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내컬 학생 리포터단・에세이∙칼럼

경계가 아름답게 흐려지는 곳,
연변의 우리 교실을 기록하다

매일 아침 교문을 향해 걸어가는 길은 그 자체로 여러 문화가 겹쳐진 공간이다. 귀를 기울이면 들려오는 다정한 우리말의 억양들 사이로 현지의 언어가 자연스럽게 섞여 들고, 거리의 간판들은 한글과 한자가 똑같은 크기로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있다. 특히 타지에서 한글을 발견하는 반가움을 넘어, 이곳 연변에서는 법적으로 모든 간판에 한글과 한자가 표기되어 있어야 한다. 도시 전체가 우리말을 당연한 기본값으로 품고 있는 셈이다. 한국적인 것과 현지의 것이 이토록 정교하고 부드럽게 스며들어 있는 익숙하면서도 이국적인 질감이야말로, 오직 이곳 연변에서만 마주할 수 있는 독특한 등굣길 풍경이다.

이 흐릿하고도 매력적인 경계선 위에서, 우리 학교 건물은 또 하나의 명확한 이정표가 되어준다. 현관을 지나 교실 문을 여는 순간, 공간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반전되어 익숙한 한국의 교실 풍경이 펼쳐진다. 교실 안은 티 없이 맑은 표준어와 최신 유행어의 공간이다. 칠판에는 대한민국 교육과정에 맞춘 수업 내용이 빼곡히 적히고, 친구들은 유튜브나 숏폼 등 SNS에서 보던 서울의 고등학생들과 똑같은 밈과 신조어를 쓰며 다가오는 시험 걱정에 왁자지껄 수다를 떨기 바쁘다. 교문 밖에서는 수백 년의 역사를 품은 동포들의 묵직한 언어와 대륙의 활기가 흐르지만, 교실 문 하나를 사이에 둔 안에서는 가장 동시대적인 한국의 10대 문화를 고스란히 호흡하는 것이다. 완전히 단절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동화된 것도 아닌, 오직 연변이기에 가능한 이 독특한 ‘이중의 스펙트럼’이 이 작은 교실 안에 존재한다.

글로내컬 리포터로서 나는 운동장이 보이는 창가에 기대어 안과 밖의 풍경을 찬찬히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수업 도중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면, 한국의 빽빽한 아파트 숲 대신 연변 특유의 붉은 지붕을 얹은 이국적인 건물들과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드넓게 펼쳐진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교실 안에서는 한국의 대학 입시를 고민하는 치열하고 톡톡 튀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창문 틈으로는 현지 주민들의 활기찬 중국어 소리와 드넓은 바람이 불어온다. 이 시각적, 청각적 대비는 매번 나에게 기분 좋은 전율을 준다.

내가 느끼는 문화적 풍요로움은 일상의 아주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도 생생하게 피어난다. 예를 들어 명절이나 절기가 되면 교실 안에서는 한국의 절기 풍습과 명절 이야기를 나누지만, 학교 밖으로 나서는 순간 현지 동포들이 지켜온 전통 음식과 문화, 그리고 대륙의 다채로운 명절 풍경이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또한 한국의 최신 드라마와 K-팝을 실시간으로 즐기는 동시에, 중국 현지의 감성이 담긴 음악이나 매체도 아무런 장벽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한 공간에서 두 개의 풍성한 문화적 자산을 온전히 내 것으로 누리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다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연변만의 특별한 선물이자 풍요로움이다.

나는 여기서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가’라는 이분법적인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런 흔한 고민을 하기엔 이곳이 주는 문화적 풍요로움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대신 이곳에서의 시간 덕분에 내가 가진 세계의 지평이 훨씬 넓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교실 안에서 한국인으로서의 뿌리를 단단하게 다지는 만큼, 창밖의 연변이 가진 깊은 역사와 문화를 편견 없이 바라보고 유연하게 흡수하는 법도 함께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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