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어 교육에 빨간색 열정 더하기
“한국어 교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요?”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위한 2차 면접날, 마지막으로 받은 질문에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마음속 한 곳에 묻어둔 과거의 부끄러운 경험이 쓱 올라왔던 것입니다. 당시 저는 한 국제학교에서 여러 나라에서 오신 원어민 선생님들과 함께 일하며,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선생님들께 일주일에 한 번씩 한국어를 알려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한 분은 한국 드라마의 열성적인 팬이셨습니다. “드라마에서 ‘습니다’라는 단어가 자주 들리는데 도대체 ‘습니다’가 뭘까?”라며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는 곧 한국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어느 날은 그 선생님께서 드라마를 보다가 궁금한 점을 적어 왔습니다. “‘내 엄마’라고 안 하고 ‘우리 엄마’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나요? 뜨거운 국을 마신 후에 ‘시원하다’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모자를 입다’라고 말해도 되나요?”
정말 부끄럽게도 이 질문들 중 어느 하나에도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모국어라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했던 한국어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고, 이러한 제 모습에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잘 설명해 주고 싶다는 열망도 함께 생겨났고, 한국어에 대한 공부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면접에서 질문을 받고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저의 미래를 떠올려보았지만, 우물쭈물했던 과거의 모습도 함께 교차되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저, 저는… 다양한 색상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게 빛나는 무지개처럼 무지갯빛 한국어 교원이 되고 싶습니다. 한국어교육을 통해 한글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과 다채로움도 선사해 주고 싶습니다.”
만감이 교차했던 면접이 끝난 후, 부족함만큼 열정도 가득한 한국어 교원이 되었습니다.
* 빨주노초파남보 알록달록 수업 디자인
5년 전 면접에서 했던 마지막 답변은 운명처럼 성큼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광저우한글학교에서 미술 과목을 맡게 된 것이었습니다. 미술이라는 과목은 한국 문화라는 소재를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운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전통 예술, 한국의 자연경관, 한국의 의식주 등 한국 문화와 관련된 주제들은 미술 수업에 활력과 생기를 부여할 것입니다. 다양한 색감이 어우러진, 학생들이 만든 무지개가 벌써부터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습니다.
학교의 잔디가 싱그러움을 더한 봄, ‘한국 문화와 함께 놀자’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한옥의 문, 창살, 지붕 장식부터 시작하여 한복의 소매와 치마, 전통 공예품 등에 그려진 아름다운 문양들을 보며 서로의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저 대장금에서 이런 문양 본 적 있어요.”
한 학생이 번쩍 손을 들고 한국의 사극 드라마 이야기를 시작하자, 학생들은 자신들이 보았던 각종 사극 드라마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열띤 발표 이후, 학생들은 자신만의 문양을 디자인하여 원형 접시에 그려 넣었습니다. 전통 접시가 완성되자 이 접시를 들고 모두 잔디밭 운동장으로 나가 멀리 던지기, 높이 던지기, 부메랑처럼 던져보기 등 다양한 놀이 활동을 하였습니다. 예쁜 색감과 패턴의 전통문양들과 학생들의 미소가 초록색 잔디밭을 알록달록 물들인 날이었습니다.
여름에는 한반도에 관련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이야기를 들은 후, 한반도 지도를 보며 전국 각 도의 이름을 함께 읽어보았습니다. “우리 할머니가 사는 곳이 충청도라 가본 적 있어요.” 학생들은 자신들이 가본 곳, 그리고 거기서 경험했던 일들을 이야기하였습니다. 한반도의 지리적인 특징과 각 지역의 명소들도 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후 학생들에게 세 가지 색의 지점토를 주었습니다. 학생들은 주어진 색을 서로 혼합하여 다른 색을 만들었고, 한반도 지도 위에 형형색색의 지점토를 도별로 붙였습니다. 이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한반도의 모습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여름의 끝자락, 학생들과 수묵화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수묵담채화와 수묵채색화 작품을 보며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찾아보고, 사군자는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 찾아보는 활동부터 시작하였습니다. 물의 농도에 따라 표현하기, 선의 두께들을 조절하기 등 기초 연습을 한 후 상감청자에 수묵화로 꾸며보기 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조상들의 여가생활, 조상들의 예술적 삶을 짧게나마 경험해보았습니다.
추석이 다가올 무렵에는 한복 디자인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먼저 노래와 동화로 한복의 다양한 스타일과 종류를 알아보며 한복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후 한복 디자이너가 된다면 어떤 한복을 만들고 싶은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학생들은 한지와 색종이를 활용하여 저고리와 치마, 한복 바지 등 자신만의 한복을 디자인하였습니다. 한지의 질감을 느끼고, 한복의 아름다운 선을 디자인하며 한복의 전통적 멋과 가치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 한국 문화의 색감을 펼치는 무지개, 한국어 교원으로서의 열망
한국 문화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독특한 아이디어를 반영하여 개성 넘치는 작품들을 창조해내는 학생들을 보며 뿌듯함과 보람을 느꼈던 한 해였습니다. 앞으로도 한국 문화의 다양성을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한국 문화를 사랑하고, 한국의 전통 예술을 학생 자신만의 색감으로 이끌어내는 한국어 교원이 되고 싶습니다. 광저우한글학교의 파란 하늘에 뜬 한국 문화 무지개로, 멀리서도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이 보일 수 있도록…….
전통무늬
한반도 지형
수묵화
한복 디자인
김수정 광저우한글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