 지역 공안이 참관을 하겠다며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첫 번째 조의 발표와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예민한 사항이라 공개적인 장소에서 발표를 하지말 것을 통보받고 모두 호텔로 복귀해 쉬고 담날 오후로 발표시간을 변경했다. 아이들은 저녁시간에 백두산을 다녀온 감상문을 열심히 적어 제출했다.
<백두산 천지 (사진제공-민주평통 중국지역회의)>
세 번째 날 두만강이 바라보이는 도문(图们)에 도착하니 정말 한폭 밖에 안되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중국이 국경선을 맞대고 있었다. 다른 중국관광객들도 사진을 자유롭게 찍고 있었는데 그 곳 역시 관리감독 중이라 공식장소에서만 사진을 찍으라하여 줄을 서서 겨우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단체사진은 사람들로 배경이 가려서 그런지(뒤 북한땅엔 인가도 없고 초소도 없고 그냥 푸른들판이었음) 통제없이 잘 찍고, 용정(龙井)으로 이동해서 윤동주 시인의 생가를 방문했다. 윤동주선생. 송몽규선생. 문익환목사를 배출한 용정 명동촌에 도착해서 그분들이 다니셨던 명동학교 옛터를 지나 윤동주 시인이 살았던 생가 입구에 들어서니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새겨져 있고 내부에 윤동주 선생이 쓰신 31수의 시가 모두 크고작은 비석에 새겨져 있었다. 윤동주 선생은 일본 유학시절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8세의 짧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사후에 명주 보자기에 싸여 마루밑 항아리에서 발견된 한글로 적힌 시들과 나머지 유고와 함께 묶어 처음이자 마지막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시집이 발간되었다. 헛헛한 마음을 안고 다음번엔 송몽규선생 생가와 윤동주선생 묘지까지 찾아봐야겠다고 마음먹고 호텔로 돌아왔다.
공개장소를 피해서 각 호텔룸에서 줌(ZOOM)회의를 통해 2024 통일정책발표가 시작되었다. 백두화랑단 아이들은 틈틈이 준비한 내용을 조별로 조리있게 발표하였고 반론 역시 질서있게 진행되었다. 수행평가라는 우리나라 교육 프로그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인가. 백두화랑단 아이들의 발표와 질의 반론 대응 모두 훌륭했다. 다른일정이 있어서 함께 오지 못한 우리집 둘째아들도 이번 캠프에 참여했으면 좋았을걸...하는 아쉬운 맘이 들었다. 온라인 통일정책발표를 끝내고 호텔연회실에 모여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 전 윤동주 시인의 시를 외워 낭독하는 시간도 가졌다. 며칠간 들쭉날쭉한 날씨에 강행군으로 몸 컨디션이 안좋은 아이들이 있어 호텔 룸에 두 번이나 가서 비상약을 들고와서 먹였다. 그래도 씩씩한 아이들...어찌나 대견한지!!! 며칠간 함께 지내 정이 들어 다 내 새끼 같았다!^^
유엔피스코 김덕룡 이사장은 모든일에 있어 천시(하늘의 때) 지리(땅의 이로움)와 더불어 인화(사람간의 화합)가 가장 중요함을 강조하며 미래의 통일 역군이 될 백두화랑단을 격려하며 세계의 협력과 평화에 힘쓰는 인재로 자라나가길 기원하였다. 이어지는 하소라 연주자의 가야금 연주에 맘이 찡 했고, 구슬픈 목소리로 부르는 '홀로아리랑'을 다함께 부르고 우수단원 시상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백두화랑 통일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은 이번 캠프를 통하여 우리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낄수 있었고 통일정책 발표와 토론의 경험으로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고 평화통일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준비해나가야겠다고 소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