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벨트 잘 매고, 수업 잘 듣고, 다치지 말고, 이따 집에 조심히 와.”
오늘도 아이들 아침 등교 배웅을 마치고 돌아서는 순간부터 온몸 여기저기 걱정 주머니가 가득합니다. 이쪽 주머니에서는 스쿨버스가 학교까지 제대로 도착할 수 있을지, 저쪽 주머니에서는 아이들 저녁메뉴가 걱정입니다. 아이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걱정 주머니가 하나둘씩 생겨나더니 중고생이 된 지금은 차고 넘쳐 셀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해외에서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7년 전에는 지금보다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열악했다 보니 아플세라 다칠세라 늘 노심초사였습니다. 엄마의 1부터 10까지 관심사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된 딸아이는 엄마는 왜 이렇게 우리한테 걱정이 많냐고, 엄마가 걱정 안 해도 우리는 다 잘할 수 있다고, 자신은 결혼해서 아이가 생겨도 자신을 위해 살 거라고 말합니다. ‘픽’ 웃음이 났습니다. 결혼 전 제 인생의 일순위는 ‘저’였습니다. 아이가 생겨난 후 자연스럽게 일순위가 바뀌었습니다. 저 자신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오래전 어딘가에 정리해 둔 옷처럼 잘 찾아지지 않습니다. 나이만 먹는 게 두려워서 자기 계발을 위해 이것저것 시도해 보지만, 아이들의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면 제 것은 포기하게 됩니다. 배움도 도전도 시간도 나중으로 미루고 저의 시계는 언제나 아이들을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올해 9월부터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게 됐는데 매주 글 주제는 ‘자기 자신’입니다. 어릴 때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12주 동안 글로 풀어내는 과정입니다. 매주 보물찾기하듯 저 자신을 알아가는 중입니다. 아이들과 남편 이야기는 줄줄 써 내려 갈 수 있는데 제 이야기는 한 줄을 떼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엄마’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잘 알겠는데 저 자신의 이야기는 ‘뭐지?’, ‘뭐였더라?’… 물음표만 가득했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은 저를 샅샅이 헤집어 보면서도 글모임이 끝나면 바로 아이들 걱정으로 돌아옵니다. 과목 수행 발표는 무사히 마쳤는지, 줄넘기하다 삐끗한 발목은 괜찮은지, 급식은 안 거르고 잘 먹었는지…. 글쓰다가 종이에 베인 제 손가락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친한 엄마들과의 식사 자리에서도 주요 화제는 아이들 입시 관련 정보들과 대학 진학에 관련된 이야기들입니다. 성적 관리부터 시작해서 특례 이야기, 대학 학과들, 대학 진학 후 아이들의 적응 걱정, 졸업 후 걱정, 먹고 사는 걱정…. 아직 입시도 치르지 않았는데 우리 모두는 걱정어머니들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할 미래까지 앞서서 걱정하고 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걱정거리도 산더미인데 없는 걱정도 만들어내는 서로의 모습에 어이없는 웃음이 납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잘 할 것이라며 걱정을 내려놓자고 서로를 다독이지만 염려스러운 걱정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대학을 가고 나면 걱정이 없어질까?’ 남편의 질문에 ‘아니’’라는 대답이 바로 터져 나왔습니다. 아마도 아이들 걱정은 계속 늘어나기만 할 겁니다. 저희 시어머니도 곧 오십을 바라보는 아들이 뭘 할 줄 알겠냐며 한 걱정하고 계시니까요. 시어머니께 아들은 능력자라고 말씀드려도 믿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넌 내 걱정은 안 되니?”라는 남편의 물음에… ”아..음….”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아이들 걱정만 하느라 제 짝꿍의 걱정을 잠시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걱정어머니’는 당연한 건데 ‘걱정 아내’까지는 저도 모르게 버거웠나 봅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길을 잘 찾아갈 테니 걱정 내려놓고 저 자신부터 챙기라는 남편이 말이 고맙고 미안해집니다.
아이들의 걱정을 지우게 되면 무엇으로 그 자리를 채워야 할까요? 저 자신을 걱정해야 하는지, 남편을 걱정해야 하는지, 아니면 남이라도 걱정해 주어야 하는지…. 그것보다는 ‘아이들에 대한 믿음’으로 채워야겠습니다. 저의 모든 걱정의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엄마니까 자식에 대한 걱정은 당연한 것이지만, 내일의 구름까지 끌고 와서 오늘의 햇빛을 가리지는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걱정 어머니’보다는 ‘믿음 어머니’로 불리길 스스로에게 기대해 봅니다.
최희정 소주한국학교 22년 글로내컬 학부모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