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학년이든 국어 교과서에는 소설 단원이 실려 있습니다. 소설이 교과서에 실리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소설을 통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타인과 소통하거나 공감하는 삶을 살기 위함일 것입니다. 10학년 ○○ 국어 교과서에는 성석제 작가가 쓴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교과서에는 지면상 소설 전문이 실리는 경우가 드뭅니다. 김영하 작가가 말했듯 교과서에 작품을 온전히 싣지 못한 상황에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문제를 객관식 문항에서 찾게 하는 소설 교육은 우리로 하여금 소설을 재미도 없고 유익하지도 않은 시험용 텍스트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렇다면 소설을 어떻게 지도하면 좋을까요? 제가 10학년 학생들과 함께했던 소설 수업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1차시는 학생들에게 소설 전문을 읽도록 하는 단계입니다. 교사용 지도서에는 중략된 부분의 지문이 게재되어 있으니 이것을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학생들에게 중략된 부분 복사본을 포함하여 교과서에 실린 소설 본문을 묵독할 때, 연필로 표시하거나 메모를 하며 읽은 흔적을 남기도록 지도합니다. (학생들은 저마다 읽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1차시 안에 소설 읽기를 끝내지 못할 경우는 2차시까지 소설 읽기로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 다 읽은 학생들에게는 2차시는 재독의 시간으로 활용하면서, 밑줄이나 메모 부분을 다시 한번 살피도록 합니다.)
2차시부터는 4명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모둠별 수업으로 진행합니다. 1단계는 내용 확인 질문 만들기를 바탕으로, 서로 협력하여 소설 내용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우선 개인별로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 또 놓칠 수 있는 내용을 확인하는 질문 두 개를 만들어보도록 합니다. 이때 질문에 대한 답은 쓰지 않고 질문 끝에 해당 페이지, 몇 번째 줄에 있는 내용인지만 적도록 합니다. 예를 들어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에서“마을 이장이 마을 사람들과 황만근에게 꼭 참여하라고 한 궐기대회의 이름은 무엇인가?(p.408:17), "황영석은 언제 황만근의 부재를 느꼈나?(p.411:12~13)”와 같은 질문을 만들어 공책에 적도록 합니다. 모둠원이 4명이니 내용 확인 질문으로 서로 묻고 답하는 문제는 모두 8문제가 됩니다. 질문을 만들되, 답을 적지 않는 이유는 함께 해당 본문을 찾아보기 위함입니다. 그래야 질문에 답하는 학생들도 내용을 다시 꼼꼼하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각 모둠에서는 여덟 개의 질문 중 중요도에 따라 네 개의 질문을 뽑은 후 그 질문을 가지고 1모둠 사회자는 2모둠으로, 2모둠 사회자는 3모둠으로 각 모둠의 사회자만 다른 모둠으로 이동하도록 합니다. 새로운 모둠으로 이동해 간 사회자는 이전 모둠의 질문으로, 새롭게 만난 모둠원들에게 내용 확인 질문을 하고 그곳 모둠원들에게 답을 맞히도록 합니다. 사회자가 원래 모둠으로 돌아간 후 전체적으로 모둠별 대표 질문을 한 개씩 공유하는 시간을 갖고 학생들이 놓친 질문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학생들은 소설 내용을 더 잘 알게 되고, 읽은 소설에 대한 친밀감을 표시하게 됩니다.
3차시는 2단계, 심화질문으로 토론을 하는 시간입니다. 심화질문은 “왜 그럴까, 무슨 의미일까,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관한 질문들인데, 이때도 질문만 만들고 답은 적지 않도록 지도합니다. 학생 스스로 심화질문을 만들면 작품에 대해 보다 더 깊게 생각하게 되는 이점이 있습니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에서“왜 소설 제목이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일까?”, “황만근의 죽음으로 작품이 마무리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등의 질문을 만들 수 있습니다. 모둠에서 학생 개인별로 심화질문을 한 개씩 만들면 모두 4개의 심화질문이 만들어지고, 이 질문들을 통해 서로 토론하며 작품을 넓고 깊게 이해하는 활동을 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3단계는 나의 삶, 사회와 관련된 적용 질문을 만들어 토론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소설과 관련된 적용 질문을 만드는 일을 가장 어려워합니다. 모둠별로 협력하여 대표 적용 질문 한 개만 만들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에서 적용 질문은 “황만근 같은 사람이 내 주위에 있다면 나는 그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황만근을 통해 바라볼 수 있는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와 같은 질문입니다. 3차시 2단계와 3단계는 한 차시로 진행해도 좋고, 두 차시로 나누어 진행해도 좋습니다.
4차시는 독서와 토론이 모두 끝난 후, 한 편의 글쓰기 활동을 하는 시간입니다. 글의 형식은 ‘독서 에세이’입니다. 독서 에세이는 읽고 토론한 책을 바탕으로 성찰과 깨달음을 표현한 글입니다. 독서 에세이를 쓸 때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점에 유의하도록 합니다. 소설 줄거리를 장황하게 쓰지 말 것, 책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이 드러나도록 쓸 것, 독서 에세이를 완성한 뒤 글 제목은 스스로 만들 것, 분량은 A4 한 면으로 3~4문단으로 할 것.
사실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소설을 읽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을 들으며 자신의 생각 가지를 펼치게 되는데 그것을 재료로 삼아 글을 써보며 사고가 단단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저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쓴 독서 에세이를 모두 취합한 후 주말을 이용해 읽었습니다. 교무 수첩에 A, B, 이보다 더 잘 쓴 경우는 +를 더한 표시를 해 놓은 후 색깔과 특성이 다른 글을 골고루 섞어 미리 모둠을 구성하고 나서, 주중에 학생들에게 학생들이 썼던 글을 돌려주었습니다. 학생들은 돌려받은 자신의 글을 타이핑하여 다음 국어 시간에 4장의 출력본을 준비해 옵니다. 자신이 쓴 글과 모둠원들이 쓴 글로 모둠별 합평 활동을 하기 위함입니다.
5차시는 독서 에세이 합평 시간으로 진행했습니다. 수업 전 모둠 4명 명단을 공개하고 모둠끼리 앉도록 합니다. 자신이 타이핑해 온 글을 모둠원들에게 나누어준 후 한 명의 모둠 사회자를 정합니다. 사회자 진행으로 한 사람씩 자신의 글을 읽도록 합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글을 읽고 나면 모둠원들에게 그 글의 좋은 점을 구체적으로 칭찬하도록 했습니다. 4명 모두 돌아가면서 읽고 합평하는 시간을 마치면 모둠 내에서‘내 마음에 들어온 한 편의 글’을 선정하도록 합니다. 모둠 안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글이 정해지면, 그 글을 쓴 친구는 자신의 글 4장을 가지고 다른 모둠으로 이동합니다. 이동한 모둠에서는 이 친구의 글로 새로운 모둠원 합평 활동이 이어집니다. 마지막으로 교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의 글을 직접 읽어주고 전체 합평을 이끌어냅니다. 교사는 여기에 덧붙여 이 글의 장점을 구체적으로 말해주고 보완할 점을 한두 가지 언급해줍니다. 글쓰기와 합평까지 하고 나면 학생들은 한 작품에 대한 다양한 글을 접하면서 자신과 다른 관점의 글에 놀라기도 하고, 또 친구들의 글솜씨에 감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즐거운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런 모형의 소설 수업이 되풀이되면서 작은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학생들은 스스로 질문을 만들며 적극적으로 작품에 몰입하게 되었고, 친구들의 의견을 들으며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처음에는 자신이 쓴 글을 그대로 타이핑해 오더니, 나중에는 문장을 고치고 제목도 새롭게 생각해내어 글을 조금씩 다듬어 오는 학생들도 생겨났습니다. 친구들 앞에서 소리 내어 자신의 글을 읽다 보니 문맥이 매끄럽지 않거나 설득력이 떨어지는 문장을 스스로 눈치챈 모양입니다. 눈으로만 보고 글을 수정하는 것보다 소리를 내어 읽는 것이 글을 잘 고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소설을 읽고 토론을 하며 여러 의견을 나누고 생각의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훌륭한 인성교육입니다. 또 스스로 글을 써 보며 체계적으로 사고하는 힘을 기르게 됩니다. 토론과 글쓰기 중심의 소설 수업은 학생, 교사 모두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시간입니다.
오영애 칭다오청운한국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