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4년차
“지금이 가족에게는 꿈이야.”
아이의 학교에서 립덥 영상 유튜브 링크가 왔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선생님과 교직원이 모두 출연했는데, 2천 명이 넘는 인원이 복도와 운동장, 체육관 등 학교 곳곳을 옮겨 다니며 한 곡을 이어 부르는, 하노이한국국제학교 개교 20주년 기념 영상이었다. 무심코 재생 버튼을 눌렀다가, 몇 번이나 되돌려 가며 봤는지 모르겠다. 밝고 환하게 함성을 지르는 어린 학생을 보면서 눈물이 맺혔다가, 끼를 맘껏 발산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기도 하고, 빙긋 웃기만 해도 마냥 예쁜 아이들을 보며 엄마 미소를 지었다가, 마지막 쿠키 영상을 보면서는 학생들이 기획과 제작까지 함께한 이야기라는 걸 알고 감탄을 연발했다. 아이 둘을 영상에서 찾아보기도 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면서, 시청자로서도 하노이한국국제학교와 함께하고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은 중학생, 고등학생인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는 하노이에 살게 될 줄 생각도 못 했다. 그때는 국내 여행과 해외여행을 다니며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고, 최대한 많이 보여주려 했다. 가족이 함께하는 경험이 참 좋았고, 낯선 거리, 다른 언어, 다른 음식과 냄새, 분위기, 그리고 사람들까지… 모든 것이 새로워서 설레는 그 느낌이 참 좋았다. 그러다 코로나를 겪으며 아이에게 더 많은 세상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고, 부모로서 해 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 주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그래서 마침내 결정한 것이 ‘해외살이’였다.
해외에서 산다는 것, 해외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여행을 넘어선 또 다른 일이었다. 익숙하고 당연했던 모든 기준이 한 번에 무너지고, 그 자리를 매번 새로 만들고 찾아야 하는 일이었다. 은행 창구 앞에서, 병원 접수처에서 서툰 언어를 반복하거나 휴대폰 번역기를 보여주며, 그 낯섦을 매일 통과해야 했다. ‘사춘기에 접어들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서 부딪혀야 하는 학교라는 세상은 얼마나 클까?’라고 생각하며, 이 결정이 정말 현실이 되어도 되는 꿈이었는지 스스로 의심하기도 했다. 그랬던 아이 둘이 립덥 영상 속에서는 낯선 이의 얼굴이 아니라, 하노이한국국제학교의 자연스럽고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두 아이는 요즘 부쩍 함께하는 시간이 줄었다. 예전만큼 시시콜콜 자기 이야기를 하거나 어디를 가든 “엄마”, “엄마” 찾는 대신, 친구들과의 대화가 더 신나는 시기다. 아이가 독립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시기. 한국과 베트남,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그 느낌이 아이에게 결핍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었다. 방학 때 한국, 때로는 베트남에서 만나는 할아버지, 할머니, 사촌, 친구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고 싶어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만나는 횟수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밀도 있고 진실되게 만나는지도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한국에서는 우리가 수돗물을 불편함 없이 먹었어요.” 한국에서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사소한 일이 감사한 일이 되었다. “일주일 한국에 있었더니, 베트남 쌀국수가 생각나네.” 익숙했던 것이 그리운 일이 되었다. 두 나라에서 각자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이제는 서로에게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낯선 세계에서 점점 자유로워지는 아이를 지켜보는 것, 그것이 지금 나의 역할이다. 언젠가 아이는 이 나라를 떠나 또 다른 곳으로 갈 것이다. 그때도 아이는 지금처럼 자신의 세계를 넓혀갈 것이다. 해외에서 산다는 것도, 아이를 해외에서 키운다는 것도 결국은 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아이가 자기 자신으로 편안히 웃을 수 있는 곳, 그곳이 아이의 자리일 것이다. 나는 아이의 모습을 응원하며, 편안하게 지켜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