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배의 인구, 95배1)에 달하는 국토 면적… 중국이 ‘크다’는 사실이야 어릴 적부터 들어본 적 없는 사람 어디 있겠느냐만, 직접 중국에 살며 하나씩 체감해 나가다 보면 끊임없이 새삼스럽게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2차선보다도 흔한 6차선 도로라던가, 산책 삼아 한 바퀴 돌기도 힘든 동네 공원처럼, 일상의 소소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도 물론 재미있을 것이다. 다만 2년간 한 도시에 머무른 경험만으로 중국을 논하기엔 ‘중국’은 너무 다양할 뿐더러, 무엇보다 새로이 중국살이에 도전하게 될 사람들의 생생한 체험을 방해할 수 있겠다는 조그마한 파심(婆心)이 맴돈다. 이번에는 중국 거주 경험 유무를 막론하고 유용하게 느낄 법한 정보를 나눠 보고자 한다. 바로 중국 내 여행에 대해서다. 모두가 이미 알고 또 내가 2년간 느꼈듯, 우리의 여유(餘裕) 안에 담아내기엔 중국은 턱없이 크다. 자연히 여행지를 고르는 일은 치열한 내적 전쟁이 된다. 아무쪼록 이 글이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의 만족스러운 의사결정에 조금이나마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1) 북한 면적을 제외하고 계산하였다.
해방비 거리(좌)와 옛마을 츠치커우(우)
첫 여름방학을 맞아 중국에서 처음으로 고른 방문지는 충칭이었다. 달리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입국 후 일과 방역지침 사이에서 정신없는 세 달을 보내느라 중국이 생소했던 내게, 들어본 적 없던 수많은 후보들을 일일이 선별하는 일은 너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고민이 길어질수록 결과에 대한 집착만 커질 것을 알기에, 직관적인 방법을 택했다. 바로 ‘최저가 정렬’이다. 결과적으로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것만 미리 말해 두겠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가격이 저렴한 이유를 깨달았다. 충칭의 7월 평균 기온은 최저 27도, 최고 기온은 무려 40도 가까이에 달한다. 충칭과 우한(武汉), 난징(南京)은 통틀어 ‘3대 화로(火爐) 도시’라 불릴 정도로, 여름이 관광 비수기인 도시들이다. 체크인 후 다시 샤워를 하고 자외선 차단제를 꼼꼼히 발랐다. 겸사겸사 옆 도시인 청두(成都) 여행도 염두에 둔 관계로 일정이 넉넉한 편이었고, 과감히 ‘느린 여행’을 택할 수 있었다. 인민대례당·삼협박물관·임시정부 등 시내 안의 명소들은 대체로 9시부터 17시까지 운영하였으므로, 비교적 덜 더운 아침 혹은 늦은 오후를 활용해 하루에 한두 군데씩만 방문했다. 한낮에는 카페를 찾아다니며 책을 읽거나, 식당‧마트‧쇼핑몰 등을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가격과 접근성 중 고민하다가 번화가인 해방비 거리 내 호텔에서의 연박(連泊)을 택했던 것이 다행스러웠다. 해방비부터 대부분의 시내 관광지까지는 띠디(滴滴) 이용이 가능한 거리이므로, 특히 여름 충칭 여행을 계획한다면 거점으로 제일 먼저 고려하는 것이 좋다.
충칭 관광 일정에 꼭 넣어야 할 곳은 충칭의 전통 거리 츠치커우(磁器口)와, 충칭역에서 2시간 고속철을 타면 들를 수 있는 무릉구(武隆区)이다. 첫차는 8시, 돌아오는 막차가 19시이므로, 당일치기도 가능하지만 1박 이상을 강력히 권한다. 무릉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인상무릉쇼(印象武陵)’가 늦은 저녁에 열리기 때문이다. 중국의 거장 장예모 감독의 7번째 작품인 인상무릉은 양쯔강(長江) 인부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대형 야외공연인데, 다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그 압도적 규모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단, 종료시간이 대단히 늦으니 공연장에서 숙소로 돌아갈 차편을 미리 알아볼 것. 자연과 도시, 전통과 발전을 균형 있게 모두 갖춘 충칭은,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추천할 만한 여행지이다. 충칭소면을 비롯해 한국인의 입맛에 꼭 맞는 화려한 사천(四川) 음식들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민생광장 골목길
중국살이 2년차를 맞아 처음으로 생소한 도시 방문에 도전했다. 아무래도 대도시는 한국발 직항편이 있으니, 중국에 머무르는 중엔 그렇지 않은 도시들을 우선시하는 것이 맞다 싶어서였다. 광저우에서 서쪽으로 400km 떨어진 난닝은 광시 자치구의 으뜸 시(市)로, 695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규모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도시 중 하나다. 한파를 피해 하이난(海南) 성으로 가기 전 잠깐 들른 곳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매력에 푹 빠져 버리게 되었다. 최남단 도시다 보니 1월에도 기온이 15도 정도로 선선하다. 청수산(靑秀山)과 공자묘 같은 굵직한 관광지도 좋고, 동물원이나 박물관 같이 도시 느낌이 물씬 나는 명소도 물론 좋았지만, 좡족 자치구만의 이색 기후와 풍경이 여행을 지루할 틈 없이 메워 주어 특히 기억에 남았다. 공공 띠엔동(电动车) 대여가 매우 편리하니, 난후(南湖) 공원·인민공원·민생광장 등으로 라이딩을 마음껏 즐겨보길 권한다.
구곡만 온천의 낮(좌)과 밤(우)
난닝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곳은 다름 아닌 온천이다. 도심지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구곡만(九曲灣) 온천 리조트는 흠잡을 데 없는 인테리어로 눈까지 즐겁게 만든다. 낮 때와 밤 때의 매력이 각각 다르니 1박을 꽉 채워 머물러야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 난닝이 계림, 광저우, 하이난은 물론이고 심지어 베트남과도 이어져 있는 남부 교통 요지임을 고려하면, 다음 여행지로의 이동 전에 체력을 비축하는 일정으로 삼기에도 더할 나위가 없다.
난닝에서 길게 일정을 보낼 수 있다면, 여름에는 베이하이(北海)와 위주도(涠洲岛)에서 물놀이와 신선한 해산물을 즐기고, 겨울에는 베트남 국경의 덕천폭포(德天瀑布)를 방문하면 좋겠다. 베이하이는 난닝에서 기차로 1시간 30분 소요되며, 덕천폭포는 따로 차량을 예약하여 4시간 정도 이동해야 한다. 뗏목을 타고 아시아 최대 규모의 폭포를 원 없이 즐긴 뒤, 국경 시장과 미식 거리를 둘러보면 중국과 베트남 사이 어디쯤의 오묘한 재미를 맛볼 수 있다.
한국에서 출발한다면 저렴한 경유편도 나쁘지는 않겠으나 계림(桂林)이나 마카오로 들어와 묶어 여행하는 것을 더 추천하고 싶다.
리장고성의 낮(좌)과 밤(우)
약간이지만 늘어난 중국어 실력(또 그것을 훨씬 상회할 정도로 늘어나 버린 근거 없는 자신감)과 코로나 1년간의 이동 자제에 대한 보상심리가 맞물려, 올해 여름방학에는 정말 수많은 도시를 오가게 되었다. 도시마다 각양각색의 매력을 갖고 있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도시는 단연코 없지만, 그중에서도 인상 깊게 떠오르는 곳은 역시 리쟝이다. 특히 고성(古城)의 소박한 경치는 아직까지도 눈앞에 선명히 그려지는 듯하다.
충칭과는 대조적으로, 여름의 운남성(云南省)은 기온이 20도 내외로, 그야말로 최고의 날씨다. 여름이 선선하기에 하루하루 꽉 찬 일정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다. 낮에 납시해(拉市海) 습지를 다녀오면, 오후부터는 계속해서 고성 투어를 이어갈 수 있다. 같은 듯 다른 수많은 골목과 가게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구경, 식당, 구경, 카페… 일몰 이후 시시각각 변해가는 풍경을 꼭 눈에 담아야 한다. 숙소가 높은 곳에 있지 않다면, 밤에는 꼭대기 쪽 가게를 폐점시간까지 느긋이 이용해 보는 것도 추천한다. 수하구전(束河古镇), 백사고진(白沙古镇), 사계고진(沙溪古鎮) 등 수많은 전통 거리가 있으니, 고성이 마음에 들었다면 한 번씩 방문해 보기 바란다. 고즈넉한 분위기 애호가라면 리쟝 여행이 끝도 없이 연장될 수 있으니 주의.
북으로 가면 오로라를, 남으로 가면 스콜(squall)을 만나볼 수 있는 중국만의 다채로운 매력은 정말 비견할 데가 없다. 특히 취업, 유학 등으로 장기간의 해외 거주를 염두에 두는 사람에겐 강력히 추천할 만한 나라다. 시야를 좀 더 넓혀 보자면, 중앙아시아 국가부터 러시아·몽골·인도·미얀마·라오스·베트남… 세계에서 타국과 국경을 가장 많이 맞대고 있는 국가도 바로 중국이다. 사실상 섬나라처럼 살아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육로 여행은 맛보지 못했던 경험과 깨달음을 선사하는 계기가 되어 준다. 네 번째 방학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는 지금도, ‘나’를 위한 여행을 계획하기에 이보다 좋은 국가는 없겠단 생각이 든다. 떠날 곳을 먼저 정한 뒤 호불호를 따져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취향에 따라 여행지를 골라 갈 수 있는 나라가 중국 외에 어디 있겠는가. 첨언할 것도 없이 일생(一生)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한 중국 여행이다. 더 늦기 전에 이번 휴가부터 중국에서 보내 보는 것은 어떨까?
배희진 재외한국학교 글로내컬 교사 리포터 2기(천진한국국제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