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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교 학부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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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이 16세 10개월
엄마의 성장 일기

제법 많은 날을 살아오며 생물학적인 나이 이외에도 다른 나이를 갖게 되었다. 아내 나이, 엄마 나이. 그중 최근 자주 세는 나이는 바로 엄마 나이이다. 16세 10개월 16일. 실제 나이와 엄마 나이의 메우기 힘든 간극을 수시로 느끼지만, 그래도 짧지 않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며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하고, 어려움과 고민을 해결하고, 행복한 미래를 키워가는 중이다. 그리고 중년의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아주 조금 어른이 된 것 같은 자신을 느끼는 중이다. 어느새 엄마보다 더 커버린 아이, 늘어가는 세월의 주름만큼 깨달음의 상자 안에 차곡차곡 생각들을 쌓아가고 있다.

큰아이의 고등학교 입학 첫날 - 비록 3층에서 4층으로의 교실 이동이 전부인 고등이지만 - 아이를 보내고 참으로 마음이 이상했다. 입시의 문을 막 열고 들어가는 두려움과 함께 강렬하게 떠오른 것은 여고 시절의 일들이었다. 30년도 더 지난 그때가 마치 어제 일어난 것처럼 다가온다. 즐겁고 행복했던 추억만큼 후회의 기억도 함께 떠오른다. 어째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때 하지 못했던 것들을 후회하게 되는 걸까, 꼭 공부가 아니었더라도 괜찮았을 텐데, 왜 좀 더 열정적으로 삶을 마주하지 않았을까. 그런 과거를 생각하고 있자니 혹여나 아이도 나처럼 훗날 그런 후회들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근심이 시작된다. 그런 근심들이 조바심이 되어 아이를 채근하게 되고, 서로를 힘들게 할 것 같아 그 시절에서 황급히 빠져나온다.

중국에서의 생활을 얼마만큼 하겠다고 시간을 정하고 온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오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해외의 다른 지역에서 아이를 양육한 경험이 있었지만, 그 당시는 보육의 의미가 컸었던 어린 시기였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간혹 아이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면 흐뭇해하는 정도였다. 엄마 나이도 유아기였던 그때는 사는 곳을 정하는 등의 환경 선택에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 하지만 이곳 중국에서의 생활은 시작부터가 조금은 달라져야 했다. 먼저 출국한 남편이 교민이 비교적 많이 살고 있는, 아이가 다니게 될 학교의 차량이 운행하는 곳으로 집을 얻어야 했고, 입학 준비도 해 놓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환경을 따져야 하는 수고가 있었던 것만큼, 과거의 다른 지역에서처럼 우리말을 들을 수 없어 애먹는 일을 줄일 수 있었고, 감사하게도 주변의 많은 이들이 새로운 이방인을 도와주고 달래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쉽지만은 않은 것이 학부모의 역할이었다. 2학년에는 2학년의 어려움이, 6학년에는 2학년 때보다는 조금 더 큰 어려움이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학습의 문제는 아니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닌 것들에 관해 간혹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고 해결 방법이 오랫동안 떠오르지 않을 때면,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 곳곳에 미처 정리하지 못한 찌꺼기를 밟고 달리는 불편함을 느껴야 했다.

그렇게 두려움과 적응의 시기를 지나 아이를 고등학교에 입학시키고 나서야 새삼 마주한 의문은, 과연 아이는 그 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 하는 조금은 늦은 물음표였다. 엄마의 기억이 맞다면, 초등 4학년의 아이가 새로운 환경을 향한 포부와 기대감을 가지고 간 중국학교의 생활은 눈물로 얼룩진 숙제 시험지를 가지고 가는 날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고, 소통의 문제와 함께 문화의 충돌도 있었던 것도 같다. 그 시기를 지나 익숙해질 때쯤 사춘기의 아이는 새로운 꿈을 위해 다시 한국학교로 돌아가기를 결정했었다. 그러나 돌아오고 나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학습의 공백을 느꼈을 것이고, 돌아오기만 하면 해결될 것 같았던 중국학교에서의 어려움이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 같다. 하지만 기억의 맞고 틀림을 떠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이는 쉽지 않은 어려움의 터널을 스스로 나와 성장했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아이를 키워나가는 부모는 어느 부분에 의미를 두어야 하는 것일까? 어렵게 결정한 중국학교로의 전학은 현지 언어 습득에 대한 기대감을 주었고, 언어 습득 이외에도 아이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고 있다는 부모 스스로의 만족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부모도 아이도 해외 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땀 흘리고 노력한 만큼, 아이가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것보다 조금은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대가를 바란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물론 이런 좋은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해외에서 아이는 새로운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고, 항상 좋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다양한 경험을 받아들였다. 그래도 가끔은 또래의 아이들이 한국에서 당연하게 가질 수 있는 것들을, 뜨겁게 갈망하는 아이의 눈빛은 근심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언젠가 아이가 외출했다는 말을 들은 한국의 친구가 이곳 아이들은 친구들끼리 만나면 주로 무엇을 먹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날 아이는 본인이 좋아하는 마라탕(麻辣烫)을 먹으러 갔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채팅창에 써놓은 마라탕이라는 글자를 제법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그렇다. 나의 아이는 고교 시절 친구들과 자주 먹던 음식이 여고 앞 떡볶이가 아닌 마라탕이 될 것이고, 친구들과 함께 걷던 그 길에는 광둥식 아침을 파는 가게가 있었으며, 스쿨버스로 한 시간을 가야 하는 등교 준비를 위해 어둠이 걷히기 전 일어나야 했고, 매해 춘절 - 중국의 설날 – 아파트 입구에 세워져 있는 만들어진 귤나무 앞에서 엄마를 위해 ‘치즈와 브이’를 외치며 모델이 되어 주었고… 그 옛날 여고 시절을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엄마처럼 나의 아이도 평생을 기억하게 될 학창 시절을 과연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부모의 노력에 대한 답으로, 평생 기억하고 싶은 아름다운 추억을 준 것에 감사하게 될까? 아니면 본인의 선택이 아닌 부모의 결정으로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고 원망하게 될까? 엄마는 자꾸만 아이가 되어 본다.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엄마인 나는 어떤 엄마로 기억하게 될까? 의미 없이 내뱉은 말에 상처받은 마음을 쉽게 잊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운명처럼 아이를 낳고 동시에 엄마 나이를 얻었다. 품 안에 안기에도 작았던 아이가 어느새 엄마보다 더 훌쩍 자란 것처럼, 엄마도 아이의 마음을 읽으려 노력했고, 아이가 하루하루 나이를 먹듯 엄마도 엄마 나이를 먹으며 경험과 함께 커왔다. 아이들의 나이가 부모의 사랑과 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엄마의 나이는 아이와 함께한 소통으로 성장한다. 엄마가 처음인 나에게 아이는 지속적인 물음표를 건네주었고 물음표의 의미를 알기 위해 공부하고 생각하는 시간들이 나의 엄마 나이를 만들었다.

하지만 품 안에만 있을 것 같은 아이를 머지않은 언젠가 엄마 나이 스무살 즈음에는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보내야 한다. 우주로 날아가는 발사체가 좀 더 나은 도약을 위해 자신의 동체 일부를 분리하는 것처럼 엄마는 아이에게서 떨어져 나가야 한다.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한 분리를 두려워하지 말자. 두렵다고 혹은 미덥지 못하다고 분리하지 못한다면 정상궤도에 진입할 수 있음을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분리되는 엄마는 그저 아이의 동체가 정상궤도에 진입할 수 있도록 훌륭한 연료를 충전해 주고 쌓아온 기술을 모두 활용할 수 있을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하지만, 알고 있지만, 그래도 어렵다. 타인을 믿는 것보다 내 아이를 온전히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일이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을 느낀 순간 적잖이 당황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믿지 못해서가 아닐 것이다. 다치고 상처받은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를 알기 때문이다. 나의 칠십 노모가 중년의 딸을 지금도 걱정하시는 것은 나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이렇게 뒤늦게 깨닫게 된다.

오늘도 엄마는 아이와 소통하며 엄마 나이 하루를 기다리는 중이다. 아이가 커갈수록 내려놓아야 한다는 말을 아이가 어릴 때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도대체 무엇을 어디에 내려놓으라는 것인지, 그저 생소한 전문 서적 위의 한 줄짜리 공식 같은 느낌이었다. 엄마 자신이 했던 후회들을 아이는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어느 부모나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쉽고 편한 길만을 주는 것이 아닌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갈 힘,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이끌고 나갈 수 있는 지혜를 키울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아직 어린 엄마 나이의 내가 깨닫게 된 내려놓음이다. 설사 아이가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아이보다 더 아픈 엄마의 마음을 잠시 감춰 두고,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너는 열심히 했다고 말해줄 수 있는 부모가 되기 위해, 내려놓음이라는 어려운 공식을 풀어나가는 첫 번째 줄을 써 가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가기 위한 출발선에 서 있는 아이를, 관중석 어디쯤 아이와 눈을 맞출 수 있는 자리에서 응원하려고 한다. 일등을 독촉하는 응원이 아니라, 스스로 달려 나가려는 아이에게, ‘너는 할 수 있다’는 아낌없는 격려를 목청껏 외칠 준비를 한다. 엄마의 바람대로 아이가 지금 나와 같은 엄마 나이가 되었을 때 해외에서의 학창 시절이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사실 조금 더 바라자면 같이 성장한 엄마에게 감사를 표하지 않을까 하는 욕심과 함께.

엄마 나이 16세 10개월 17일…. 멈출 수 없는 시간은 계속 갈 것이고 아이는 커가는 키만큼 자신의 미래를 향해 매진할 것이다. 그 노력이 어떠한 결과로 오게 될지 부모도 아이도 예측할 수 없다. 그저 엄마는 아이의 가장 열렬한 팬이 되려고 한다. 무엇을 하든 응원의 박수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는 든든한 후원자. 오늘도 엄마는 아이의 성장과 발전으로 값진 엄마 나이 하루를 더 먹는다.

[사진 설명] 동네의 단골 마라탕 가게 - 기호에 따라 국물맛과 맵기를 조절할 수 있고, 내용물은 고기부터 채소, 면까지 다양하여 고르는 재미가 있다.

조영미 광저우한국학교 22년 글로내컬 학부모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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