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 미술관에서 돌아오는 길 ‘SIAM’역에서 지상철인 BTS를 탔다. BTS 안은 무척 붐볐고 아이들과 손잡이를 잡을 만한 곳도 없어 난감해하고 있었다. 그때 건너편에 앉은 여러 명이 일제히 일어서더니 우리 쪽으로 반갑게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한 분은 무거운 짐을 손에 들고 있었고 다른 한 분은 나이가 꽤 있으신 분이었는데 너무나 당연한 듯이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오늘은 아이들이 감사 인사와 함께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지만, 처음에는 한국에서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나도 아이들도 어쩔 줄 몰라 했던 기억이 난다.
태국의 BTS 한편에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우대좌석이 있다. 노인과 임산부 그리고 장애인에 대한 배려만 있는 한국과 달리 불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답게 승려에 대한 우대와 함께 어린이 또한 가장 먼저 배려된다는 점에 매우 놀랐다. 그리고 더 놀라운 점은 우대좌석이 아닌 일반좌석에 앉아 있다가도 아이들이 타면 무조건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는 태국인들의 모습에서 아이들을 소중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그들의 마음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엄마, 바다거북이가 너무 불쌍해요.”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작은 아이가 수업 시간에 플라스틱 빨대에 상처를 입은 바다거북이 영상을 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생님이 우리가 먹다 남긴 음식물도 바다생물들을 아프게 한다고 했다며 오늘 급식 때 먹기 싫은 반찬도 다 먹었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이처럼 아이들이 다니는 방콕한국학교에서는 환경을 주제로 지난 7월에 이어 버려지는 옷을 재활용해서 텀블러 케이스를 만드는 수업이 있었다. 환경벽화 그리기, 환경을 주제로 한 티셔츠 꾸미기, 친환경 음식 만들기, 플래시몹에 이어 이번에는 지구를 살리는 ‘리사이클링’을 주제로 진행이 되었다. 수업에 참여했던 7학년 정다은 학생은 “우리가 안 입은 옷들이 버려지면 다른 동물들의 목숨도 위협할 수 있는데 이렇게 리사이클링을 통해 한 생명을 더 지킬 수 있어서 참 좋은 경험이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리고 10학년 김재원 학생은 “여러 환경과 관련된 체험 등을 해보면서 생태계와 지구의 보전을 위해서는 우리 모두 마음을 모으고 힘을 합쳐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마음들이 더해져서 방콕한국학교의 안쪽 담벼락은 아이들이 ‘환경’을 주제로 낸 아이디어들로 새롭게 물들여졌다. 내일의 지구를 걱정하고 지키려는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이 물씬 느껴졌다.
11월 태국 방콕에서는 ‘2022 APEC 정상회의’가 열렸고 개방·연결·균형의 주제 아래 경제발전과 환경보호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고자 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의제 가운데 하나로 다루어졌다. 물론 태국은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푸른 바다도 많지만, 국립공원 등의 삼림도 넓게 자리하고 있어 생물 다양성과 관련해서는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도시 지역일수록 발달된 쇼핑몰 등에 비해 여가와 휴식에 필요한 공원은 도시 면적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무척 미미한 편이다. 또한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야외놀이터 또한 적거나, 혹여 있더라도 놀이시설이 거의 부족한 상황이다. 아이들을 소중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국의 문화는 정말 본받고 싶은 점이다. 다만 아이들이 꿈을 키울 야외 놀이공간과 가족들이 함께 숨 쉴 수 있는 공원 조성과 관련해서는 좀 더 세심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태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빠르게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또한 합계출산율 역시 2021년 통계로 1.09명으로 낮아서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무척 소중하다. 그러기에 나는 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나 생각해봤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무척 부끄러워졌다. 아이들에게는 그레타 툰베리의 책을 권했지만 정작 나는 음식점에서 물을 주문하면 컵과 함께 나오는 일회용 빨대를 자주 사용하고 있었고 업사이클링은커녕 패스트패션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태국에서는 강에 연꽃 봉오리 모양의 등불을 띄우며 소원을 비는 ‘러이 끄라통’ 축제가 있었다. 강을 오염시키지 않기 위해 끄라통을 스티로폼 등이 아닌 바나나 잎이나 천연소재로 만들어서 띄우자는 모두의 마음이 더해져서 올해는 더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특히 국립공원 내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고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도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을 금하는 등 태국 정부 차원에서도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내일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비록 아직은 미미하고 부족하지만, 아이들의 학교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모두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작지만 큰 발걸음에서 말이다. 아이들이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내일을 소망하는 나의 ‘끄라통’이 저기 강 위로 힘차게 떠가고 있다.
윤여연 방콕한국국제학교 22년 글로내컬 학부모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