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불고기 주세요.
교생: 네, 여기 있어요.
이제 막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중등학교 1학년(Form 1) 학생들이 교실 밖을 나가면서 교생실습 선생님에게 오늘 배운 표현 ‘- 주세요’를 활용하여 문장 하나를 말하고 나간다. 이 모습을 보고 있으니 수업이 잘 마무리된 것 같아 흐뭇하다.
처음 말레이시아 이곳의 학생들을 만났을 때가 3월. 아직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쓰고 수업해야 하는 시기였다. 우리 학교는 여자중등학교로 학생들은 대부분 무슬림 스카프를 쓰고 있고,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있으니 내 눈에는 키만 다르고 생김새는 다 비슷해 보였다. 중등학교 1학년부터 5학년까지 다섯 개 학년의 130명이 넘는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얼굴과 이름을 익히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아, 덥다, 진짜 덥다!’ 라는 말은 하지 않고 지나는 날이 없을 만큼 날씨는 정말 더웠다. 교실에서 에어컨 한 대로 견디려면 등 뒤로 흐르는 땀 줄기와 친해져야 했다. 학생들도 나만큼 더울 것 같다. 이 더운 날씨에 에어컨 없는 교실에서 하루종일 지내노라면 그 얼굴과 등으로 땀 줄기가 수도 없이 만들어질 것 같다.
그래서인가?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의욕이 없고, 많이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특히 오후 시간에 한국어를 듣고 따라 읽기에는 배도 고프고, 덥고 힘들다. 입을 열고 말하는 것도 힘든 것 같다. 오늘 배운 문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 대화를 익힌 것인지 한 명씩 확인하기가 어려웠고, 마스크를 쓰고 다 같이 말하면 누가 말했는지, 말 안 했는지도 구분이 안 됐다. 이런 상황이 너무 답답했다. 또, 한국에서 온 피부색이 다른 외국 사람과의 암묵적인 거리감도 느껴졌다. 2주쯤 지나기 시작하니 슬슬 고민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학생들의 목소리를 한 번 이상 들을 수 있는지, 수업 내용을 이해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지 해결 방법을 찾아보고 싶었다. 학생들과 한 걸음 정도만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며칠 고민하다 퍼뜩 생각난 것이 ‘Today’s Password’였다. 한국에서도 수업시간에 종종 활용하던 방법으로 이것을 활용하면 학생들의 굳게 닫힌 입을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업 마무리 즈음 칠판에 ‘Today’s Password’를 쓰고 나에게 들릴 만큼 크게 말해야 교실을 나갈 수 있도록 했다. 학생들이 처음에는 당황하고 목소리가 작았다. 심지어는 그날의 문법을 이해하지 못해 설명하느라 쉬는 시간을 10분 이상 지체해서 학생들의 표정에서 ‘짜증났음’을 읽을 수 있었다. 발음과 문법을 확인하면서 교실 문밖으로 내보내려고 하니 시간이 많이 걸렸고 작은 목소리를 크게 만드느라 내 목이 아플 지경이었다. ‘이걸 왜 한다고 했나’ 하는 후회감도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늘의 패스워드 확인
그러나 몇 주 지나자 이 활동을 통해서, 자주 틀리는, 문법과 발음의 문제가 개개인별로 확인되었다. 게다가 횟수를 거듭할수록 학생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졌고 발음이 정확해 졌다. 더불어 학생들의 얼굴을 더 빨리 익힐 수 있게 되었다. 1석 2조가 아니라 1석 4조쯤 되는 효과적인 활동이었다.
학생들과 4개월쯤 호흡을 맞췄을 때 말레이시아 교생실습생 2명이 학교에 배치를 받아 오게 되었는데 이 ‘패스워드’ 활동을 신기해하며 이 활동을 하는 방법을 궁금해했다. 그 뒤에는 교생실습생들도 수업을 마치면서 이 활동을 똑같이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온 교사가 말레이시아에 이 교육방법을 퍼트리는 씨앗을 뿌린 것이다! 가슴 벅찬 이 느낌!
수업의 마무리 시간을 활용해서 학생들의 눈을 한 명씩 깊게 바라볼 수 있고, 목소리를 귀에 익힐 수 있다. 수업의 마무리 활동으로 제일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수업의 이해도를 확인하는 ‘오늘의 패스워드’ 활동은 학생들과 심리적 거리감을 줄이는 데도 효과적이다. 많은 선생님께 함께 해 보자고 추천하고 싶다.
이것에 익숙해지면 선생님은 잊어버려도 학생들은 교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줄 서서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물을 것이다.
오늘의 패스워드는 뭐예요?
오늘의 패스워드를 확인하는 교생실습생과 패스워드를 말하는 학생들
김경민 말레이시아 한국교육원 파견한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