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교 현장 리포트・에세이∙칼럼

연어의 계절

생성형 AI로 만든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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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한국학교에서 6월과 7월은 연어의 계절입니다. 작년에 졸업시켜 사회로 보낸 아이들이 방학을 맞아 다시 학교를 찾아왔습니다. 작년까지 자기 집처럼 편해하던 학교인데 이제는 문을 빼꼼 열고 어색하게 들어오는 얼굴이 낯섭니다. 몇 달 전과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은데, 대학 생활을 이야기하는 모습에서는 어른의 얼굴도 느껴집니다. 그래도 대학교에서의 무용담을 쉼 없이 얘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졸업시킨 그 연어가 다시 강으로 돌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대로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또 다른 연어들은 이제 더 큰 바다로 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6월 말부터는 학교생활기록부를 정리하고, 자기소개서며 면접 준비로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갑니다. 짧게는 3년, 길게는 12년 동안의 노력이 서류 몇 장으로 정리되는 시기입니다. 신기하게도 이맘때 교실은 자주 눈물바다가 되곤 합니다. 선생님이 보기에는 아이들 모두 열심히 노력한 것 같은데 스스로는 후회뿐이라고 합니다. “조금만 더 공부할 걸 그랬어요.”, “대회에도 나가볼 걸 그랬어요.”, “그때 발표를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너무 떨었어요.” 합격 여부가 아직 정해진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벌써 과거의 자신을 탓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저는 조용히 연어들을 진정시킵니다. 마침 이 시기는 월드컵과도 겹쳐서 이야기가 가장 잘 통합니다.

“선생님, 그때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많이 준비했는데 사람들 앞에 서니까 너무 떨렸었어요.”
“축구를 좋아하니?”
“축구요? 네, 좋아하죠.”
“축구 볼 때 선수들이 넘어지고, 실수하고, 그래도 끝까지 뛰었잖아. 감동적이었지. 너희도 보면서 안타까워하고. 경기가 끝나고 돌아온 선수들을 감독이 안아 주는 모습도 멋졌지?”
“네, 져서 너무 힘들었어요. 이겼으면 좋았을 텐데.”
“만일 방금 본 그 감독이 지고 들어온 선수들에게 왜 열심히 못 했냐고, 그 경기 실력이 뭐냐고 바로 화만 낸다면 너는 그걸 보고 무슨 마음이 들까? 그 사람을 좋은 감독이라고 생각할까?”
“이제까지 열심히 뛰고 온 선수들에게 그러면 안 되죠! 자기는 경기를 하지도 않았는데요!”
“그렇지? 감독은 연습부터 모든 과정을 본 사람이야. 선수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고 경기가 어떻게 잘 안 풀렸는지도 알고…….”
“네…….”
“우리는 모두 좋은 감독이란 열심히 한 경기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실망한 선수들은 다독이며,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잖아. 그렇지? 얘들아, 우리는 대부분 선수로 살아가는 데는 익숙하지. 매번 경기를 뛰는 것 같고. 그런데 우리에게는 매번 우리를 봐줄 감독이 없잖아. 내내 연습했던 우리의 노력도, 그 성과도 가장 자세히 보고 아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어. 그러니까 우리는 선수이자 감독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돼. 시험을 봤어. 떨려서 잘 못 봤어. 중간에 실수도 했어. 그래도 너희는 끝까지 마쳤어. 이 모든 것이 지금의 경기 결과인데 우리 지금 그중 ‘시험을 못 봤다, 성적이 잘 안 나왔다’라는 것만 생각하고 있지 않니? 좋은 결과만 받아들일 수 있고 나머지는 의미 없었던 시간일까? 만일 저 감독이 좋은 결과만을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될까? 그 감독은 선수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만 생각하는 나쁜 사람이 될 거야. 진정한 감독은 선수를 격려하고 잘한 경기와 못한 경기의 결과를 모두 받아들이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다음 경기를 준비할 수 있으니까.”

생성형 AI로 만든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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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여기까지 하고 나면 아이들은 어느새 조용해지고 울음을 멈춥니다. 괜히 멋쩍어하니까 슬며시 모른 척해주면서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교사로서 완벽한 마무리입니다.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늘 느끼는 것은, 그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어야 하는 사람이 저 자신이라는 점입니다. ‘조금만 더 잘 가르칠걸.’, ‘그때 저 말을 해 줄걸.’, ‘아, 결과는 어떻게 나오지?’

입시가 시작되면 저 역시 늘 지나간 시간을 붙잡고 허망해합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입시 결과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학생도, 교사도 준비는 할 수 있고, 최선을 다할 수도 있지만 합격까지 만들어 낼 수는 없는 영역이죠. 또 아쉽지만 운이 더해져야 하는 순간도 분명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을까요? 부끄럽지 않을 만큼 준비하고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오늘 노력했던 나를 인정해 주는 것.

저에게 주어진 일도 단순합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한 걸음씩 걸어가다 보면 원하던 길을 가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길을 만나기도 하고, 돌아가는 길 끝에서 전혀 다른 풍경이 나오기도 한다는 것을 이미 그 길을 가 본 어른으로서 알려주는 것입니다.

곧 아이들은 각자의 결과를 받아 보게 되겠지요. 누군가는 기쁨의 환호성을 지를 것이고, 누군가는 아쉬움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하지만 그간 아이들을 바라본 교사의 입장에서 조그만 바람이 있다면 아이들이 모든 결과보다 먼저 자신들을 품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멋진 감독이자 선수로서 앞으로의 시간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뜨거운 여름입니다. 작년에 바다로 떠났던 연어들이 다시 돌아왔고, 올해의 연어들은 더 큰 바다를 향해 헤엄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그리고 그 아이들을 배웅하는 저도 이 계절을 맞을 마음의 준비가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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