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정 호치민시한국국제학교 학부모
글로내컬 리포터 3기
갑자기 결정된 파견으로 호치민에 나왔고, 새로운 환경에서 로컬 직원들과 손발 맞춰가며 적응하느라 일은 일대로 바쁜 와중에 아이는 초등 입학을 했다. 그야말로 정신없이 우왕좌왕하며 보낸 첫 해. 아이의 학교생활에 깊게 관여하지 못했지만, 재외한국학교라 아이는 잘 적응했고 1년을 순조롭게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이 호치민 생활에 적응이 되었을 즈음에 예고 없이 찾아온 코로나. 학교는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하였고, 그렇게 수개월이 흘렀다. 이제 좀 나아지려나 싶더니, 더 강도를 높여 아예 외출 자체가 금지되었던 봉쇄 기간을 맞닥뜨렸다.
해외 간 이동도 제한되었고 외출증 없이는 문밖출입도 불가능했다. 해외 생활을 시작한 지 겨우 한두 해가 지난 시점이라 우리 가족에겐 그야말로 대혼란의 시간이었다. 한국인 커뮤니티를 통해서 접하게 되는 살벌한 소식들은 이곳에서 내 미래는 없겠다 단정짓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모든 일의 끝은 있긴 한 건지, 백신 개발 이후로 세상은 조금 안정되어 가는 모습이었다. 아이는 어느새 4학년이 되어 정상 등교를 하게 되었고, 점차 학부모 참관수업, 각종 교내 행사도 재개되어 이전과 같은 평범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 6학년이 된 첫째는 졸업여행도 무사히 다녀왔고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다.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 덕분이었을까? 아이는 고학년이 되면서 학교생활을 한층 더 즐기는 모습이고, 다양한 교내 활동에 적극 참여 중이다. 제한되었던 등교, 온라인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친구들. 일상의 소중함을 절로 느낀 시간을 보냈던 건지 등교를 시작하면서 더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아이의 학교생활을 보면서 꼭 잃은 것만 있었던 건 아니었구나, 일실일득이라는 인생의 진리를 깨닫는다.
절망의 순간에 했던 봉쇄가 해제되기만 하면 이곳을 당장 떠나리라 했던 결심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각자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위기의 순간에서도 아이의 학교를 통해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소속감이 첫 해외 생활의 위기 속에서 큰 위안이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호치민시한국국제학교는 해외살이 중 만난 오아시스라 말하곤 한다.
호치민시한국국제학교의 경우 유치원부터 초, 중, 고등 과정까지 이음 교육을 통해 연계 교육을 하고 있다. 교육적인 부분뿐 아니라 다년간 같은 친구들과 학교생활을 함께하다 보니, 초등 6학년 큰 아이의 경우는 친구들과의 갈등도 슬기롭게 마무리하고 좋은 관계 유지에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1학년 때 잘 모르던 친구와 지금은 더없이 가깝게 지내기도 하고, 프로젝트 수업을 하면서 협력 관계가 되는 경험도 한다.
그래서인지 학교 졸업 후에, 사회에 나가서도 그 관계가 돈독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학교에 대한 애정 또한 깊다고들 한다.
둘째는 초1 남자아이다. 두 돌이 되기 전에 왔고 기저귀를 찰 때부터 호치민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한국의 사계절을, 아름다운 산과 자연을 기억할 리 만무하다. 베트남 큰 명절인 설 연휴에만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보니 한국의 겨울눈을 보고 싶어서 설렌다는 큰아이와는 달리, 한국은 추운 곳이라고 몸을 움츠리며 말하는 둘째. 어려서부터 한국 밖에서 자란 어린아이에게는 나중에 한국이 어떤 나라일지 둘째를 보며 가끔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더욱이 둘째처럼 한국에서의 경험이 별로 없이 해외 생활을 하는 어린아이들에게 재외한국학교는 필요한 곳이다. 한국 교과서와 선생님 그리고 한국 친구들과의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고, 한국 교과서를 통해서 접하는 한국의 역사, 문화 그리고 사계절에 대한 간접 경험을 통해 아이는 한국을 알아가고 있다.
어느 날 안중근 의사에 푹 빠졌던 7살의 둘째는 해외에 나가면 다 애국자라는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뮤지컬 “영웅”에 심취해서 들리는 대로 노래 가사를 쓰고 외워 부르더니 어느 날부터는 태극기 그리기에 빠져있다. 한국을 더 가슴 깊이 사랑하고 소중히 느끼는 듯한 어린아이의 모습이 너무 기특하여 한국 방문 때 우선순위 일정으로 안중근의사기념관에 함께 방문하였다.
정체성 교육과 더불어 중요한 것이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인식 문제다. 한국 역시 급격한 다문화 사회로 이행 중이고, 해외에서 재외한국학교에 다니고 있는 우리 아이들 역시 상당수의 다문화 가정 아이들과 함께 한국 교육을 받고 있다. 다문화 가정의 친구들은 언어의 문제에서 오는 학습의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에 대해 아이들이 편견을 가질 수 있다.
또한 한국 생활을 하다가 동남아 국가에 살다 보면 불편하고 답답한 일들이 종종 생기기도 한다. 한국에 비해 느리거나 정확하지 않은 일 처리를 맞닥뜨릴 때 문화 수준을 비하하는 말을 아이 앞에서도 무심코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으므로 맹목적 신뢰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가정에서 무심코 던지는 일상 대화를 통해 아이들에게 본인이 지금 속해있는 이 지역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들어 움츠러들게 할 수 있고, 아이들의 올바른 자아정체성 확립에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아이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접하게 될 새로운 환경, 그곳에서 이질적인 구성원이 되지 않고 오히려 다원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나라별 문화의 격차를 줄이고, 조직을 이끌어갈 수 있는 글로벌 인재가 되려면 어려서부터 상대를 이해하고 나를 바로 알아갈 수 있도록 가정에서도 함께 책임감을 가지고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해외 생활 중에 재외한국학교를 통해서 하고 있는 다양한 경험들, 학교와 친구들과 더불어 성장해 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 늘 고민하게 된다. 올바른 자아정체성을 바탕으로 다른 문화로 받아들일 줄 아는 다문화적 태도를 겸비한 진정한 미래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부모인 나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흔들림 없이 함께 전진하려 한다.
이번 글로내컬 리포트 3기 활동을 통해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다른 국가에서 비슷한 듯 다른 일상을 보내고 계신 여러 학생, 교사, 학부모님들의 글을 통해 배움도 얻을 수 있는 값진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