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의 바람 속에서 분실물센터를 상상하는 일
‘21세기 문학탐구’ 수업 여정기
호치민의 낮은 늘 뜨겁다. 교실 창밖으로 일렁이는 열기를 바라보며, 나는 종종 아이들의 마음속 온도를 가늠해 보곤 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치열한 시간을 보낸다는 12학년. 입시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선 이 아이들에게 문학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박제된 교과서 속 일제 강점기나 6·25 전쟁의 아픔을 달달 외우게 하고, 정답을 고르는 기술만을 가르치는 것이 국어 교사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일까. 해묵은 고민에서 우리의 발걸음은 시작되었다.
내 곁에는 같은 온도로 고민하고, 기꺼이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했던 전문적이고 열정적인 국어과 동료 교사들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살아 숨 쉬는 문학을 선물하자.’라는 생각으로 깊은 논의를 이어갔고, 마침내 ’21세기 문학탐구’라는 귀한 과목을 세상에 내놓았다. 교과서의 경계를 넘어 지금, 여기, 우리의 일상과 맞닿은 트렌디한 동시대 문학을 통해 아이들의 삶을 깨워보자는 열망이 빚어낸 결과였다.
이 뜨거운 열망의 구체적인 씨앗을 처음 틔운 것은 지난해, 문학에 대한 탁월한 안목과 식견을 지닌 한 동료 선생님이었다. 첫해 운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주신 덕분에 우리 학교 12학년 교실에는 이전에 없던 신선한 문학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그 바통을 이어받아 내가 이 과목의 수업을 맡게 되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어깨를 누르는 부담감이 참 컸다. 앞서 동료 교사가 정성껏 일구어 놓은 깊이 있는 밭에 내가 도리어 폐를 끼치지는 않을까, 입시를 앞둔 아이들을 데리고 이 깊고 새로운 수업을 제대로 이끌어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앞섰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수업은 매시간 살아 움직였다. 나태주, 박준, 안희연, 유혜빈, 이병률, 황인찬의 시를 읽고 김애란, 김영하, 박상영, 장강명, 정유정, 한강의 소설을 펼쳤다. 그리고 신형철 평론가의 날카롭고도 따뜻한 비평의 시선을 나침반 삼아 탐구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마음에 품은 작가를 고르고, 작품 세 편을 깊이 있게 나누며 그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잊지 못할 작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어느 날, 우리는 안희연 시인의 시를 읽으며 “분실물센터 앞에서 서성이는 마음”이라는 구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이의 불안과 미련, 그리고 일말의 기대감이 교차하는 그 공간의 정서를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교실 안 아이들의 눈빛에 생경함이 스쳤다. 아차, 싶었다. 이곳 호치민은 지하철이나 시내버스 같은 대중교통이 한국처럼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오토바이의 거대한 물결에 합류하거나 학교 통학 버스를 이용하며 자란다. 한국의 지하철역 한구석에 자리한, 온갖 사연 서린 물건들이 주인을 기다리는 ‘분실물센터’라는 공간 자체가 이 아이들에게는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인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분실물센터의 풍경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덜렁거리며 떨어뜨린 낡은 지갑, 주인을 잃은 알록달록한 우산, 손때 묻은 수첩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서랍 속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곳. 그리고 그것을 찾기 위해 문 앞을 서성이는 사람들의 초조한 발걸음과 기대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건 단순히 물건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것과 함께했던 시간과 마음의 조각을 잃어버리는 거야. 그래서 그 앞을 서성이는 마음은 잃어버린 나 자신을 되찾고 싶은 간절함이란다.”
내 설명에 아이들의 눈빛이 서서히 깊어졌다. 자신이 발 디디고 서 있는 호치민이라는 공간적 한계를 넘어, 문학의 징검다리를 건너 한국의 어느 낯선 분실물센터 문 앞에 도달하는 순간이었다. 문학은 이처럼 우리가 가보지 못한 곳, 경험하지 못한 정서까지도 연결해주는 기적 같은 힘이 있음을, 오히려 내가 아이들의 깊어진 눈동자를 보며 새삼 깨달았다. 처음의 부담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교사로서의 순수한 기쁨이 그 자리를 채워갔다.
수업의 깊이는 소설을 읽으며 더욱 짙어졌다. 특히 김애란 작가의 섬세한 시선과 한강 작가의 묵직한 필치가 아이들의 마음을 거세게 흔들었다. 아이들은 두 작가의 소설을 통해, 우리가 발 디디고 서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가 과거의 역사적 사건들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아프게 깨달아갔다.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는 멈춘 것이 아니라, 여전히 오늘날 우리의 삶과 관계, 그리고 의식 속에 깊은 흔적을 남기며 조용히 구르고 있었던 것이다.
한 학생의 발표는 유독 오랜 여운을 남겼다. 그 아이는 한강의 작품을 분석하며, 국가나 거대 단체의 강압 앞에서 개인이 얼마나 나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인가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역사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거대한 폭력 앞에 홀로 서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눈물이었어요. 그 사회적 압박 안에서 개인은 너무나 무력하지만, 문학은 그 나약한 개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고 기억해주는 일 같아요.”
그 진지한 고백에 교실은 순간 숙연해졌다. 줄거리만 달달 외우고 정답을 고르는 시험공부였다면 결코 마주할 수 없었을 눈부신 성장의 순간이었다. 아이들은 단순한 독자가 아니라, 문학을 통해 사회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개인의 실존적 문제를 고민하는 주체적인 인간으로 서 있었다. 이 과목이 존재해야 하는 진정한 의미가 아이들의 입을 통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이 수업이 지닌 또 다른 아름다움은 ‘경청’과 ‘연대’에 있었다. 우리는 아이들이 직접 탐구하고 발표한 내용을 바탕으로 지필평가 문제를 출제했다. “내가 발표한 내용, 그리고 내 옆의 친구가 밤새워 고민하고 발표한 내용이 곧 우리의 시험 범위야.”
이 한마디는 교실의 풍경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보통의 발표 수업에서는 자신의 차례가 끝나면 긴장을 풀고 딴청을 피우기 마련이지만, 우리 반 아이들은 달랐다. 친구의 목소리 하나, 숨소리 하나 놓치지 않으려 귀를 쫑긋 세우고 노트를 채워 나갔다. 친구의 발표가 곧 나의 배움이 되었기에, 아이들은 친구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였다. 서로가 서로의 교사가 되고, 서로가 서로의 가장 든든한 청중이 되어준 것이다. 배움이 경쟁이 아닌 나눔이 되는 기적을 아이들은 교실 안에서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결과는 참으로 경이로웠다. 아이들은 매 수업 시간에 진지했고, 그 치열하고도 아름다웠던 흔적들은 학교생활기록부의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누구 하나 겹치지 않는, 판에 박힌 문구가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고른 작품의 서사, 친구들과 나누었던 뜨거운 토론, 그리고 사회와 개인을 바라보는 저마다의 깊이 있는 시선들이 풍성하게 채워졌다. 대학 입시를 위한 서류를 넘어, 한 아이가 청소년기 끝자락에 이루어낸 정신적 성장의 지도가 완성되었다.
학기를 마치며, 나는 다시 동료 교사들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작년에 이 과목을 주도적으로 제안하고 멋진 이정표를 세워준 선생님, 그리고 뜻을 모아준 동료들이 없었다면 이 아름다운 종착지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문학을 통해 아이들의 삶을 변화시키겠다는 교사들의 깊은 논의와 지혜로운 노하우 전수야말로 이 모든 기적의 출발점이었다. 앞으로도 우리는 현장의 목소리를 모아 이러한 과목들을 더 많이 고민하고 개발할 것이다. 입시라는 삭막한 현실 속에서도 아이들의 영혼을 따뜻하게 지켜줄 수 있는 방파제는 결국 교사들의 끊임없는 실천과 사랑, 그리고 연대다.
호치민의 붉은 노을이 교실 창가를 보랏빛으로 물들일 때, 나는 아이들이 남기고 간 교실의 온기를 느낀다. 이 아이들은 이제 정든 학교를 떠나 더 넓은 세상으로, 더 거친 사회로 나아갈 것이다. 하지만 12학년의 그 뜨거웠던 계절, 함께 시 구절을 외우고 소설 속 인물의 아픔에 눈물지으며, 분실물센터 앞을 서성이던 그 마음을 공유했던 기억이 있는 한, 아이들은 그 어떤 거대한 파도 앞에서도 쉽게 꺾이지 않으리라 믿는다. 스스로의 연약함을 인정하되, 타인의 아픔을 들여다볼 줄 아는 따뜻한 어른으로 자라날 아이들. 그 아이들의 마음속에 작은 문학의 씨앗 하나를 심어준 것 같아, 적도의 바람이 불어오는 퇴근길, 내 마음에도 깊고 은은한 문학의 향기가 차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