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교 현장 리포트・에세이∙칼럼

어디에서 살 것인가보다,
어떻게 자랄 것인가

우리 가족이 태국으로 이주한 이유는 단순했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함께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태국 이주 직후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었다. 매일 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책을 읽었고, 스마트 기기 대신 독서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특별히 한글 교육을 시킨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날 만 4세였던 둘째가 스스로 한글을 읽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독서의 힘을 강렬하게 느낀 순간이었다.

독서 삼매경에 빠진 아이들

독서 삼매경에 빠진 아이들

이후 아이들은 태국 로컬학교에 입학해 태국어와 영어를 배우며 성장했다.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받아들이는 모습은 대견했다. 하지만 부모로서 한 가지 생각만은 분명했다. 외국어를 잘 익히는 것도 좋지만 모국어를 기본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원기둥’이라는 개념을 영어와 태국어로는 설명할 수 있지만 한국어로는 모르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생각의 바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 수업이 끝난 뒤에는 집에서 EBS를 활용해 한국 교육과정을 함께 공부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태국 로컬학교는 학업 강도가 높은 편이었고 숙제도 많았다. 두 아이의 학습을 관리하는 일은 점점 버거워졌고, 아이들 역시 지쳐 갔다. 가족 모두 스트레스가 높아지면서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결국 우리 부부는 중요한 질문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펫차부리주의 일상

펫차부리주의 일상

당시 우리가 살던 태국 펫차부리주는 자연환경이 좋고 여유로운 곳이었다. 아이들이 뛰어놀기에도 좋은 환경이었다. 생활만 놓고 보면 굳이 떠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5년간 훌쩍 커버린 아이들에게는 교육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우리는 오랜 고민 끝에 아이들을 방콕한국국제학교에 보내기 위해 이사를 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활 터전을 펫차부리에서 방콕으로 옮기게 되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한국학교에 대한 선입견도 있었다. ‘해외까지 와서 굳이 한국학교를 보내야 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규모가 큰 국제학교에 비해 다소 제한적일 것이라는 막연한 편견도 있었다. 하지만 학교를 알아볼수록 생각은 달라졌다. 한국어로 학습할 수 있다는 점, 한국 교육과정과 연계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키울 수 있다는 점이 크게 다가왔다.

학교를 처음 방문한 날도 잊을 수 없다. 입학 상담은 초등부 교육부장 선생님께서 직접 진행해 주셨다. 한국어로 학습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을 앞두고 긴장한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편안하게 말을 건네며 긴장을 풀어 주셨다. 아이들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지는 모습을 보며 나도 마음이 놓였다.

그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시험 결과보다 아이들의 반응이었다. 아이들은 한국인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무척 반가워했다. 부모인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생각보다 더 한국인으로서의 소속감과 연결감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험을 마친 뒤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에게 직접 칭찬을 건네주셨고, 아이들은 무척 행복해했다.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과 나는 같은 말을 했다.

“이제야 진짜 학부모가 된 것 같아.”

그렇게 2025년, 첫째는 5학년으로, 둘째는 3학년으로 방콕한국국제학교에 입학했다. 학교생활을 시작한 뒤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아이들의 자신감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원래 독서를 좋아했다. 어딜 가든 책을 들고 다녔고, 덕분에 나이에 비해 다양한 지식과 상식을 가지고 있었다. 가끔은 부모인 우리가 놀랄 만큼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집에서 이루어지는 학습에는 한계가 있었다. 알고 있는 것을 발표하고, 친구들과 생각을 나누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해 볼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학교에 입학한 이후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발표하고 토론하며 자신이 가진 생각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던 아이들이 점차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부모로서 대견하고 뿌듯했다.

또 한 가지 반가운 변화는 공동체 의식이었다. 태국 로컬학교에서는 대부분의 학생이 태국인이었기에 아이들이 늘 조금은 주변인처럼 지내는 듯했다. 하지만 한국학교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며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어떤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지, 어떻게 해야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는지, 친구들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배워 가고 있다.

2026 청소년 평화통일 골든벨 행사 참여 모습

2026 청소년 평화통일 골든벨 행사 참여 모습

특히 올해 상반기에는 학교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2026 청소년 평화통일 골든벨」 행사에서는 학교 합창단이 식전 축하 공연 무대에 올랐다. 아이들은 ‘모이면 별자리’ 외 2곡을 율동과 함께 부르며 관객들과 뜻깊은 시간을 함께했다. 공연뿐 아니라 통일 관련 강연과 글짓기 활동에도 참여하며 평화와 통일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학교에서는 독도 사랑 글짓기 대회와 독도 관련 체험 행사 등 다양한 역사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해외에 살다 보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접할 기회가 생각보다 많지 않은데, 아이들은 이러한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배워 가고 있다.

또한 주태국 한국문화원이 주최한 백일장과 미술 대회에도 참가했다. 두 아이는 각각 글쓰기와 그림 부문에 참여해 상과 메달을 받아 왔다. 물론 수상도 기뻤지만, 더 값진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를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보는 과정 자체였다.

해외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면 교육에는 정답이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현지 학교도, 국제학교도, 한국학교도 저마다의 장점이 있다. 다만 우리 가족은 아이들이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동시에 자신의 뿌리를 이해하며 성장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방콕한국국제학교를 만났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시골 펫차부리의 익숙한 생활을 뒤로하고 방콕으로 이사하는 결정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우리 가족이 내린 가장 중요한 교육적 선택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은 원래도 튼튼한 기둥과 가지를 가진 나무였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겨울나무가 한여름의 느티나무가 되어가듯이 무성한 잎사귀를 피워 내고 있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에서 배우는 예의가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에 다닌 지 1년하고도 반 학기가 지난 지금, 아이들은 여전히 종종 이야기한다. “엄마 아빠, 이 학교에 보내줘서 정말 너무 감사해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 가족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해외에서 살아가는 우리 가족에게 방콕한국국제학교는 단순한 학교가 아니다. 아이들이 한국인으로서의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더 넓은 세상으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돕는 든든한 배움터이자 따뜻한 공동체가 되어 주고 있다.

이 아티클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