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버한글학교에서의
첫 학기
떨리는 마음으로 강의 계획서를 제출하고 학생 모집을 기다리던 학기 초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나는 이제 갓 한국어 교원 실습을 마친 병아리 선생님이다. 8시간 시차 때문에 자꾸만 내리감기는 눈꺼풀을 부여잡으며 열심히 이수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학’ 성적이 발표되자마자 나는 하노버한글학교의 신입 교사로 지원했다. 독일 니더작센에 위치한 하노버는 비록 내가 사는 괴팅겐에서 기차로 1시간가량 떨어져 있어 결코 가깝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 거리가 내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독일에 오기 전 이주배경학생들을 위한 한국어 교실에서 봉사자로 일하며 아이들이 스스로를 일깨우는 그 순간을 지켜보던 기쁨을 하루빨리 다시금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나는 자랑스러운 한글학교의 일원입니다!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학과 관련이라고는 전혀 없는 법학을 전공한 내가 독일에서 한국어 교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모두 한국에서 살던 시절 우연히 시작한 봉사활동 때문이었다. 수원의 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는 매주 토요일 11시,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어린이들이 고사리손으로 한 자 한 자 한글을 적어 나갔다. 한국어 동화책을 읽어줄 때에는 티 없이 순수한 눈망울이 책장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곤 했다. 이곳에서 벌써 수년간 아이들을 가르쳐 오신 봉사자 서OO 선생님은 내게 은사님과 다름없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색을 보이면 곧바로 영어로 설명하던 내 고질적인 습관을 고쳐 주셨고,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온라인으로 취득하는 방법을 알려 주셨다.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문법 교재 또한 여러 권 추천해 주셨다. 덕분에 나는 꼭 한국어 교사로 봉사를 이어 나가겠다는 꿈을 마음 한편에 품고 독일에 왔다.
국내외 한국어 교육은 수많은 선생님 한 분 한 분의 굳센 사명감과 의지로 이루어진 것이 틀림없다. 한국의 서OO 선생님이 대가 하나 바라지 않고 이주배경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계시듯이, 이곳 독일에서도 재외동포 아이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정체성을 간직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애쓰시는 여러 선생님 덕분에 각지의 한글학교가 활기차게 운영되고 있다. 독일 소재 한글학교의 대부분이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공립 초등학교 건물을 빌려 수업을 한다. 저마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다가 한글학교에 가는 딱 하루만큼은 ‘독일 속 외국인’이 아닌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될 수 있도록 교사와 학생이 한마음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내가 이제 막 한 학기를 마친 하노버한글학교 또한 독일 한복판에서 허리 숙여 배꼽 인사를 하는 어린이들이 모인, 한국의 예를 그대로 간직한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노버한글학교에 이력서를 보낸 며칠 뒤, 교장 선생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한 달 봉사료와 수업 시간을 정확히 안내해 주시며 괴팅겐과 하노버 사이의 먼 거리를 학업과 병행하며 매주 감당할 수 있겠냐고 걱정스레 물으셨다. 또한 많은 지원자들이 한 달 월급 수준의 봉사료를 기대했다가 실망한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나는 봉사료에 아주 만족하며, 금요일에는 대학 강의가 없으니 미리 하노버에 와서 한글학교 수업 시간을 기다리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이후 면접과 시범 강의까지는 일사천리였다. 나는 드디어 하노버한글학교에서 재외동포가 아닌 독일인 어린이·청소년들을 가르치는 초급반 담임이 되었다.
한글 열쇠고리 만들기
한글학교에서 첫 학기를 시작하며 가장 오래 고민한 것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한글을 어렵지 않은 문자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내 초급반에는 한글을 처음 배우는 열 살부터 열여섯 살까지의 독일인 어린이·청소년 일곱 명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독일어 알파벳은 익숙했지만,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내는 한글의 원리는 낯설 수밖에 없었다. 특히 받침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었다. 교과서를 반복해서 읽고 쓰는 것만으로는 한글의 구조를 자연스럽게 익히기 어렵다고 판단한 나는, 아이들이 가장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자신의 이름을 활용해 펠트 한글 열쇠고리를 만드는 공예 수업을 준비했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한글 스티커나 관련 교구를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결국 필요한 재료는 모두 직접 만들어야 했다. 먼저 아이들의 이름을 한글로 출력한 뒤, 종이를 본떠 펠트를 한 글자씩 가위로 오려 냈다. 이름이 다섯 글자인 아이도 있었고, 유난히 ‘ㄹ’이 들어가는 이름이 많아 같은 자음을 여러 번 만들어야 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며칠 동안 책상 위에는 형형색색의 펠트 조각이 가득 쌓였고, 손끝이 가위질로 얼얼해질 만큼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다.
드디어 수업 당일, 아이들은 자신의 이름이 한글로 적힌 펠트 글자를 받아 들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나는 먼저 자음과 모음을 구분하는 방법을 함께 복습한 뒤,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이름에 들어가는 글자를 찾아 순서대로 배열해 보도록 했다. 처음에는 어디에 어떤 글자가 들어가야 하는지 망설이던 아이들도 조금씩 글자의 모양을 비교하며 자연스럽게 조합의 원리를 익혀 갔다. 특히 받침이 있는 글자를 만들 때에는 앞에서 배운 내용을 떠올리며 “이 글자는 아래에 들어가야 해요.” 하고 스스로 설명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글자를 모두 완성한 뒤에는 리본과 구슬, 장식용 펠트로 열쇠고리를 자유롭게 꾸미는 시간을 가졌다. 교실 곳곳에서는 완성된 작품을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아이들은 어느새 한글을 ‘공부해야 하는 문자’가 아니라 ‘내 이름을 표현하는 특별한 글자’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수업이 끝난 뒤의 변화였다. 아이들은 완성한 열쇠고리를 곧바로 가방에 달고 집으로 돌아갔고, 학기가 끝날 때까지 매주 한글학교에 그 열쇠고리를 달고 왔다. 쉬는 시간마다 자신의 이름에 들어가는 자음과 모음을 다시 읽어 보거나 친구의 이름과 비교해 보는 모습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작은 공예 활동 하나가 한글에 대한 흥미를 키우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받침의 원리를 몸소 익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교사가 정성껏 준비한 교구는 결국 소모되는 수업 자료에 그치지 않았다. 아이들의 손에서 자신만의 소중한 이름표가 되었고, 독일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첫걸음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해 주는 작은 추억으로 남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언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글자와 문법만 전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의 기억 속에 따뜻한 경험 하나를 심어 주는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단오맞이 한국어 수업
단오를 맞아서는 교과서 속 문법 대신 한국의 계절 풍습을 함께 배우는 특별 수업을 준비했다. 독일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단오는 이름조차 낯선 명절이었다. 나는 먼저 단오가 음력 5월 5일에 지내는 전통 명절이라는 점과 함께 창포물에 머리 감기, 그네뛰기, 씨름, 부채 선물과 같은 다양한 풍습을 사진과 그림을 활용해 소개했다. 아이들은 명절마다 특별한 음식을 먹고 놀이를 즐기는 한국의 문화가 독일의 전통 축제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큰 흥미를 보였다. 무더운 초여름을 건강하게 보내기 위해 부채를 선물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 뒤에는, 한국식 아이스티를 함께 마시며 잠시 쉬어 가는 시간도 가졌다. 시원한 음료 한 잔을 마시며 한국의 여름을 이야기하는 교실에는 평소보다 한층 여유롭고 편안한 분위기가 흘렀다.
이어 아이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담아 단오 부채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글로 자신의 이름을 적고, 태극 문양과 무궁화, 알록달록한 전통 무늬를 그려 넣으며 세상에 하나뿐인 부채를 완성했다. 완성된 부채를 흔들며 “정말 시원하다.”라며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니,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보고, 만들고, 경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먼 독일에서 함께한 작은 단오 수업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한국의 여름을 기억하는 특별한 추억이 되었고, 나 역시 언어와 문화를 함께 전하는 한국어 교사로서의 보람을 깊이 느낄 수 있었던 하루였다.
마무리하며
한 학기를 마무리하며 아이들과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려 보았다. 한글 자음과 모음을 구분하는 것조차 낯설어하던 아이들은 이제 또박또박 자신의 이름을 읽고 쓰며, 짧은 문장을 소리 내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직 받침에서 머뭇거리고 새로운 단어 앞에서 잠시 고민하는 순간도 있다. 그러나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먼저 읽어 보려 하고,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며 서로의 이름을 한글로 써 주는 모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성장의 증거였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글자를 익히는 일이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문화를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은 한 학기 동안 몸소 보여 주었다.
나 역시 첫 담임 교사로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한 한 학기였다. 교구 하나를 만들기 위해 늦은 밤까지 펠트를 오리고, 한국의 명절을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소개할 수 있을지 고민했던 시간은 절대 헛되지 않았다. 아이들의 웃음과 반짝이는 눈빛은 그 모든 수고에 대한 가장 큰 보상이었다.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이 한글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조금 더 넓혀 가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더욱 가깝게 느끼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한국어 교사로서 더없는 기쁨일 것이다. 앞으로도 아이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함께 전하며, 먼 타국에서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배움의 순간들을 하나씩 만들어 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