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앤서니 브라운의 동화책을 좋아하는 엄마 덕분에 집에는 앤서니 브라운의 책이 많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앤서니 브라운의 모든 책을 읽게 되었고, 앤서니 브라운의 책은 ‘좋은 책’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로 각인되어 있다.
앤서니 브라운의 책 중 가장 유명한 것을 꼽는다면 ‘돼지 책’이다. ‘돼지 책’은 읽는 나이에 따라 내용이 다르게 다가온다. 최근 학교에서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책 읽어주기 봉사활동’을 했을 때 ‘돼지 책’을 읽어주었는데, 어렸을 때는 단순히 사람이 돼지로 형체가 변했다는 시각적인 부분에만 집중했다면, 최근에 다시 읽었을 때는 가부장적 사회체계와 가부장의 대물림 현상이 내 생각을 사로잡았다.
이렇게 읽는 나이에 따라, 또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책을 만드는 작가들은 나와는 동떨어진 세계에 사는 대단한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해 필리핀한국국제학교(KISP) 7학년과 10학년 학생들은 김스진 선생님(통합사회 담당)과 양다슬 선생님(영어 담당)의 지도 덕분에 우리만의 동화책을 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2학기부터 시작한 동화책 만들기 프로젝트는 KISP가 디지털 선도 학교로 선정되며 지원금으로 구매한 크롬북을 활용했다. 동화책을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제 선정이었다. 해당 프로젝트의 큰 틀은 7학년 사회시간, 10학년 통합사회 시간에 배운 여러 개념을 이용하여 영어로 동화책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나는 1학기 때 배운 인권, 특히 신체의 자유를 승무원의 삶과 접목해 동화의 주제를 정했다. 동화의 주된 내용은, 치마와 블라우스를 입어야 하는 복장 규제가 있는 헬스장에 간 주인공 햄스터 ‘하라’가 복장의 불편함을 깨닫고 투쟁하며 원하는 옷을 입을 권리, 즉 신체의 자유를 요구하는 이야기이다. 이 주제를 선택한 이유는 해외에 살며 방학마다 한국에 들어갈 때 승무원들이 입은 치마가 ‘승무원’이라는 직업의 업무를 수행할 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모습으로는 승무원이 이륙과 착륙 시 출입문을 여닫는 모습, 탑승객의 캐리어를 들어주는 모습, 기내식을 운반하는 모습이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타는 것, 데드리프트를 하는 것과 유사해 보였다.
활동지는 나의 관심사와 교육적 가치를 합쳐 주제를 도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주제를 선정한 다음에는 주인공과 배경, 갈등, 해결책, 결말 등을 간단히 적어 전체적인 이야기를 구성했다. 이 활동지들을 Notion에 공유하면, 담당 선생님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나의 초창기 시나리오에서는 복장 규제를 적용받은 주인공과, 복장 규제가 없는 다른 나라의 인물을 대비시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는데, 선생님께서는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피드백을 주셔서 이에 따라 시나리오를 수정하였다. 덕분에 교육적 가치를 더욱 높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이야기를 구성한 이후에는 프로젝트를 10학년보다 늦게 시작한 7학년을 위해 10학년 학생들이 7학년 학생들에게 선택한 주제에 대해 피드백을 주고, 10학년이 프로젝트를 하며 거쳐 온 과정과 팁을 알려주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들은 이야기에 디테일을 추가하고, 줄거리를 영어로 번역하고,, 제목을 생성하는 것 등 다양한 부분에서 ‘Chat GPT’를 활용하였다. 나의 경우에는 Chat GPT에 ‘어떻게 하면 헬스장을 기내처럼 보일 수 있게 만들까?’라는 질문을 던져, 덤벨 벨트를 비행기 좌석 벨트로 대체하기, 러닝머신을 기내 통로처럼 만들기, 좌석 번호 배치하기 등의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Chat GPT의 아이디어를 정리한 내용
위의 모든 과정이 끝난 후, 각 학급에서 영어로 각자가 만든 동화책의 줄거리를 발표하고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반 친구들이 의아해하며 물어본 부분이 있는 경우 프로젝트 과정에서 수정하였고, 또 디테일을 추가하거나 제외시켰다.
마지막 단계는 동화책 이미지를 생성하고 편집하는 것이었다. 이는 가장 단순해 보이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 부분이었다.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MidJourney’라는 AI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을 활용해 그림을 생성했다. 담당 선생님들의 지도 아래 MidJourney 플랫폼을 사용하는 방법, 한 캐릭터를 생성한 모든 이미지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는 ‘Canva’를 이용해 삽화와 글들을 배치하였다.
Canva를 활용해 동화책을 완성한 모습
나만의 동화책 만들기 프로젝트는 2학기 내내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은 프로젝트라서 나에게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여러 플랫폼을 활용해 나만의 동화책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게 기회를 주신 김스진, 양다슬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일 뿐이다. Notion 플랫폼을 활용하며 프로젝트 시작부터 끝까지의 기록을 볼 수 있어 뿌듯했고, 열심히 노력한 흔적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다시 한 번 프로젝트를 마련하고 학생들을 열심히 지도해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나만의 동화책 제작 일대기를 마친다.
동화책 프로젝트 활동 과정을 담은 Notion의 모습
김정서 재외한국학교 글로내컬 학생 리포터 2기(필리핀한국국제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