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란 주파라과이한국교육원 한국어 강사
여느 국가를 막론하고 색종이 활동은 어린이들이 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파라과이 어린이들 역시 비행기 접기 활동만으로도 무척 즐거워합니다. 저는 한국에 있을 때 초등학교 돌봄 교사로 일했는데, 그때 강사 연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배웠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종이접기였습니다. 주파라과이한국교육원의 강사로 일하면서 이 기술을 활용하게 되었고, 이렇게 유익할 줄은 몰랐습니다. 방석 접기, 문 접기, 쌍배 접기와 같은 비교적 단순한 접기 활동만으로도 아이들의 한글 교육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을 보니 정말 보람을 느낍니다.
주파라과이한국교육원은 학생들의 원활한 교육을 위하여 강사들에게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재료 준비도 늘 물어봐 주시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꼼꼼하게 확인해 주셔서, 교사들이 현장에서 마음껏 활동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십니다. 이에 보답하고자 교실 안팎의 활동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풍족한 재료 중 하나인 색종이와 풀 등을 준비해 가서, 학생들에게 삼각형, 직사각형, 정사각형, 원형의 세 가지 모양으로 색종이를 오리도록 합니다. 벌써 가위만 쥐여줘도 좋아하는 아이들은 교사의 말과 행동을 경청합니다.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삼각형을 만들고 ‘세모!’라고 외친 뒤, 한 손을 바꾸어 뒤집어서 사각형을 만들어 보이자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단순한 손 유희만으로도 아이들은 손가락을 꼬물꼬물 움직이며 뒤집기도 하면서 ‘세모’, ‘네모’를 만들어 내며 즐거워합니다. 그뿐만이겠어요? 양 손가락 끝을 서로 맞대어 둥그스름하게 만들어 ‘동그라미~’라고 외치면, 아이들도 얼른 손 모양을 바꾸어 ‘동그라미’를 외칩니다. 세모, 네모, 동그라미 활동이 끝난 후에는 4절지에 세모, 네모, 동그라미로 자른 색종이를 활용하여 집을 완성하도록 합니다. 하나씩 하나씩 지어져 가는 집을 보며 아이들은 연신 ‘세모, 네모, 동그라미’를 말하며 쓰고 듣고 읽습니다. 그리고 밑에는 ‘집에 가요’라는 동사 활용의 한국어를 쓰게 하고, 이후에는 다음 활동을 예습하는 단계로 이어집니다. ‘~에 가요’라는 문형을 활용하여 ‘집’, ‘병원’, ‘학교’, ‘공원’, ‘체육관’ 등 장소 관련 어휘를 습득하는 데 아주 좋은 색종이 활동을 여러 선생님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두 번째로는 ‘롬페카베사’라는, 우리말로 ‘그림, 글자 맞추기’라고 할까요? 이미 아이들이 배웠던 세종대왕, 훈민정음, 한글날, 1443 등의 단어들과 그림들을 무작위로 배분한 후, 커다란 나뭇가지 그림을 칠판에 붙이거나 그려 둡니다. 배분된 단어들을 친구들과 맞추어 하나의 단어로 완성한 후, 칠판에 붙여진 나뭇가지 끝에 꽃처럼, 때로는 열매처럼 하나씩 붙이도록 합니다. 친구들과 단어를 맞추려고 열심히 찾으며 즐거워하다 보면, 마냥 웃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가지 끝 열매 완성하기’ 활동에서 1등을 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먼저 붙이는 친구에게 점수를 준다는 교사의 말에 학생들은 더욱 일사불란하게,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를 보며 교사의 마음은 매우 흐뭇합니다. 이 ‘롬페카베사’ 활동은 교실 밖 활동에서도 충분히 활용 가능합니다. 바닥에 ‘운동장’이라는 단어를 완성하기 위해 네모를 그린 후, 그 안에 운동장, 학교, 병원, 체육관 등의 글자를 써넣도록 합니다. 저학년에는 한 자나 두 자를 써 놓고 마지막에 부족한 글자를 써넣어 한 단어를 완성하도록 하는 방법도 ‘롬페카베사’의 응용 학습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운동장으로 나가면 더 즐거운 공부를 할 수가 있답니다. 오징어 게임 같은 그림을 그려 놓고 단어를 찾아 한 발짝씩 움직이며 ‘집’, ’에’, ‘가’, ‘요’, ‘체’, ‘육’, ‘관’, ‘에’, ‘가’, ‘요’와 같은 문장을 말하며 목적지에 도달하는 방식도 멋진 응용 및 확장된 ‘롬페카베사’ 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파라과이는 덥고 습한 나라입니다. 이 더운 기후 탓인지 처음 한국어 교육을 시작했을 때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려 하지 않아 많은 낭패를 겪었습니다. 준비한 자료들을 고스란히 다시 집으로 들고 돌아갈 때는 우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이러한 환경이나 기후를 탓하고만 있지 말고 오히려 그것들을 능가할 만큼 창의적인 활동으로 아이들에게 접근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며 다시 힘을 내어 아이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오감을 자극하면서도 어렵지 않아 아이들이 쉽게 접근할 방법이 뭘까? 연구하고 검토하며 실행할 때까지 적잖은 노력이 요구되어도 이것이 한글을 이해하며 나아가 한국에 관한 관심과 사랑의 마음을 품게 하는 데 한 알의 씨앗이 되어준다면 의미깊은 일이 되리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추슬러 다시 도전, 도전, 또 도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이들이 눈망울을 반짝이며 '선생님, 오늘은 무슨 활동을 하나요? 선생님 만나는 날이 기다려져요.' 하고 조잘조잘 이야기할 때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솟구치려 합니다. 하지만 이 눈물은 더이상 우울함이나 슬픔으로 인한 것이 아닌, '오늘 활동이 아주 유익했구나.' 라는 감동에서 솟구치는 눈물이니 전혀 힘들지 않답니다. 내일도 저는 세모, 네모, 동그라미 외의 다른 모양을 표현하는 재미있는 종이 모양을 구상할 것이며, 쉽고 그러면서 더 진화된 ‘롬페카베사’ 활동을 위해 궁리에 궁리를 거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