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늦깎이 반장님
교사라는 직업에는 늘 서글픔이 따라온다. 사랑하는 대상을 결국 떠나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일생 동안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사람들. 헤어짐은 아쉽다. 하지만 선생님으로서의 작별은 어쩌면 현실에서 가능한 최고로 아름다운 엔딩일지도 모른다. 제자들이 성장해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이니까.
새 학기가 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떤 학생들일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낯선 뒷모습이 보인다. 교실 앞에 선다. “안녕하세요!” 첫인사를 하면, 수줍은 얼굴들이 나를 바라본다.
오랜 시간 동안 이렇게 수많은 학생을 만나고, 가르치고, 떠나보냈다. 모두 똑같이 소중하지만, 나에게는 ‘아픈 손가락’처럼 유독 마음에 남은 제자가 있었다.
내가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이곳, 태국은 중등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한국어가 채택되었고, 한국교육원에서 그 학생들을 위해 한국어 표준 교과서도 발간하였다.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어 학습자는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60대 이상의 학습자는 만나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깨 씨는 눈에 띄는 특별한 학생이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주름진 얼굴. 정년퇴직했다고 첫 수업에서 자신을 소개하였다. 사실, 처음에는 걱정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지각이나 결석 없이 수업에 꾸준히 참여했고, 반장을 맡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성적도 매우 좋았다.
반장이었던 그녀 덕분에 반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학생들은 즐겁고 따뜻한 분위기에서 한국어 공부를 했고, 동경하는 한국 문화에 관한 이야기도 자주 나누었다. 그녀의 별명은 ‘반장님’이었고, 항상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한글 자모반 수업을 끝마친 뒤 1단계, 2단계, 3단계 수업을 퐁당퐁당 물수제비처럼 건너갔고, 어느덧 한국교육원의 충성 팬이 되었다.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며 자신감이 생긴 깨 씨는 꿈꾸던 한국 여행도 다녀왔다. 한국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환하게 웃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취업도 유학도 아니었다. 국제결혼을 한 다문화 가정도 아니었다. 순수하게 한국이 좋아서, 그저 알고 싶어서 시작한 공부였다.
그랬던 깨 씨의 모습이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일상이 바빴던 나는 한동안 그녀를 잊고 지냈다. 1년쯤 지난 뒤, 쓰기 반에서 깨 씨를 다시 만났는데 머리 모양이 예전과 달리 이상해 보였다.
“암에 걸렸었어요.”
그녀는 담담히 말했다. 현재 약물 치료를 받고 있는데, 머리카락이 없어서 가발을 썼다고 했다. 왠지 모르게 한국인으로서, 선생님으로서 깨 씨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아픈 몸으로 수업을 듣고 숙제도 꼬박꼬박 해 오는, 흔들리지 않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토픽 반에서 다시 만난 깨 씨의 머리카락은 어느새 예쁘게 자라나 있었다. 그녀는 치료가 이제 다 끝났다고 말하며 기뻐했다. 나는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첫 만남에서는 낯설었던 여러 학생 중의 한 명이었지만, 이제는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제자가 되어 있었다.
다음 해 여름, 교육원 과정 수료식을 특별히 대사관 강당에서 진행하기로 했는데, 졸업생들도 몇 명 초대하기로 했다. 나는 바로 반장이었던 깨 씨한테 전화했다. 깨 씨는 명랑한 목소리로 “선생님, 너무 보고 싶어요. 꼭 갈게요.”라며 행사에 참여하기로 약속하였다.
하지만 수료식 날, 아무리 기다려도 깨 씨는 오지 않았다. 아니 오지 못했다. ‘성실하던 사람이 무슨 일일까?’ 걱정이 되어 전화를 했지만 그날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다른 태국인 제자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선생님, 깨 씨가 지난주 일요일에 하늘로 갔어요.”
태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보통 사원에서 조문을 받고, 5일 뒤 화장을 한다. 남편과 이혼한 깨 씨를 위해 한국어를 같이 공부했던 학생들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깨 씨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사진 속에서 우리를 반겨주었다. 나는 향을 피우고 기도를 했다. 마지막 통화가 맴돌았다.
“선생님, 너무 보고 싶어요······.”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은 단순히 지식을 전해주는 일이 아니다. 마음과 마음을 나누고, 시간을 공유하고, 추억을 같이 쌓는 일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한국어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늦깎이 학생, 투병 중이었지만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진심으로 행복해했던 그녀.
그해 무더웠던 태국의 여름은, 이별로 끝났다.
찬란한 여름이 끝났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저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고, 그러다 보면 새로운 여름이 돌아온다. 나는 또다시 새 학기를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깨 씨를 만날 것이다. 낯선 사람을 만나, 함께 배우고, 서로 공명할 것이다. 그런 후에 아름답게 떠나보낼 것이다. 더 좋은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