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오던 첫해 5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달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내렸다. 당시의 기억이 8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한 것은, 태어나 40년 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날씨였기 때문이고, 더불어 낯선, 새로운 중국 생활이 맞물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 달의 날씨는 마치 누군가가 계속 따라다니며 분무기로 미지근한 온수를 뿌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먼저 중국에 들어온 남편의 조언으로 장만해 왔던 제습기가 24시간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가동되고 있었고, 끝날 것 같지 않은 날씨와 함께 답답한 적응기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하며 익숙해져 가던 날씨는 올해, 그해만큼이나 축축하고 지루한 습기를 뿜어냈다. 엄청난 습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길었던 시간을 보내고, 타들어 갈 것 같은 태양의 계절을 예고도 없이 마주하는 중이다.
이 시기의 날씨를 回南天(회남천; 훼이난티엔)이라 부른다. [回南天(회남천)은 중국 남방의 날씨 현상으로 통상 매년 봄이 되어 기온이 따뜻해지고 습도가 급격히 상승하는 현상을 말한다. 광저우를 포함한 중국 남부는 전형적인 아열대 계절풍 기후에 속하여, 매년 3월에서 4월 남쪽 바다에서 불어오는 따뜻하고 습한 기류와 시베리아 남쪽 지역의 차가운 공기가 만나 움직임이 느리고 준정지상태의 전선이 형성되는데, 이 기간 동안 잦은 비와 짙은 안개로 매우 습하고 불안정한 날씨가 이어진다.]
회남천 기간 동안의 습기는 이미 언급한 것에 조금 더 과장하여 표현하자면 미지근한 한증막 속에서 생활하는 느낌이다. 일상생활은 모두 습기와 연관되어 있고, 무엇으로 그것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아침에 끓여 놓은 국이 가스레인지 위에서 상하는 경우가 생기고, 습한 기운에 몸이 붓는 날이 잦아진다. 이 시기 내내 기상상태에 더욱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생활 전반을 이것이 지배한다.
해외 생활에 적응한다는 것은 어디까지일까? 언어를 습득하는 것도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도 짧은 시간 내에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날씨도 마찬가지로, 예보는 예보일 뿐 사계절 365일을 겪어도 다음 해가 되면 전년과 같지 않은 날씨에 적잖이 당황한다. 개인마다 적응의 정도와 기준은 물론 다르지만, 중국에 오기 전 두 번의 다른 해외 지역 생활을 겪었고 중국 생활 9년차가 된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날씨였다. 광저우 생활을 준비하며 단순한 검색으로 알게 된 이곳의 날씨는 강수량이 많고 고온다습하다는 것 정도였다. 얼마나 자주 많이 비가 오는지, 습기가 생활에 어느 정도까지 영향을 주는지는 경험만이 답을 주었다. 그 나이가 되어야 알 수 있는 인생의 경험이 있듯이 해외에서 생활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행과 생활은 확연하게 다르고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한다 하더라도 생각하지 못한 변수는 곳곳에 숨어 우리를 기다린다. 하지만 시간과 경험이라는 보약 앞에서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일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감기에 걸리거나 몸이 편안하지 않을 때, 중국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라는 것이다. 약을 먹고 쉬라는 말보다, 물을 많이 마시라는 말을 더 많이 듣는다. 어느새 무더운 여름 운동 후에도 따뜻한 차나 물을 마시는 이곳 사람들이 이해되는 것을 넘어, 나도 그들처럼 온수를 찾게 된다. 물론 적잖게 차가운 커피도 마시고 냉수를 들이킬 때도 있다. 하지만 평생 이곳에서 살아온 현지인들의 경험을 받아들이려 눈과 귀를 열어놓는다. 습관을 바꿀 수 없다며 일부러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과, 해외 생활을 통해 느낀 많은 것 중 하나는 그곳 사람들의 먹는 것과 생활하는 것을 존중하는 것이다. 이해되지 않던 많은 부분을 현지에서 살면서 깨닫고, 받아들이면서 해외 생활이 훨씬 편안해지고 점점 이곳이 원래 나의 일상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나는 해외 생활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에게 거창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은 없을지도 모른다. 어느 학교가 좋은 대학을 많이 보내는지, 어떤 사업을 해야 이곳을 기회의 땅으로 만들 수 있는지는 내가 알려줄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 하지만 가죽 자켓은 관리하기 어려우며, 겨울에 기온이 높다 하여 집안도 따뜻한 것은 절대 아니고, 나 같은 환절기 알러지성 비염환자는 더이상 재채기와 콧물로 괴롭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정도는 조언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어느새 9년차에 이른 중국 생활,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이 살던 동네처럼 느껴지고, ‘니하오’ 인사만 하는 옆집의 아이가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보며 이방인의 삶을 조금씩 현지인의 그것으로 바꾸어 가고 있는 중이다. 삶을 논하기에는 아직 많지 않은 나이지만, 어디서 사는 것보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매일매일 깨닫는다. 덜 마른 옷에서 나는 이상한 냄새를 품은 채 다니는 이곳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차가운 커피 대신 차를 선택한다.
회남천의 습한 우기를 지나 태양이 작렬하는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참으로 간사하다. 타죽어도 좋으니 햇볕이 쨍쨍했으면 좋겠다고 노래 부르던 시기가 있었는데, 막상 그런 계절을 맞이하니 차라리 비가 오는 게 나았던가라는 마음이 드는 것을 보면 말이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햇볕이 내리쬐면 내리쬐는 대로, 이곳 광저우가 좋다. 지낼수록 매력이 넘치는 나의 제2의 고향이다.
사족으로 날씨에 대하여 한 가지 더 알려줄 수 있는 팁이 있다. 스콜처럼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만나면 이곳 사람들처럼 건물 입구, 버스정류장 등에서 잠깐 비를 피하자.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면, 정말 순식간에 비가 내렸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날씨가 펼쳐질 것이다. 시원하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바쁘게 가던 일상을 잠깐만 멈추면, 생각보다 빨리 하나둘씩 우산을 펴고 다시 길을 나서는 그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 문단 [ ] 부분은 중국의 검색사이트 百度(바이두)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조영미 광저우한국학교 22년 글로내컬 학부모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