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뜨겁지만 행복한 바람이 부는 곳, 파라과이에서 한국교육원 강사로 일한 지 4년이 되어 갑니다. 지구 반대편, 뜨거운 태양과 상큼한 레몬 향이 어우러진 바람이 불어오는 파라과이에서 현지인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일은 매일매일 새로운 발견이자 감동의 연속입니다. 단순히 언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만나 이해의 다리를 놓는 경이로운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1. K-팝에서 시작해 ‘우리’로 깊어지는 관심
현지 학습자들이 파라과이한국교육원의 문을 두드리는 계기는 K-팝이나 한국 드라마 같은 미디어 콘텐츠가 다수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학생들의 관심은 한국의 역사, 사회적 발전, 그리고 한국인 특유의 정서로 심화됩니다.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지만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이 있습니다. 그날은 ‘우리’라는 단어를 설명할 때였습니다. 한글로는 두 글자지만 스페인어 ‘nosotros’, ‘nuestro’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제가 직접 구운 ‘소파 파라과야’라는 파라과이 음식을 하나둘씩 나누어 주며 “이것은 우리 집에서 만든 것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수강생 중 한 명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왜? 선생님 집을 누에스트라 카사(nuestra casa)라고 해요? 내 집이라고 하지 않아요? 왜요?”
“네, 맞아요. 한국에서는 세뇨라(기혼 여성)가 남편을 말할 때도 ‘우리 남편’이라고 해요. 하지만 남편을 공유하지 않아요. 한국인들은 ‘우리’라는 단어를 좋아하고 자연스럽게 사용해요. ‘우리’는 단순한 복수형(nosotros) 단어가 아니라, ‘너와 나는 한 울타리에 있는 친한 사이’임을 확인해 주는 마음의 표현이에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저를 가리키면서 “우리 선생님 빅토리아, 우리 CECP(파라과이한국교육원)”라고 말하며 엄지 척을 합니다. 서로 멀리 떨어진 두 나라가 ‘우리’라는 따뜻한 가치로 연결된 듯해 흐뭇하게 웃는 저를 바라보며 학생들은 제비처럼 입을 모아 같이 “우리 선생님은 빅토리아예요.”라고 목청을 돋워 외치고 있었습니다. 콧날이 찡해지는 ‘우리’였습니다.
2. 말줄임표 속에 숨은 땀방울: 시행착오와 교육적 시도
학습자들이 한국어를 배우며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단연 조사(‘은/는’, ‘이/가’)의 쓰임과 높임말 분별, 그리고 한국어 특유의 어순입니다. 스페인어와 구조가 다르다 보니 머리로는 이해해도 입 밖으로 내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여기서 교육자로서의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문법 규칙을 회차마다 200장 가까운 파워포인트 슬라이드에 빼곡히 적어 넣어 논리적으로 주입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학생들은 이내 지쳐갔습니다. 경음과 격음의 차이를 거의 구별하지 못하는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먹다’를 어른들께 쓸 때는 왜 ‘먹어 주세요’가 아닌지, ‘자다’는 왜 ‘자 주세요’가 아닌지 너무 어렵다는 말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이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두 가지의 방법을 연구하였습니다.
첫째는 학습자들의 흥미를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효과를 높이기 위한 맥락 중심 받아쓰기(Contextual Dictation)였습니다. 단어 하나만 불러 주는 대신, 실제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대화문이나 문장 속에서 받아쓰게 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도 어려워했습니다. 이때는 중요한 조사, 어미, 혹은 발음 규칙이 적용되는 핵심 단어 부분만 빈칸으로 뚫어놓고 채우게 하는 빈칸 받아쓰기(Blank Dictation)를 병행합니다. 마지막으로 초급 단계보다는 4, 5단계 과정 학습자들에게 적용하는 방법으로 딕토글로스(Dictogloss)가 있습니다. 짧은 글을 정상 속도로 읽어 주고 학습자는 핵심 단어만 받아 적게 한 뒤, 그 메모를 바탕으로 동료들과 협력하여 원래의 글과 최대한 비슷하게 문장을 재구성해 보는 활동입니다. 의사소통 능력과 문법 능력을 동시에 잡을 수 있습니다. 아울러 교사가 바로 교정해 주기보다 정답 화면이나 텍스트를 보여 주고 스스로 틀린 부분을 찾아 고치게 하는 자기 교정(Self-Correction) 방식이 기억에 훨씬 오래 남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역할극과 상황 중심의 시각화 수업’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가상의 가족을 구성하거나 회사를 만들고, 수강생들이 직접 가족이 되어 보고, 사원이나 선생님도 되어 보는 것입니다. 틀려도 괜찮은 안전한 놀이터를 만들어 주자, 학생들은 비로소 문법의 틀에서 벗어나 언어를 ‘몸’으로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교정한 받아쓰기 옆에 쓴 몇 마디의 글귀는, 학습자들에게 건네는 제 마음의 작은 선물입니다. 글을 적다 보면 오래전 초등학교 시절의 풍경들이 아련하게 번져옵니다. 선생님과 비밀 일기를 나누듯 설레고 좋았던 기억들. 세월이 흘러 이제는 파라과이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서툰 손에게 그 기억의 조각들을 나누어주려 합니다. 학습자들의 공책 위에 제 마음을 수놓는 그 시간, 저는 참 깊은 행복을 느낍니다.

수업 중 역할극 활동
3. 경험하지 못한 단어 앞에서
서른둘의 청년 페르난도는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파라과이에 없는 기차와 지하철을 비행기보다 더 궁금해합니다. 어떻게 기차와 지하철을 구분하는지를 묻는 페르난도를 바라보면서 “큰 강을 건널 때, 강바닥 밑으로 깊게 터널을 만드는 것보다 강 위로 다리를 놓아 건너는 게 쉬워요. 산이나 고개를 만날 때도 지하철은 오르지 못해요. 지하로 가다가 갑자기 길이 바뀌면 지하철은 기차처럼 땅 위를 달려요. 그래서 지하철은 달리는 방법이 두 개 있어요.”라며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데도 제가 원하는 만큼의 전달력이 있었을까 조금은 걱정이 듭니다. 페르난도는 기차를 경험해 본 적이 없고 지하철은 더욱 그렇다 보니 제 설명을 듣다가 손을 좌우로 휘저으며 “이구알 노마스, 이구알 노마스(igual nomás)”라고 반복을 합니다.
“뭐, 중요하지 않습니다. 괜찮습니다”라는 뜻으로 해석이 되는 스페인어에 그만 힘이 빠집니다. 학생들은 자신이 경험하고 눈으로 본 환경을 바탕으로 언어를 습득하려 합니다. 매일 버스(Colectivo)를 타거나 오토바이, 자동차로 이동하는 파라과이 학습자들에게 땅속으로 질주하는 대규모 열차나, 도시와 도시를 고속으로 잇는 기차는 미디어나 책 속에서나 존재하는 ‘상상의 교통수단’에 가까울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 단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는 단어(환승, 노선도, 막차, 플랫폼 등)를 마주할 때, 학습자들의 뇌는 이를 실용적인 어휘가 아닌 비현실적인 추상 개념으로 받아들이며 첫 단계부터 강한 이질감을 느끼는 듯합니다. ‘파라과이 밖으로 안 나가면 그만’이라는 태도인 셈입니다. ‘이 단어가 내 미래에 필요한가?’라는 효용성을 저울질하는 것 같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로 선을 그은 후 그것들을 그냥 포기해 버리는 습성으로 이어지는 것을 발견할 때 교사의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4. 교실에서 만난 성장: 에스텔라 이야기
교육원 수강생들의 눈부신 성장을 목격할 때 정말 보람이 있습니다. 처음 수업에 왔던 ‘에스텔라(가명)’는 한국어 발음을 부끄러워하던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성인들 사이에 섞여서 “안녕하세요. 저는 에스텔라예요”라는 인사조차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자기를 소개하던 학생이 한국어의 매력에 빠지면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곧장 교탁 앞으로 와 서툰 한국어로 “선생님, 오늘 수업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이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에요?”라며 질문을 건넸습니다. 눅진하게 달라붙은 사탕과 과자를 건네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후, 교육원의 말하기 대회 행사에서 에스텔라가 앞으로 나와 진심을 담아 또박또박 한국어를 말하는 모습을 보며, 한 사람의 세계가 한국어를 통해 넓어지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교육 담당자로서 최고의 보람 중 하나였습니다. 스물한 살이 된 에스텔라는 지금 한국의 K 대학교로 진학을 하여 더 넓은 세계로의 발돋움을 하는 중입니다.

K대학교에서 한국어로 발표하는 에스텔라(가명)
5. 파라과이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
타국에서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요구되는 전문성은 단순히 언어학적 지식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현지 문화에 대한 깊은 존중, 즉 ‘상호문화적 역량(Intercultural Competence)’이 기본이 돼야 할 것입니다. 스페인어와 한국어의 차이를 명확히 인지하고, 파라과이인들의 정서와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때 비로소 가슴에 와닿는 수업을 할 수 있으리라 여겨 스페인어와 파라과이의 공용어인 과라니어를 배우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새롭게 깨달은 점이 ‘가르침이란 일방적인 소통이 아니라 상호 간의 성장’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현지 초·중·고 아이들과 성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그들은 저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낙천성과 타인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여유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고기를 잡으러 산으로 갈까요, 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갈까요.’ 교재 속 노래들을 부르면 음정도 맞지 않는데 저를 따라 부른다고 목청을 높여 끝까지 부릅니다. 성인들이 주를 이루는 한국어 강좌에서 이미 성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얼굴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들 한없이 귀엽기도 합니다. 신호등과 횡단보도 같은 새 어휘가 나오면, 학생들은 그 단어를 씹어 삼키기라도 하듯 가수 이무진의 「신호등」을 흥얼거리며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붉은색 푸른색 그 사이 3초, 그 짧은 시간….’ 안아주고 인사하며 같이 입을 크게 벌려 부릅니다. 교사의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더 사랑하고 더 잘 가르치자 다짐하게 하는 모습들입니다.
파라과이한국교육원의 강의실은 오늘도 한국과 파라과이, 두 나라의 꿈이 함께 자라는 작은 지구촌입니다. 앞으로도 이곳에서 더 많은 이들이 한국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그 여정에 진심으로 함께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