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교육기관포털 온라인소식지 Vo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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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교 학부모 이야기

입시를 준비하며 느낀 소소한 생각과 얻음에 관하여

조영미 광저우한국학교 학부모
글로내컬 리포터 3기

중국 생활 11년 차… 돌아갈 날을 기약하고 온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루를 한 달을 그리고 일 년을 시시각각 생기는 변수들을 맞서 해결하고, 주어진 시간을 버텨내다 보니 이제는 내 살림이 있고 아이들과의 추억이 더 많은 중국이 내 집 같아져 버렸다. 또한 40대에서 50대가 된 엄마의 변화도 크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10년이 넘는 세월은 외모도 생각도 환경도 나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변화이고 성장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학교로는 고등학교 3학년, 이곳에서는 12학년인 2024년은, 아이에게도 엄마가 처음인 나에게도 잊히지 않을 한 해가 될 것이다. 하루하루는 길었으나, 지나고 보니 벌써 아득한 옛일처럼 느껴지는 뜨거운 입시 준비 과정을 소소하게 기록해 보고자 한다.

수능도 아닌 학력고사 세대인 엄마에게 수시 전형은 낯설다. 같은 날 같은 시각 같은 시험으로 대학의 입학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니… 사실 지금도 내 아이의 전형 외에 다른 전형에 관해서는 무지하다. 내 아이의 그것을 좇아가기에도 숨이 가쁘다. 흔히 3년 특례라 불리는 수시 전형의 하나인 “재외국민 특별 전형 중고교 과정 해외 이수자 전형”은 한국에 있는 학부모들은 낯설 수 있을 것이다. 해외에 살고 있는 우리조차도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구체적인 개요를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중고교 과정 해외 이수자 전형’은 또다시 세 가지로 구분되는데 서류전형, 지필 전형, 면접전형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 세 가지 세부 전형 중 서류전형과 지필 전형을 준비하기로 하고 12학년을 시작했다. 하지만, 부모의 강요가 아닌 아이도 동의하고 결정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버거운 것이 현실이었다. 서류전형을 위해서는 내신 대비를 등한시할 수 없었고, 대학별로 다른 지필 전형의 준비를 위해 하교하자마자 한국의 온라인 수업에 연이어 참여해야 했다. 그리고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학교와 학원의 과제물 그리고 테스트 준비 과정을 보고 있는 나에게도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당시의 아이는 웃는 날이 많지 않았고, 지쳐있었던 것 같다. 엄마인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하루 세 끼 그저 먹고 싶다는 것을 해주고, 귀찮은 심부름을 대신해주고 간식을 사다 나르는 일, 카페인을 한 번에 충전할 수 있는 차가운 커피를 준비해 주는 것이 다였다.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아 조바심이 나 입을 떼고 싶은 마음을 혀를 깨물며 참아야 했고, 마음은 여유롭지 않지만, 다음 시험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격려의 말도 잊으면 안 됐었다. 1학기 중반부터 원서 제출을 위한 다량의 서류 준비마저도 쉽게 한 번에 되지 않았다. 영사관과 공증처를 몇 차례 드나들었고, 원하는 의사 전달이 되지 않을 때는 중국어 실력에 자괴감이 들어 말문이 막히곤 했다. 하지만 이것은 성공한 후의 여러 가지 에피소드 중 하나의 히스토리가 될 것이라는 어느 유명 강사의 짧은 영상으로 위로를 받으며 뜨거운 햇살 아래 반복되는 일들을 참아냈던 것 같다. 그렇게 1학기를 마치고 지필 전형 준비를 위해 조금 일찍 입국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곧장 아이는 아침 일찍 나가 밤 늦게 들어오는 반복되는 학원 생활을 이어 나가기 시작한다. 그 사이 시험을 준비하는 아이를 대신해 이어진, 그야말로 ‘우여곡절’의 원서 접수는 대입이라는 높은 산의 중턱에는 오른 것 같았고, 조금 가쁜 숨을 한 번 내쉬어 볼 때도 있었다. 그리고 아득해 보이는 정상을 향한 산등성이를 따라 마지막으로 힘을 내었고 마침내 마지막 학교의 시험을 끝내고 나오는 딸아이를 뜨겁게 안아줄 수 있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모든 일정이 끝나면 후련할 것 같은 마음이 그렇지 않다. 결과에 대한 걱정이 기다렸다는 듯이 밀려오고 아쉬움이 뒤이어 함께 한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스멀스멀 올라오는 그런 불안한 마음들을 눌러본다. 몇 개월 동안 짓눌렀던 긴장의 무게를 내려놓고 아이를 향해 걱정이나 조바심이 아닌 여유 있는 미소를 지어본다.

‘내 인생을 책으로 쓰면 몇 권은 될 것이다.’ 라고 어르신들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나는 정말 감히 첫 아이의 첫 번째 입시를 어르신들의 그것에 비유하고 싶다. 나의 입시였다면 그렇게 불안하지 않았을 것이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까지 눈이 빠지도록 서류를 확인하지 않았을 것이고, 시험이 끝나고 난 뒤에는 후련함을 막는 걱정 따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일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인생의 중반을 넘은 시점 다시 한번 몸소 느꼈다. 분명 주위의 먼저 경험한 누군가가 이야기해 주었을 것이다. 입시의 어려움과 고민과 복잡함을. 자신의 길고 쉽지 않았던 여정을. 하지만 스스로 그것에 부딪혀 보기 전에는 그것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 혹은 얼마나 깊은 깨달음을 주는지 알지 못한다. 한국의 수험생에 비하여 수월하다고 말하는 혹자의 말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저 쉽고 편하게 얻는 이득이 과연 있을까?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노력은 당연히 필요하고, 우리 아이들의 노력은 외국에 살기 때문에 벌어지는 어려움을 겪어낸 것이며, 이것이 그 대가로 얻은 혜택이라 말한다면 혹자는 이곳의 아이들을 너그럽게 이해해줄 수 있을까?

시험이 끝나고 교재들을 정리하며 딸아이가 이런 말을 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고 말이다. 하기 싫고 반복되는 같은 내용을 끊임없이 읽어내고 학습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한다. 아뿔싸… 그걸 지금 깨달았다는 거니? 하지만 어른인 척,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커다란 얻음이라 말한다. 적은 나이가 아닌 엄마도 알게 된 지 오래지 않았는데 이렇게 어린 나이에 깨닫다니 기특하다라고.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너의 이번 노력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였다고 앞날이 모두 보장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12년 동안 열심히 공부한 아이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결과를 감히 기대해 본다. 그리고 무언가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하기 싫은 일을 해냈을 때 얻는 달콤한 결과를 맛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몇 달 사이 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 성장했고, 이 경험이 아이가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되어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 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결과를 떠나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이 잊히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최종 결과를 기다리는 요즘의 작은 여유로움은 그것을 얻기 위해 애쓰고 참아낸 것에 대한 작은 보상일 것이다. 그렇다. 참아내었다. 아이는 하기 싫은 것을 참고 해냈으며, 엄마는 섣부른 조언이나 잔소리하는 것을 참아내었다. 머지않아 조금 더 큰 사회로 아이는 나갈 것이다. 그녀의 앞날에 얼마나 새롭고 다양한 세상이 펼쳐질까? 물론 새로운 어려움과 고민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믿는다. 힘든 만큼 아픈 만큼 조금씩 성장할 것이고, 자신을 믿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 믿음이야말로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이자 최선의 응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