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교 현장 리포트・에세이∙칼럼

연변의 작은 교실, 세계를 품다

연변대학교 앞 상가 모습

연변대학교 앞 상가 모습

2026년 2월 26일, 무석에서 상해를 거쳐 약 3시간의 비행 끝에 연길에 도착했다. 새하얀 눈발이 흩날리는 공항에 내린 순간, 마침내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어왔던 연변의 땅에 서 있다는 사실에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감사하게도 친절히 마중 나와주신 영어 선생님과 함께 숙소로 향하던 길, 중국어와 한국어가 나란히 적힌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두 언어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풍경은 연변조선족자치주만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보여 주는 듯했고, 그동안 여러 나라에서 많은 경험을 해왔던 나에게도 이러한 광경은 신선한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다음 날 학교에 부임 인사를 하러 갔을 때 아담한 교정과 따뜻한 선생님들의 환영 속에서 나의 연변 생활이 시작되었다. 전교생 87명의 작은 학교였지만, 그 어떤 학교보다도 큰 가능성과 따뜻함을 품고 있는 곳이었다. 7학년 담임을 맡아 처음 교실에 들어섰을 때 세 학생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 수는 적지만 그만큼 학생 한 명 한 명을 깊이 이해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특별한 교육 환경이었다.

연변한국국제학교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양한 나이와 국적의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며 여러 문화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공간이다. 학생들은 한국어와 중국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며 생활하고, 학교에서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학교 밖에서는 중국 사회의 조선족 자치주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이러한 환경은 학생들에게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와 세계를 바라보는 넓은 시야를 길러 준다. 학생들과 생활하면서 가장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는 “선생님, 저는 한국인인가요, 중국인인가요, 조선족인가요?”이다. 처음에는 정체성에 대한 단순한 궁금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질문 속에는 국적과 언어, 문화와 소속감 사이에서 고민하는 학생들의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세계시민교육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블라디보스토크 제28번 외국어학교 학생들과 팀 활동

블라디보스토크 제28번 외국어학교 학생들과 팀 활동

정신없이 지나간 올해 상반기는 교과 수업(7, 9, 10, 12학년)과 학교 업무, 그리고 국제 교류 프로그램 준비와 운영에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은 기간이었다. 특히 3월부터 5월 초까지 블라디보스토크 제28번 외국어학교(Vladivostok Educational Center No. 28 of Foreign Languages)와의 국제 교류를 준비하며 학생들에게 어떤 경험이 가장 의미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하였다. 교육과정 연계 방안과 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구상하며 여러 차례 온라인 회의를 진행했고, 학생들이 세계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기회를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그 결과 5월 10일부터 14일까지 블라디보스토크 제28번 학교 학생들과 교사들이 연길을 방문하여 다양한 국제 교류 활동을 함께할 수 있었다. 한국어·영어·중국어·러시아어를 활용한 공동 수업, 문화 체험 활동, 한러 문화 발표 프로젝트 등을 통해 양국 학생들은 서로의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어색해하던 학생들이 점차 마음을 열고 함께 웃으며 협력하는 모습을 보며 국제 교류의 진정한 가치를 실감할 수 있었다.

튀르키예 학교 학생들과 온라인 교류 활동

튀르키예 학교 학생들과 온라인 교류 활동

6월 16일에는 튀르키예 학교 학생들과 온라인 국제 교류 활동을 진행하였다. 본교 학생들은 영어를 활용하여 학교의 역사와 교육과정, 동아리 활동, 다양한 방과후 프로그램을 소개하였다. 학생자치회, 스포츠 활동, 예술 동아리, 봉사활동 등 자신들이 직접 참여하고 있는 활동을 자신감 있게 설명하였고, 튀르키예 학생들 역시 자신들의 학교와 문화를 소개하며 활발한 대화를 이어 갔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려는 학생들의 모습은 세계시민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었다.

국제 교류 활동은 학생들의 학습 태도에도 의미 있는 변화를 불러왔다. 특히 오는 10월 말 예정인 블라디보스토크 방문 교류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목표가 되고 있다. 학생들은 러시아 현지 학교를 직접 방문해 수업에 참여하고 또래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기대감 속에서 이전보다 더욱 열심히 외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영어 발표와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들이 늘어났고, 일부 학생들은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까지 스스로 찾아보며 교류를 준비하고 있다. 외국어가 더 이상 시험을 위한 과목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소통의 도구가 되고 있다.

나의 수업에서도 세계시민교육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학생들은 영어 토론 활동을 통해 환경 문제와 인권 문제를 탐구하고, 다양한 국가의 사례를 비교하며 해결 방안을 모색하며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운다. 문학 작품을 읽을 때는 등장인물의 삶을 통해 공감 능력을 기르고, 사회 문제를 다룬 글을 읽으며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힘을 키운다. 이러한 과정은 학생들이 단순히 시험을 위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폭넓은 시각을 갖게 한다.

연변한국국제학교 내 윤동주 시비

연변한국국제학교 내 윤동주 시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시민이 된다는 것이 자신의 뿌리를 잃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자신의 문화와 정체성을 더 깊이 이해할 때 다른 문화도 진심으로 존중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기면서도 다른 나라의 문화와 가치를 존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세계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 재외 교육 현장에서 우리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본다.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고 여러 문화를 경험하며 성장하는 학생들은 국경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다리가 될 것이다. 연변의 작은 학교, 작은 교실에서 시작된 배움이 블라디보스토크와 튀르키예를 지나 더 넓은 세계로 이어지고 있다.

처음 연길에 도착했을 때 나를 맞이하던 하얀 눈발과 한국어와 중국어가 함께 적힌 간판들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때는 낯선 땅에 대한 설렘이 컸다면, 이제는 이곳에서 만난 학생들과 함께 미래를 향한 꿈을 키워 가고 있다는 사실에 더 큰 보람을 느낀다. 특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온 학생과 연변의 학생이 함께 웃고, 튀르키예의 학생과 화면을 사이에 두고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세계는 결코 멀리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학생들이 서툰 언어와 번역기를 사용하면서도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문화의 차이를 신기해하며 질문을 주고받고 미소 짓는 순간, 세계는 이미 우리 교실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전교생 87명의 작은 학교, 그리고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7학년 세 학생. 숫자로만 보면 작고 평범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작은 교실에서 학생들은 러시아 친구들과 함께 수업하고, 튀르키예 학생들에게 학교를 소개하며, 자신들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학생들의 시선은 이미 교실 창문을 넘어 더 넓은 세상을 향하고 있다.

나는 이제 세계시민교육이 거창한 이론이나 특별한 프로그램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학생들이 함께 웃고, 다른 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하며, 친구가 되어 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블라디보스토크 학교와의 대면 교류를 준비하며 수없이 회의하고, 학생들과 발표를 연습하며 고민했던 시간, 그리고 튀르키예 학생들과의 온라인 만남을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했던 순간들은 모두 학생들이 더 넓은 세상과 연결되는 소중한 과정이었다.

다가오는 10월, 학생들은 외국 친구들과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영어 공부에 더욱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어떤 학생은 친구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스스로 찾아보고, 다른 학생은 영어 표현을 연습하며 자신감을 키워 가고 있다. 국제 교류는 학생들에게 단순한 행사나 체험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를 향해 한 걸음 내딛게 하는 성장의 기회가 되고 있다.

오늘도 연변의 작은 교실에서는 세계를 향한 배움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작은 교실은 국경을 넘어 세계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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