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교육기관포털 온라인소식지 Vo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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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교 학부모 이야기

K-맏며느리, 중국에서 시댁 식구와 추석 보내기

이윤주 대련한국국제학교 학부모
글로내컬 리포터 3기

“어머니, 그러면 저희 집에 오실래요?”

내 귀에 들린 내 말에 나도 놀랐다. 올 초 설 차례를 지내고 난 후 설거지하고 있을 때 어머님의 올 추석부터는 차례를 안 지내겠다는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남편과 미리 상의한 바 없는 즉석에서 나온 말이었다. 더욱 놀라운 건 내 반응만큼이나 빠르고 긍정적이었던 어머님 반응. “그럴까?” 10여 년 동안 큰아들 내외가 중국에 사는 동안 한 번도 오겠다고 하신 적 없으셨던 어머님이셨다. 내친김에 함께 달력을 넘기며 추석 연휴를 헤아렸다. 마침, 중국도 9월 14일 토요일부터 17일 화요일 추석 당일까지 4일, 한국은 토요일부터 18일 수요일까지 5일이 연휴였다.

습하고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9월 추석이 다가오자, 남편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부모님 모시고 어디를 가야 할까, 단둥, 여순, 대련 시내 관광 등 여행 일정에 대한 고민이었다. 남편에게 부모님 대련 여행 오시는 거 아니라고, 아들 집에 오시는 거라고. 며느리 김치 담아 먹는 거 아시면서도 ‘거기 양파는 나나? 마늘은 있나?’를 몇 년째 물어보시는 어머님께 동네 아침 시장, 큰 시장, 마트 보여드리고 같이 장 볼 거라고 말했다. 압록강 철교보다, 멋들어진 대련 시내 관광 명소보다 시부모님이 궁금하고 보고 싶으신 건 우리 사는 거, 우리 사는 동네, 아이들 학교라고 이야기했다.

부모님을 아파트 옆 호텔에 모시겠다는 남편 말에 손사래를 쳤다. 작은 아이 방에 계시면 된다고, 큰 아이 방에 간이침대로 사용할 수 있는 붙박이 데이베드가 있으니 아이 둘, 며칠 한 방에서 자면 된다고 말렸다. 타국에 아이들 데리고 살고 있는 큰아들네를 볼 때마다 항상 ‘너희가 걱정이다.’ 라시며, “저희 집 오실래요?” 라는 내 말에 단박에 “그럴까, 한 번 가 봐야 걱정을 안 하겠다.” 라고 하신 시부모님을 호텔에 모시는 건 말이 안 됐다.

여름보다 훨씬 더 파란색이 청명하게 빛나는 9월 중순의 대련. 시부모님 두 분과 시동생과 동서, 모두 4명의 시댁 식구가 3박 4일 일정으로 대련 공항에 내렸다. 집에 남아 한창 나물을 하던 중에 공항으로 마중 나갔던 아이들과 남편이 시부모님과 시동생과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그 왁자지껄함이라니. 결혼 후 항상 시댁으로 가서 보낸 명절이었는데 처음으로 안주인이 되어 대가족을 맞는 기분이 묘했다. 서서히 세대가 바뀌어 가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고나 할까. 반가운 포옹과 따뜻한 말들이 오간 후, 어머님과 아버님은 사랑해 마지않는 손자 방에 짐을 푸셨다. “할아버지가 우리 강아지 방에서 자네~ 우리 강아지 며칠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고 고맙다~ 할아버지 할머니 온다고 청소하고 정리하느라 고생했제~ 우리 강아지 방 참 좋네~~~” 호텔에 모셨으면 어쩔 뻔했나.

안중근 의사의 자취가 깃든 여순 감옥 방문, 매끈하게 잘 꾸며진 관광지, 중국에서 반드시 누려야 할 안마보다 3박 4일 동안 계시면서 시부모님이 가장 좋아하신 일은 단연코 시장 구경이었다. 마트, 동네 아침 시장, 상설 시장, 동네 야채가게 등 여러 군데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셨던 곳은 아침 시장이었다. 중국에서는 중추절(中秋节)이라고 부르는 추석을 맞아 동네의 아침 시장도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 활기 속에 아는 채소, 모르는 채소, 온갖 향신료, 매대에 덩어리 덩어리 놓여있는 생고기들, 갖가지 과일들과 팔딱팔딱 뛰는 새우를 비롯한 신선한 각종 해산물까지. 두 분께서는 이런 건 어떻다, 저런 건 어떻다고 이야기하며 아이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구경하셨다. 시장 한 바퀴를 돌아본 후 들어간 곳은 역시나 시장통의 즉석 아침 식당. 바로바로 튀겨내는 요우티아오와 달콤한 베지밀 같은 또우쟝, 연두부 같은 또우푸나, 커다란 찜통에서 막 꺼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빠오즈, 조죽까지 현지인들 바로 옆에서 현지인들과 똑같은 음식으로 아침을 먹었다. 우려와 달리 조죽이 숭늉처럼 구수하고 맛있다 하시며, 요우티아오와 또우쟝의 궁합이 좋다며, 또우푸나와 빠오즈까지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니 이것 또한 일반 여행에서는 알 수 없는 진짜 로컬 경험을 하게 해 드린 것 같아 좋았다.

한국에서는 보지 못한 생경한 채소들과 많아도 너무 많은 종류의 과일들보다 시부모님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큐알코드였다. 번듯한 상가는 말할 것도 없고, 널찍한 매대를 차려 놓은 가게뿐만 아니라, 심지어 한눈에 봐도 텃밭에서 뜯어온 푸성귀 몇 묶음 파는 돗자리의 시골 할머니까지 모두가 현금 거래가 아닌 큐알코드를 스캔해서 핸드폰으로 결제하는 모습에 자꾸만 물으셨다. 진짜 현금 쓰는 사람 없냐고. 마트를 가도, 관광지 입장권을 살 때도 현금은커녕, 카드도 쓰지 않고 무조건 핸드폰부터 들이미는 아들 내외에게 보고도 믿을 수 없다며 묻고 또 물으셨다.

시부모님만 시장을 좋아하신 게 아니었다. 동서는 자루 자루 담겨 있는 온갖 견과류들 앞에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내가 자주 가는 단골 견과류 가게에서 이것저것 맛보라며 쥐여 주는 족족 동서는 왜 이렇게 맛있는 거냐며 먹어 보는 족족 “이것도, 이것도, 이것도요~” 라며 주문을 했다. 사고 또 사다 결국 차마 사겠다는 말을 못 하고 민망한 웃음과 눈빛만으로 구매 의사를 전하는 동서에게 지금 사고 싶은 것 실컷 사가라고, 지금은 많아 보여도 막상 한국 가서 보면 더 사 오지 못한 걸 후회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동서에게 원하는 만큼 실컷 사주고 담아갈 곳이 없는 동서에게 수하물 캐리어까지 하나 꺼내주었다.

한국에서 온 가족들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에게 너무도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 그걸 느끼고 깨닫는 게 여행의 참맛이 아닐까.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곳을 방문하는 것도 물론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결국 우리의 시야를 넓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주 사소하지만, 일상의 다름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라는 걸. 또한 가족이라는 것, 그리고 이제는 단순히 한 가족의 구성원이 아니라 기둥이 되어가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내년 2025년 추석 연휴는 최소 7일이라고 한다. 내년엔 양가 모두에 부모님 칠순이 있다. 시댁 식구들을 공항에 배웅하고 돌아서며 내년 추석 연휴 계획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