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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교 학부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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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의 자기계발서

며칠 전 지인과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자연스레 아이들 얘기가 나왔습니다.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하는 딸이 이제야 사춘기가 왔는지 엄마의 말은 전혀 듣지 않는다며 서운함을 토로하는데 남일 같지 않았습니다. 제 딸도 지인의 딸과 성향이 비슷해서, 저도 2년 후에는 같은 말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그 친구는 한국에서 누구보다 대학 생활을 잘하고 있습니다. 독립적인 성향에 자기 주관도 뚜렷하고, 어린 데도 자기의 미래를 잘 만들어 가고 있는 착실한 친구입니다. 그런데도 엄마의 눈에는 여전히 딸이 아기 같고, 부족한 점이 보이면 계속 무언가 더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그런 부모의 관심을 성인이 된 아이는 간섭이라고 생각하고 거부하고 밀어내려 하는 것 같습니다. 서로의 입장이 있지만, 왠지 더 서운해지는 것은 부모 쪽입니다. 특히 외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하나에서 열까지 엄마 손이 닿지 않았던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엄마는 20년을 꼬박 함께했던 제 몸 같았던 아이를 떼어놓는 것이 어렵고,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아이는 이제 어른이라며 금방 떨어져 나가려 합니다. 서운하고, 어이없고, 괘씸하고…… 오만가지의 마음이 교차합니다. 그런데도 늘 걱정되고, 하나라도 더 챙겨 보내 주고 싶고, 이것도 했음 싶고 저것도 했음 싶고, 이렇게 놓지 못하는 이 부모의 마음을 어떡하면 좋을까요? 남편은 대학도 보내기 전 딸아이 걱정을 하고 있는 저에게 그러다 없던 병도 생기겠다며 지금부터 홀로서기 연습을 하라고 말합니다. 세상 딸바보인 자기도 그러지 못할 거면서,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아이들 걱정이 대부분이지만 외국에서 20년 가까이를 살고 있는 제 자신도 늘 걱정입니다. 이제는 경력 단절이란 말도 무색하게, 나이만 들고 해 놓은 것은 없는, 이렇게 세월을 내버려 두는 것이 맞나 싶습니다. 하루하루 더 바보 같아지는 제가 두렵기도 합니다. 혹여나 갑자기 귀임하게 되면 한국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하나부터 시작해서, 이제 나이가 들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아이들을 대학에 보낸 후에는 나도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에 머리가 복잡하기도 합니다.

자신을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 무렵부터 어학 공부도 열심히 했고, 전공을 살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해 보았고, 아이들 방학 때 한국에 가면 단기 자격증도 따 놓았습니다. 온라인 강의도 들어보고, 문화센터를 찾아다니며 글쓰기 모임, 시 모임, 플로리스트 수업 등 관심 가는 수업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참여했습니다. 건강을 위해 여러 운동도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뭐든 배워 놓으면 언젠가는 유용하게 쓰일 날이 분명 있을 것이라 믿으며 늘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단기적인 배움만 있을 뿐 커리어가 쌓이는 일이 아니니 스스로 만족도가 크진 않습니다. 아이들에겐 네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하는데, 정작 제 자신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들을 선택한 것인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선택한 것인지, 기준도 모호합니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저에게 가장 적합했던 것을 찾아서 배워 왔다고 타협해 봅니다.

아이들을 키우며 주어진 현실을 사느라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은 아이들을 대학에 보낸 이후로 미뤄 놓기로 정해 놓았었습니다. 이제 그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말도 많아지니, 마음도 급해지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얽매이지 않고 오롯이 저만을 위한 홀로서기가 가능한 것일지, 홀로서기라는 말이 참 낯설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이곳에 사는 다른 어머니들도 저와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얘기해 보면 저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서 서로 자문을 구합니다. 다른 분들이 ‘난 이런 것에 도전해 보면 어떨까 해’라고 이야기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꼭 해낼 것이라고 전적으로 응원을 보냅니다. 그런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믿음을 주는 일이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마음이 아름다운 것 같아서 꼭 믿음을 표현해 주고 싶은데, 스스로에게는 믿음을 주는 일이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도전해 보고 싶지만, 두렵기도 하고 어려움이 앞섭니다. 생각해 보니 저도 아이들과 똑같은 고민을 하는 중인 것 같습니다. ‘자신을 믿는 것도 능력이야, 네 자신을 믿고 잘 찾아보렴.’ 아이들에게 늘 해 주던 말을 스스로에게도 말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문구점에서 노트 한 권을 사서 겉표지에 ‘자기계발 계획서’라고 크게 썼습니다. 한 줄씩, 한 페이지씩, 한 권씩 채워 나갈 예정입니다. 시작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유의미하게 이뤄낼 수 없을 테니까요. 성인으로 성장해 나갈 아이들을 응원하면서, 함께 성장해 나갈 제 자신도 열심히 응원해 봅니다.

문화센터 창작시 수업

최희정 재외한국학교 글로내컬 학부모 리포터 2기(소주한국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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