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교육기관포털 온라인소식지 Vo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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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교 교원 이야기

한마음으로 우리말 우리글을 가꾸어 나가는 KIST - 독서토론대회까지의 여정

배희진 천진한국국제학교 교사
글로내컬 리포터 3기

중국인이 천만 넘게 거주하는 대도시에서 3년째 우리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며, 한국에서의 내가 얼마나 좁은 식견으로 아이들의 ‘언어 역량’을 재단해오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학생의 언어 역량 안에는 각자의 개성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녹아 있는 것인데, 그것을 국어 시험 점수라는 일률적인 기준으로 재단할 수 있다고 믿어 왔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국어’에 적성과 흥미를 갖춘 학생일수록 문학적 지식을 선행하여 학습하고, 또 시험에 빈출하는 요소들을 암기하도록 사실상 강제당하는 환경에서, 국어 교과가 지향하는 ‘개별 학습자의 문학적 역량 계발’이 실현됨은 언제까지고 요원한 일일 것이다. 한국 아이들이 갈래부터 특징까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동일하게 출력해내는 유명 문학 작품들을, 처음 봐서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듯 탐독해 나가는 우리 학생들을 처음 본 그 순간 깜짝 놀랐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그 이후로 나는 늘 내가 담당하는 ‘국어’ 교과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기대감에 부푼 채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러한 감상과 변화가 비단 나에게만 찾아왔던 것은 아니었는지, 감사히도 KIST의 다른 국어 교과 선생님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국어과에 교육적 열의를 보태어 주셨고, 덕분에 올해 국어과 행사는 이전까지 실시한 적 없던 새로운 방식으로 완전히 탈바꿈할 수 있었다.

독서토론대회는 한국에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행사지만, 재외한국학교에서 실시할 경우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국어로 ‘토론’을 아예 접해본 적 없는 학생이 있음은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천차만별인 250명 분량의 개별 독서 경험과 양질의 도서를 자유롭게 구할 수 없는 환경이 맞물려 준비 단계부터 난항이 된다. (유일하게 접근성이 좋은 학교 도서관은 당연히 같은 도서를 많아야 2~3권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독서토론’ 이전에, ‘독서’를 먼저 체득하게끔 해야 했다. 전자책이 제공되는 도서 중 토론 활용에 적합한 것을 선별하여 매월 권장 도서로 공지하고, 전자책 구매를 지원해 주었다. 독서 동기 부여에 있어서는 선발된 ‘독서이끎이’들이 부단히 애썼다. 반별로 한둘은 꼭 있는 독서애호가들을 위주로 기획단을 꾸려 독서토론까지의 여정을 함께 했다.

독서에 대한 환경을 갖추고 나자, 비로소 학생들에게 ‘토론’을 준비시킬 수 있게 되었다. 자율 시간을 활용하여 학기당 2회씩, 각 학급을 모둠 단위로 나누어 독서토론을 실시했다. 학생들 간 배경지식 격차를 줄이기 위해 이끎이들이 책에 대해 생각을 일깨워주는 도움 영상들을 찾아, 미리 학급에 공유해 주었다. Youtube에 책을 요약해주는 것은 물론, 적절한 화두까지 던져주는 유용한 영상들이 많아 설령 책을 읽지 않은 학생이라도 몇 개의 영상을 시청하고 나자, 논제에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었다.

토론 방식으로는 ‘월드 카페’를 활용했는데, 참여자 중 한 명이 호스트를 맡아 토론 진행을 보조하는 방식이다. 다른 참여자들은 정해진 시간마다 모둠을 바꾸고, 호스트는 남아서 이전 구성원의 토론 내용을 요약해 준다. 참여자들이 실제 토론처럼 신속하게 논증을 강화해야 할 부담 없이, 호스트의 설명을 바탕으로 기존 사고를 자연스럽게 확장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총 4회 실시된 학급별 모둠 독서토론>

근 6개월 정도 국어과 교사, 독서 이끎이들, 그리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독서’와 ‘토론’을 아울러 준 학생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여 11/1(금) 실시된 독서토론대회는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첫 대회임에도 참가자들은 그간 쌓아 온 경험을 바탕으로 각자의 개성과 실력을 마음껏 뽐냈다. 하나의 행사에 대해 왜, 무엇을, 어떻게까지 총체적으로 고민하는 경험, 학생과 교사가 서로에게 배우고 감사하는 행사가 될 수 있었음에 지금까지도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