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교 현장 리포트・수업 사례

태국 유일의 사물놀이단
‘천하울림’, 한국의 장단을 세계에 울리다

한국의 초등학교에서 사물놀이는 맡기 부담스러운 업무로 꼽히곤 한다. 한국 전통문화를 계승한다는 차원에서 학교예술교육의 하나로 권장되지만, 정작 학교 현장에서는 담당자를 구하기가 어려운 편이다. 가산점과 같은 인센티브가 있어도 선뜻 손을 드는 교사는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결국 저경력 교사나 전입 교사가 맡게 되는 일도 적지 않다. 기피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연습 과정에서 생기는 소음, 많은 학생을 인솔하고 관리해야 하는 부담, 악기와 소품·의상 관리, 강사 관리까지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학생들이 가락을 맞추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필요한 데다, 국악 타악기에 좀처럼 흥미를 붙이지 못하는 아이들을 이끄는 일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태국 방콕에 와서도 사물놀이를 맡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걱정이 앞섰다. 무엇보다 사물놀이를 내켜 하지 않는 학생들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숨부터 나왔다. 그러나 그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의 예상과 달리 방콕한국국제학교의 학생들은 사물놀이를 무척 좋아했고, 무엇보다 사물놀이단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태국 유일의 사물놀이단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한국과 방콕한국국제학교를 알리는 다양한 공연에 참여했다. 공연이 있을 때마다 스스로 연습에 참여하고 사물놀이 복장을 입는 것을 즐거워했으며, 무대에 올라 힘찬 장단을 연주하며 관객과 호흡하는 데 큰 기쁨을 느꼈다. 그런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사물놀이단을 운영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부임 이후 지금까지 여러 외부 공연에 참여했다. 대사관이 주관한 8·15 광복절 기념행사, 평화통일 골든벨 축하 공연, 태국한국교육원 등이 주최한 한국유학박람회의 축하 공연 등 다양한 무대에서 우리의 전통음악인 사물놀이의 흥겨움을 알릴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태국 최고의 명문대학인 쭐랄롱꼰대학교에서 열린 국제 음악·무용 축제(International Music and Dance Festival)였다.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태국에서 수학하는 여러 나라의 학생들, 또 태국 현지인들이 각국의 전통 의상을 입고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무대를 꾸몄다. 그 가운데 우리 사물놀이단도 당당히 무대에 올라 한국의 전통문화를 선보였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 한-태 가정 학생인 병준이가 태국어로 각 악기의 특징을 설명하고 퀴즈를 내며 관객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특히 징을 소개하면서 “징을 천천히 치면 ‘징 차∼’입니다.”라고 태국어로 말했는데, 여기서 ‘차’는 태국어로 ‘천천히’라는 뜻이다. 그 순간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었는지는 번역을 해 봐도 잘 모르겠지만, 병준이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관객과 함께하는 사물 악기 소개 시간 덕분에 공연장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었다.

쭐라롱꼰대학교 국제 음악·무용 축제 공연 장면

공연이 끝난 뒤에는 여러 나라의 학생들과 관객들이 우리 사물놀이단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싶다며 찾아왔다.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큰 자부심과 성취감을 느꼈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소개하러 간 자리였지만, 오히려 아이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얻어 온 시간이었다.

사물놀이는 단순한 방과 후 활동을 넘어 아이들의 성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올해 징을 맡은 민호는 사물놀이를 주제로 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발표를 했고, 지난해까지 상쇠로 활동했던 지윤이는 사물놀이 경험을 계기로 한국에 돌아가 본격적으로 국악을 공부하며 국악중학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지윤이에게는 전통예술이 진로의 방향을 제시해 준 셈이다.

재외한국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단순히 교과 지식을 가르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경험하며 자신의 뿌리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 또한 중요한 교육의 역할이다. 그런 점에서 사물놀이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처음 12명으로 시작했던 사물놀이단은 현재 18명 규모로 성장했으며, 부원 중 3분의 1 이상이 한-태 가정 학생들이다. 이들에게 사물놀이는 단순한 악기 연주 활동이 아니라 한국 문화를 몸으로 배우고 자신의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형성하는 과정이다. 장단을 익히고 공연을 준비하며 한국 전통문화를 배우고, 무대에 올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이를 소개하는 경험은 아이들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심어 준다. 특히 한-태 가정 학생들에게는 한국과 태국이라는 두 문화를 연결하며 자신의 뿌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소중한 시간이 되고 있다.

올해는 새로운 풍물 장단인 웃다리장단을 연습하고 있다. 새로운 장단을 익히고 한 곡을 완성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사물놀이단은 방과 후 학교 시간에 운영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연습 시간이 부족해 아침 시간과 점심시간까지 활용하고 있다. 더욱이 사물놀이단이 초등학생으로만 구성되어 매년 6학년 선배들이 졸업하면 새로운 후배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기초부터 다시 가르쳐야 하는 경우도 많다.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함께 땀 흘리며 연습하고 무대를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협동심과 책임감을 배우고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을 키워 간다.

물론 재외한국학교에서도 사물놀이 운영이 쉽지만은 않다. 한국에서 꺼리는 이유가 이곳에도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지원을 해줄 국악 강사도 없이 혼자 지도하며 운영해야 해서 부담이 더 크다. 그럼에도 공연을 마친 뒤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얼굴, 객석을 가득 채우는 박수 소리, 그리고 자신이 한국 문화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을 가진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다시 힘을 얻게 된다.

방콕한국국제학교 ‘천하울림’ 사물놀이단
방콕한국국제학교 ‘천하울림’ 사물놀이단

나는 사물놀이의 울림이 단순한 음악 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재외국민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의 마음속에 ‘한국’이라는 뿌리를 단단히 내려 주는 소리다. 태국 한가운데서 울려 퍼지는 꽹과리와 장구, 북과 징의 소리는 아이들과 한국을 이어 주는 소중한 울림이다.

오늘도 우리는 새로운 장단을 배우며 다음 무대를 준비한다. 언젠가 아이들이 세계 어디에서 살아가더라도 사물놀이를 통해 느꼈던 한국의 장단과 그 속에 담긴 공동체의 정신만큼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태국에서 사물놀이를 가르치는 이유이자, 내가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가장 큰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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