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타이의 봄, 대한민국이 모인 하루
2026 Global Science Festival KISY를 돌아보며
행사 전날 밤이었다. 운동장에는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학생들은 체험 부스에 붙일 마지막 안내문을 정리하고 있었고, 교사들은 운동장 한가운데에 모여 배치도를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 체육관에서는 기업 관계자들이 전시물을 설치하고 있었고, 학부모들은 다음 날 운영할 음식 부스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선생님, 이 현수막 조금만 더 옆으로 옮길까요?”
“여기 전선이 지나가는데 한 번 더 확인해야 할 것 같아요.”
“내일 진짜 사람이 많이 올까요?”
밤 9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누구 하나 먼저 가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문득 운동장 한가운데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학생들이 있었다. 교사들이 있었다. 학부모들이 있었다. 기업 관계자들이 있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일 열리는 행사는 단순한 과학축전이 아니구나. 이곳 옌타이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이 함께 만드는 하나의 이야기구나.’
그 생각과 함께 지난 4년의 시간이 떠올랐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처음 옌타이에 왔을 때의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었다. 서울의 학교에서 근무하다 재외한국학교로 오게 된 나는 무의식적으로 학생들을 비교하고 있었다. 한국의 학생들과 비교하면 학업적으로 부족해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해되지 않는 점도 있었다.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학생들이 떠올랐고, 재외국민 특별전형이라는 제도를 바라보며 복잡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어느 날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이 아이들은 정말 부족한 걸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보고 있던 것은 학생들의 현재 모습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발표를 어려워하던 학생이 친구들을 이끌고 있었고, 자신감 없던 학생이 누구보다 따뜻하게 친구를 챙기고 있었다. 교실 안에서는 보이지 않던 가능성이 교실 밖에서는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가능성을 가장 먼저 발견하게 해 준 것이 바로 과학축전이었다. 우리 학교는 지난 4년 동안 매년 전일제 과학축전을 운영해 왔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학교 안에서 학생들끼리 과학 체험을 나누는 작은 행사였다.
첫 번째 과학축전은 지금 생각해도 참 서툴렀다. 학생들은 실험 자체에는 열심이었지만 관람객에게 설명하는 것은 어려워했다. 질문을 받으면 머뭇거렸고,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 당황했다. 두 번째 과학축전에서는 조금 달라졌다. 학생들은 실험 결과를 설명하기 시작했고, 관람객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스스로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세 번째 과학축전에서는 후배를 가르치는 학생들이 나타났다. 자신이 겪었던 실패를 후배들에게 알려 주고 더 좋은 부스를 만들기 위해 함께 고민했다. 그리고 네 번째 과학축전이 되었을 때 학생들은 더 이상 참가자가 아니었다. 기획자가 되었고 운영자가 되었으며 후배들을 이끄는 리더가 되어 있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학생들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기회가 부족했던 것이었다. 적절한 무대가 주어지면 누구보다 빛날 수 있는 아이들이었다.
나는 과학을 좋아한다.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는 순간의 설렘을 좋아하고,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끝까지 파고드는 과정을 좋아한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무언가를 깨닫는 순간 눈빛이 달라지는 모습을 좋아한다. 그래서 늘 아쉬움이 있었다. 교실 수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었다. 45분 수업 안에서 전달할 수 있는 과학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과학은 암기하는 학문이 아니다. 직접 만들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된다. 어쩌면 그래서였을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자꾸만 무대를 만들고 싶었다. 과학축전을 열고, 천체 관측을 하고, 과학 캠프를 운영하고, 학생들이 직접 체험 부스를 운영하는 자리를 만들었던 이유도 결국은 같았다. 학생들이 과학을 시험 과목으로만 기억하지 않았으면 했다. 과학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했으면 했다. 그 마음이 4년 동안 이어졌고, 결국 2026년 우리는 더 큰 꿈을 꾸게 되었다.
“학교 안에서만 하지 말고 지역사회와 함께해 보자.”
그렇게 시작된 것이 2026 Global Science Festival KISY였다. 하지만 이 행사는 학교의 힘만으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행사였다. 학생들이 준비를 시작하자 학부모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다. 한국 기업들이 흔쾌히 참여 의사를 밝혔고, 대학과 기관들이 힘을 보탰다. 한인사회는 행사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서 주었고 지역사회도 따뜻한 관심을 보내 주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재외한국학교의 진짜 힘을 보게 되었다.
해외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하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 우리는 더 자주 서로를 바라보게 된다.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면 손을 내밀고,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기꺼이 시간을 내어 준다. 행사 전날 밤 운동장에서 보았던 풍경은 바로 그 모습이었다. 학생들의 꿈을 위해 교사들이 움직이고, 학부모들이 움직이고, 기업이 움직이고, 지역사회가 움직이고 있었다.
2026 Global Science Festival KISY 행사 장면
행사 당일 아침, 운동장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개막식에는 주칭다오 대한민국 총영사님과 옌타이시 교육국 부국장님을 비롯한 여러 내빈이 참석해 자리를 빛내 주셨다. 학생들은 유난히 긴장한 표정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실수하면 어떡하죠?”라고 묻던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막상 행사가 시작되자 학생들은 놀라울 정도로 당당했다. 총영사님과 교육국 부국장님이 부스를 둘러보며 질문을 하자 학생들은 자신들이 준비한 탐구 과정과 과학 원리를 또박또박 설명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 한편이 뭉클해졌다. 몇 년 전만 해도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조차 어려워하던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이 이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외교관과 지역 교육 행정 책임자 앞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더 이상 배우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스스로 배우고, 설명하고, 나누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행사장을 걷는 동안 나는 여러 번 발걸음을 멈추었다. 평소 발표를 어려워하던 학생이 마이크를 잡고 설명하는 모습 앞에서. 과학에 큰 관심이 없던 학생이 관람객들에게 실험 원리를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 앞에서. 자신감이 부족하던 학생이 어린아이들의 질문에 웃으며 답해 주는 모습 앞에서. 그리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선생님들 앞에서.
생각해 보면 이 행사는 과학 교사 몇 명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국어 교사는 학생들의 발표 원고를 읽어 주었고, 미술 교사는 부스 디자인을 도왔다. 담임교사들은 학생들의 고민을 들어 주며 자신감을 북돋아 주었다. 행정실은 수많은 협의와 준비를 통해 행사가 안전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했다. 학생들이 귀가한 뒤에도 교무실 불은 늦은 시간까지 꺼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행사 동선을 수정했고, 누군가는 안전 계획을 검토했으며, 누군가는 학생들의 발표 자료를 확인했다. 학생들이 무대 위에서 빛나는 순간 뒤에는 그렇게 묵묵히 학생들을 밀어주는 선생님들의 시간이 있었다.
행사가 끝날 무렵 한 초등학생이 중학생 운영자에게 말했다.
“형처럼 되고 싶어요.”
짧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학생의 표정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던 아이가 누군가의 꿈이 되는 순간. 배우는 학생이 가르치는 학생이 되는 순간. 그 순간 나는 교육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이 스스로의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돕는 일이다. 행사가 모두 끝난 뒤 운동장에 혼자 남아 한참을 걸었다. 몇 시간 전까지 웃음소리와 발걸음으로 가득했던 곳은 다시 조용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텅 빈 운동장이 허전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곳에는 지난 4년 동안 학생들이 흘린 땀과 선생님들의 고민, 학부모들의 응원, 지역사회의 따뜻한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이 글을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학생들의 성장을 위해 함께 고민해 주신 모든 선생님께, 학교를 믿고 응원해 주신 학부모님들께, 학생들을 위해 기꺼이 힘을 보태 주신 기업 관계자와 옌타이한인상공회를 포함한 지역사회 구성원들께, 그리고 자신의 시간을 쏟아 가며 끝까지 도전해 준 우리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2026 Global Science Festival KISY는 과학축전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과학이 아닌 사람의 축제였다. 학생들의 가능성을 믿어 준 사람들. 학생들의 성장을 위해 함께 땀 흘린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기꺼이 손을 맞잡은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나는 언젠가 이 학교를 떠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날 운동장에서 성장하던 아이들의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도 학생들에게 무대를 만들어 줄 것이다. 왜냐하면 한 명의 학생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순간을 보는 일보다 더 행복한 교육을 아직 만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