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컵의 다음 목적지
학교에서 시작된 작은 실천, 바다를 지키는 큰 변화
바다거북이 비닐봉지를 해파리로 착각해 삼키는 장면이 TV 화면을 채웠다. 뉴스에서 처음 그 장면을 보았을 때는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하지만 바다는 멀리 있었고, 플라스틱 문제도 나의 일상과는 조금 떨어진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어느 날, 거북이 로고가 그려져 있는 학교 자판기 앞에서 음료를 마신 뒤 손에 남은 플라스틱 컵을 바라보는 순간 바다에서 죽어가던 거북이가 떠올랐다.
“혹시 내가 버린 이 컵도 언젠가 바다로 흘러가는 것은 아닐까?”
손에 들고 있던 플라스틱 컵 하나가 언젠가 바다거북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컵은 어디로 갈까?”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으로 끝나지 않았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 해양생물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결국 학교에서부터 작은 변화를 시작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타오빈 무인 음료 자판기
태국에는 ‘타오빈(Tao Bin)’이라는 무인 음료 자판기가 있다. 학교와 쇼핑몰, 지하철역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버튼 몇 번만 누르면 오레오 토핑이 가득한 스트로베리 프라푸치노 같은 다양한 종류의 음료를 구매할 수 있다. 방콕한국국제학교에도 타오빈 자판기가 설치되어 있어 점심시간마다 많은 학생들이 이용한다. 줄을 서서 이용할 만큼 인기가 많은데, 음료 한 잔이 판매될 때마다 플라스틱 컵도 하나씩 사용되는 셈이다.
플라스틱은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지만 자연에서는 쉽게 분해되지 않는 문제점을 지닌다.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플라스틱은 강과 바다로 흘러 들어가 해양생물에게 심각한 피해를 준다. 바다거북은 비닐봉지를 해파리로 착각해 삼키고, 바닷새는 플라스틱 조각을 먹이로 오인해 죽기도 한다. 잘게 부서진 미세플라스틱은 물고기와 해산물뿐만 아니라 인간의 몸에서도 발견된다는 보고가 있다. 해양 플라스틱 문제는 결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오늘 사용한 일회용 컵 하나에서부터 시작될 수도 있는 문제이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타오빈 컵 자원순환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팀장으로 2년째 친구들과 함께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활동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학생들이 사용한 컵을 하나씩 수거하고, 컵 안에 남은 음료를 깨끗하게 비운 뒤 세척한다. 이후 충분히 건조한 뒤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분류하는 작업까지 진행한다. 얼핏 보면 작은 일처럼 보이지만, 이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플라스틱 컵은 새로운 자원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활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진짜 자원순환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정리된 컵은 직접 방켄 구청에 전달했다. 구청은 전달받은 컵을 재활용 및 업사이클링 업체와 연계하여 새로운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플라스틱 컵 수거ˑ세척ˑ분류 작업

방콕의 방켄 구청 플라스틱 컵 전달
방켄 구청을 찾아 플라스틱 컵을 전달하던 날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평소에는 분리수거함에 넣으면 끝이라고 생각했던 플라스틱 컵이 실제로 재활용 업체로 전달되는 과정을 보며, 자원순환은 단순히 ‘버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완성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쓰레기라고 생각했던 컵이 또 다른 자원이 되는 길 위에 놓이는 순간을 보며, 환경 보호는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현재까지 총 200개의 타오빈 컵을 수거하여 재활용 과정으로 연결했다. 200개라는 숫자는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안에는 학교에서 시작된 200번의 선택이 담겨 있다.
가장 의미 있게 생각하는 변화는 컵의 개수만이 아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왜 컵을 따로 씻어서 모아야 해?”라고 묻던 친구들이 이제는 먼저 수거함에 컵을 넣고, 재활용 방법을 함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작은 행동이 학교 안의 문화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컵을 모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더 많은 학생이 플라스틱 문제를 이해하고 함께 실천할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양동물 보호 캠페인을 진행했다.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해 피해를 입는 바다거북과 바닷새, 돌고래의 사례를 소개하며 우리가 사용하는 플라스틱 컵 하나가 결국 바다와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또한 환경 보호 메시지를 담은 UCC를 제작하여 교내 학생들과 공유했다. 영상에는 타오빈 컵이 버려지는 순간부터 세척과 분류, 그리고 새로운 자원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까지 담았다. 환경 문제를 어렵게 설명하기보다 학교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이야기로 전하고 싶었다.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기 위한 작은 이벤트도 진행했다. 각 학년에서 가장 많은 타오빈 컵을 모은 학급에는 직접 만든 쫀득쿠키를 선물로 전달했다. 작은 이벤트였지만 학생들은 친구들과 함께 컵을 모으며 자연스럽게 환경 보호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를 배웠다. 환경 보호는 의무감만으로 지속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함께 참여하고, 함께 실천하며, 함께 변화를 만들어 갈 때 환경 보호는 일회성 활동이 아니라 학교의 문화가 될 수 있다.

초등학생 대상 해양동물 보호 캠페인 활동
현재도 타오빈 컵 수거 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는 학교 구성원들과 함께 하루 동안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플라스틱 클린데이(Plastic Clean Day)’를 운영할 계획이다. 텀블러를 사용하고, 다회용 가방을 이용하며, 자신이 사용하는 플라스틱의 양을 한 번 더 돌아보는 작은 실천의 날이다. 또한 일회용품 줄이기 챌린지를 이어 가고 있다. 카페에서 음료를 구매할 때는 가능하면 텀블러를 사용하고, 생활 속에서 불필요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완벽한 실천은 아닐지라도, 작은 습관을 바꾸려는 시도가 결국 더 큰 변화를 만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재활용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플라스틱을 다시 활용하는 방법도 더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나 플라스틱을 덜 사용하기로 선택하는 일, 내가 사용한 물건의 마지막을 책임지려는 마음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2년 동안 활동을 이어 오며 한 가지를 분명히 깨달았다. 환경을 지키는 일은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수거함에 컵 하나를 넣는 행동, 텀블러를 사용하는 습관, 플라스틱 사용을 한 번 더 생각하는 마음. 이러한 작은 실천들이 모여 더 큰 변화를 만들어 낸다.
오늘도 학교 자판기에서는 새로운 플라스틱 컵이 사용된다. 어떤 컵은 쓰레기가 되고, 어떤 컵은 새로운 자원이 된다. 그 차이는 아주 작은 선택에서 시작된다. 그 작은 선택은 세척과 분류를 거쳐 구청으로 전달되고, 다시 재활용 업체에서 새로운 자원으로 태어난다. 이제 바다가 멀리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다는 학교와 연결되어 있고, 우리의 일상과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가 손에 쥔 컵 하나와도 연결되어 있다. 버려진 컵의 다음 목적지는 재활용 공장이 아니다. 더 깨끗한 바다를 향한 우리의 작은 실천이다. 컵의 다음 목적지를 찾고 싶었던 나는 2년째 타오빈 플라스틱 컵 수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 시간 동안 내가 찾은 것은 컵의 목적지만이 아니었다. 작은 질문 하나가 행동이 되고, 작은 행동 하나가 학교의 문화를 바꾸며, 그 변화가 언젠가 푸른 바다를 지키는 큰 물결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