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당연한 분리수거,
중국 친구는 왜 한 번도 해본 적 없을까?
우리 아파트 단지 정문 옆에는 쓰레기통 여러 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초록색은 음식물, 검은색은 생활쓰레기, 파란색은 재활용품 전용이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는 이 광경을 보고 중국에서도 분리수거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착각이었음을 확인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같은 반 친구와 등굣길에 나눈 대화가 그 계기였다.
쓰레기통 옆을 지나가다 친구에게 별다른 의도 없이 “너희 집도 분리수거를 이렇게 나눠서 하니?”라고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분리수거? 그게 뭔데, 해본 적 없는데”였다.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지만 친구는 오히려 그런 질문을 왜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냥 한 봉지에 다 넣어서 아무 데나 버리면 돼. 어차피 아저씨들이 다 섞어서 가져가.” 한국에서는 유치원생도 아는 당연한 행동을, 이 친구는 열일곱 살이 되도록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저 색색의 통들은 대체 무슨 의미로 존재하는 것인가. 이 질문이 취재의 출발점이 되었다.
멀쩡해 보이는데, 안 지켜지는 이유
먼저 중국의 분리수거 제도에 관한 자료를 조사했다. 중국의 분리수거 정책은 한국에 비해 역사가 짧은 편이었다. 상하이시가 2019년 처음으로 생활쓰레기 분리배출을 의무화한 이후 여러 대도시가 뒤를 이었다. 광저우시 역시 그중 하나였다. 광저우시가 제정한 「생활쓰레기 분류 관리 조례」를 살펴본 결과, 아파트와 학교, 공공장소마다 분리수거함을 설치해야 한다는 규정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 이후 단계에 있었다. 아파트 단지의 환경미화원에게 직접 문의한 결과, “주민들이 어차피 다 섞어서 버리기 때문에 일일이 다시 분류할 수 없어 그대로 실어 보낸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이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다음 날 아침 6시 30분경 수거 현장을 관찰했다. 결과는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재활용통과 일반쓰레기통에 담겨 있던 내용물이 구분 없이 같은 차량에 실렸다. 분리수거함은 여러 개였지만, 이를 수거하는 차량은 한 대뿐이었다.
한국에서는 왜 당연했을까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나는 왜 분리수거를 당연한 일로 여기고 있었을까. 곰곰이 되짚어 보니 초등학교 2학년 때 받았던 환경 교육이 떠올랐다. 페트병은 라벨을 떼고 뚜껑을 따로 분리하며, 우유팩은 물로 헹군 뒤 펴서 말린다는 내용을 담임선생님이 하나하나 가르쳐 주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번거롭게 느껴졌지만, 돌이켜보면 그 과정이 습관으로 자리 잡은 것이었다.
한국은 1995년부터 쓰레기 종량제를 시행해 왔다. 자원순환정보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재활용률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재활용 습관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단순히 시민 의식만이 아니라,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되고 무엇보다 이웃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는 사회적 압력이 함께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스스로를 돌아봐도 마찬가지다. 분리수거의 원리를 정확히 이해해서 실천한다기보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행하는 경우가 많다.
교과서에는 있는데, 삶에는 없다
여기까지 조사한 뒤에야 진짜 차이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핵심은 분리수거를 배웠는지 여부가 아니라, 배운 내용이 실제 생활로 이어지는지 여부에 있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학교 후배 두 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중국 현지 학교를 다녔던 한 후배는 “중국 학교에서도 환경 수업 시간에 분리수거에 관한 내용을 배우긴 했다. 다만 그날 하루 배우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답했다.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른 후배의 사례였다. 이 후배는 한국에서 중국으로 전학 온 초기 몇 달간은 계속해서 분리수거를 실천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나 혼자만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스스로 이상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그냥 대충 버린다”라고 말했다. 이 응답은 취재 과정에서 특히 오래 기억에 남았다. 습관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이 함께 뒷받침될 때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럼 한국 방식이 정답일까
여기서 한 가지 짚어볼 지점이 남아 있다. 한국식 분리수거 체계가 무조건 우월한 방식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추가로 자료를 조사한 결과, 중국의 대도시들은 개인이 세밀하게 분류하는 방식 대신, 수거 이후 대형 처리 시설에서 기계와 인력을 활용해 재분류하는 시스템을 확대해 나가고 있었다. 즉 한국은 시민 각자가 정확히 분류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 반면, 중국의 대도시들은 수거 이후 시스템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쪽이 더 우수한 방식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한국식 체계는 시민 의식이 흔들릴 경우 시스템 전체가 함께 흔들릴 위험이 있고, 중국식 체계는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 효과가 눈에 띄지 않아 동기가 약화될 수 있다는 한계를 지닌다. 결국 두 방식 모두 각 사회가 시민을 어떻게 길러 왔는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쓰레기통 앞에서
취재를 마치고 며칠 뒤, 다시 그 쓰레기통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초록색, 파란색, 검은색 통은 여전히 아무 일 없다는 듯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그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서게 되었다. 분리수거에 대해 물었던 반 친구는 결코 무책임한 학생이 아니다. 오히려 다정한 성격으로, 중국어를 잘 알아듣지 못할 때마다 몇 번이고 다시 설명해 주는 친구다. 그런 친구가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 이유는 게으르거나 환경 문제에 무관심해서가 아니었다. 학교에서 관련 교육을 받긴 하지만, 실제 생활 속에서 아무도 분리수거를 실천하지 않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그 친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성장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생각에 이르자,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가 하는 물음이 뒤따랐다.
사실 스스로도 자신 있게 답하기는 어렵다. 분리수거를 실천하고 있긴 하지만, 이는 환경을 깊이 고려한 신념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 어릴 때부터 학습되어 몸에 밴 습관에 가깝다. 만약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만 성장했다면, 분리수거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채 열일곱 살을 맞이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분리수거를 실천하는 것 역시 대단한 신념의 결과라기보다, 그러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나니, 반 친구를 안타깝게만 바라보았던 스스로의 시선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번 취재를 통해 명확한 답을 찾았다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질문이 하나 늘었다. 우리는 매일 같은 쓰레기통 앞을 지나가면서도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이 간극을 누가, 언제, 어떻게 좁혀 나갈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훗날 이 도시에서 나와 그 친구가 어른이 되었을 때, 저 쓰레기통들이 지금처럼 아무 의미 없이 놓여 있지는 않기를 바란다. 그 변화는 어쩌면 대대적인 정책이나 캠페인이 아니라, 오늘과 같은 작은 질문 하나에서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묻고자 한다.
“우리는 오늘, 그 쓰레기통 앞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