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교 현장 리포트・줌인: 세계 속 그 학교

바다를 건넌 육아일기

낯선 땅에서의 삶은 대단한 결심이나 거창한 계획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교사인 남편이 어느 날 불쑥 건넨 ‘방콕한국국제학교(KISB) 교사 채용 공고’ 한 장.

“이번에 한번 지원해 보려는데 어때?”

평소 재외국민 교육에 관심이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남편의 제안은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안정적인 익숙함을 뒤로하고 전혀 다른 환경으로 떠난다는 건 정말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가슴 한구석이 설레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우리 가족의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갈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남편의 결단이 합격이라는 결실로 돌아온 후,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던 남매 쌍둥이의 학교도 자연스럽게 결정되었다. 남편이 교사로 있는 학교라는 점에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애초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운명이었지만, 교사이기 전에 아빠로서 자신의 일터를 최고의 배움터로 확신하는 남편의 뚝심이 싫지 않았다. 가장 신뢰할 만한 전문가가 추천한 학교이자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는 곳, 또한 언젠가 돌아갈 한국의 교육과정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영어와 태국어 시수가 많아 다국어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곳이라는 것도 나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낯선 땅에서 두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것은 기대와 걱정이 격렬하게 교차하는 일이었다. 태국에 오면서 아이들이 교과서 밖의 더 넓은 세상을 온몸으로 마주하며 다양한 문화를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인재로 자라나길 바라는 기대가 컸던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인’이라는 뿌리가 흔들리지는 않을지, 치열한 한국의 교육 속도 속에서 우리 아이들만 뒤처지는 것은 아닐지 문득문득 불안감이 엄습하곤 했다. 두 문화의 경계선 위에서 부모로서 중심을 잡는 일은 생각보다 더 묵직한 고민으로 다가왔다. 그 고민을 안고 우리의 ‘바다를 건넌 육아일기’는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고민의 답은 뜻밖의 일상에서 찾아왔다. 한국의 번개 같은 행정 처리에 익숙했던 내게 이곳 은행에서 간단한 업무 하나를 보느라 한 시간 넘게 대기해야 했던 날은 큰 충격이었다. 처음엔 속이 타들어 가고 답답했지만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짜증을 내는 사람은 한국인인 나뿐이었다. 창구 직원도, 기다리는 사람들도 그저 미소를 지으며 느긋하게 그 시간을 채우고 있었다. ‘빨리빨리’에 갇혀 살던 내게 그 속도는 게으름이 아니라 서로를 배려하는 다정한 여유였던 셈이다.

이 마법 같은 ‘사바이사바이(편안하고 여유롭게)’의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어느새 나도, 아이들도 이 느림의 미학에 조금씩 물들어 가고 있었다. 한국의 시계가 초침까지 쪼개 쓰며 ‘남들보다 더 앞서가야 한다!’라고 다그친다면 태국의 시계는 ‘조금 늦어도 괜찮아.’라며 어깨를 토닥여 주는 느낌이랄까?

이제는 기다림의 즐거움을 알게 된 아이는 창밖의 초록 나무를 바라보며 사색을 즐기거나 옆자리 태국 할머니와 눈을 맞추며 방긋 웃는 법을 배운다. 결국 두 문화 사이에서 자라는 우리 아이들은 세상에는 100m 달리기 선수처럼 치열하게 속도를 내야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숨을 고르며 시원한 바람을 느끼는 여유도 필요함을 몸소 배우고 있는 것이다.

그 배움 이후,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보며 내 믿음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한국에서 유독 수줍음이 많고 소심했던 아이들이 이곳의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부모로서 걱정이 앞섰던 것은 사실이다.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기가 죽지는 않을까 매일 밤 잠자리를 살피곤 했다. 하지만 일 년 내내 따뜻한 이곳의 날씨처럼 다정한 학교의 분위기는 아이들을 조금씩, 그리고 단단하게 변화시키고 있었다.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 사람은 다름 아닌 아들이었다. 야무진 딸과 다르게 낯선 사람 앞에서는 한 걸음 물러서던 겁 많던 아들이 콘도에서 마주치는 외국인에게 먼저 다가가 스스럼없이 말을 거는 게 아닌가! “사와디 캅(안녕하세요)!”라며 씩씩하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아들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나와 남편은 대견함과 놀라움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아들에겐 낯선 언어와 문화가 장벽이 아니라 먼저 다가가 허물 수 있는 흥미로운 놀이터가 된 것이다.

아들이 이렇게 성장한 바탕에는 학생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학교와 열정적인 선생님들이 계셨다. 이곳 학교의 가장 큰 미덕은 ‘줄 세우기식’ 경쟁이 아니라, 태국 특유의 여유를 갖고 아이 한 명 한 명의 가능성을 온전히 인정해 준다는 점이었다.

보통의 학교라면 말하기 대회와 같은 큰 대회에 나갈 때 ‘가장 잘하는 아이’를 대표로 뽑기 마련이다. 만약 그랬다면 한국에서도 조용했던 우리 아들은 늘 무대 뒤편의 관객으로 남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잘하든 못하든, 서툴든 능숙하든 중요하지 않았다. 학교와 선생님들은 모든 아이에게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용기와 기회를 주었다. 덕분에 우리 왕소심이 아들도 영어와 태국어 말하기 대회에 당당히 참가할 수 있었다.

사진을 생성형 AI로 삽화 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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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이가 작년 태국어 대회를 처음으로 치르기 전까지 나는 속으로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다. ‘저 녀석이 무대에서 얼어버리면 어쩌지? 대사를 잊어버리면 상처받지 않을까?’ 대회를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선생님들은 아이의 서툰 발음에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 주셨고 끝까지 해낼 수 있도록 응원해 주셨다고 한다. 결국은 긴장한 탓에 중간에 대사를 잊어 ‘참가상(?)’을 받아왔지만 “엄마! 나 진짜 잘한 거 같아!”라고 당당히 말하는 아들의 모습이 기특하기도 했다. 완벽한 유창함 대신 ‘끝까지 해낸 용기’를 더 가치 있게 여겨주는 선생님들의 따뜻한 시선 속에서 아이는 등수나 상장보다 훨씬 값진 ‘해보니까 되네!’라는 단단한 자신감을 선물 받은 것이다. 이 덕분에 낯선 외국인에게도 자신 있게 말을 걸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렇게 눈부신 우리 아이들의 발전 뒤에는 학교뿐 아니라 또 하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다. 바로 끈끈하게 뭉친 ‘학부모 공동체’였다. 사실 아무리 남편이 현직 교사라 하더라도 ‘엄마’로서 마주하는 타향살이의 실전 육아는 매 순간이 물음표의 연속이었다. 아이 옷은 어디서 사야 하는지, 병원은 어디가 좋은지 같은 사소한 생활 정보부터 타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만의 남모를 고충까지. 이 막막한 물음표들을 느낌표로 바꿔준 이들이 바로 KISB의 학부모들이었다.

이곳의 엄마들에게는 치열한 정보 싸움이나 치맛바람보다 ‘타향살이’라는 같은 배를 탄 동지로서의 따뜻한 연대감이 먼저였다. 낯선 환경에 서툰 새내기 엄마를 기꺼이 품어주고 아들의 ‘참가상’ 소식에도 내 일처럼 함께 기뻐하고 응원해 주는 학부모들이 있었기에 외로울 틈이 없었다.

아이들의 성장을 든든하게 지켜봐 준 이 학교는 사실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이곳 한인 공동체 전체에게도 참 특별하고 고마운 존재일 것이다. 낯선 타국 생활을 시작하면서 마주하는 언어와 문화의 장벽 앞에서 학교는 우리 가족에게 가장 안전하고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아이들에게 뭐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준 덕분에 부모인 우리도 불안감을 내려놓고 이곳에 안심하며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동시에 이 학교는 한인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온기를 나누는 커다란 ‘사랑방’ 같기도 하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단단하게 지키면서도 다양한 문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또한 서로 정보를 나누고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네트워크가 되어주기에 낯선 이국땅에서도 우리 한인 공동체가 더욱 건강하고 끈끈하게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함께 키워내고 타향살이를 집처럼 포근하게 만들어 주는 정신적인 중심지인 셈이다.

남편이 툭 던진 공고문 한 장에 시작된 우리의 태국살이.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그 운명적인 이끌림은 결국 멋진 학교, 최고의 선생님들, 그리고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학부모들과 한인 공동체라는 인생의 가장 큰 선물들을 안겨주었다. 이 든든한 울타리 속에서 우리 가족은 오늘도 태국의 따뜻한 햇살만큼이나 눈부시게 성장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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