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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교 학부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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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으로 가자

7월 아이들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3년 만에 한국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코로나 시절도 지나가고 비행기표를 예약하던 순간부터 무척 설렜습니다. 발이 묶여 있던 3년 동안 한국에 가면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던 것도, 가고 싶던 곳도 많았던 아이들은 한국의 TV와 인터넷에 나오는 모든 것을 동경하며 한국에서의 여름방학 계획표를 열심히 작성했습니다. A4용지에 빼곡하게 적힌 희망사항을 보니 한 달로는 턱없이 모자라 보입니다. 우리 집 중학생은 어찌나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잘해두었는지 평소 제 아들인가 싶었습니다. 브랜드별로 먹어야 할 치킨이 20여 마리는 되어 보이네요. 못 먹고 사는 것도 아닌데 쌈짓돈까지 탈탈 털어야 할 모양입니다.

김포공항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코끝에 전해지는 한국 냄새가 좋았습니다. 올 수 없으니 더 그리웠습니다. 저 역시 한국에 있는 한 달 동안 저만의 계획표가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었죠. 설레는 마음으로 김포공항을 나섰던 순간이 제일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기한이 지난 은행카드를 살리는 일부터 시작해서, 3년 동안 하지 못한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하고, 아이들 학원 등록, 병원 투어, 친정과 시댁의 잔심부름, 시댁 식구들과 여름휴가를 다녀오니 출국 날짜가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즐거웠던 일도 많았는데, 30일이 왜 이렇게 힘이 들고 숨이 찰까요? 3년 만에 온 한국이라 해야 할 일들도 많고 익숙하지 않은 일들도 많아서였을까요? 사실 한국에 와서 제일 많이 했던 말이 ‘아, 집에 가고 싶다’였습니다. 서울 시댁에 머물면서 제 살림이 아니니 선뜻 손이 가지 않았고, 어머님이 해주시는 밥을 그냥 받아먹는 것도 마음이 불편하고, 또 저희 집이 아니니 생활하는 모든 것들이 불편했습니다. 잘 먹어야 한다는 신념이 강하신 어머니 덕분에 전 한달 내내 배가 불렀습니다. 아이들이 잘 먹으면 계속 만들어 주시고 사주시는 바람에 남긴 음식들은 제 차지가 되었습니다. 남기면 속상해 하실까봐 제 배에 넣다 보니 한 달간 소화불량과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 좀 했습니다. 제 몸에서 갖가지 과일들이 열리는 꿈도 여러 번 꿨습니다. 바보 같아 보일 순 있지만 이것저것 다 해주고 싶어하시는 어머니를 속상하게 해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또, 은행카드 재발급도 절차가 복잡해져서 설명하고 처리하는 데 2시간 여가 소요되니 진이 빠집니다. 해외에 살면 대부분 부부 한 사람 카드로 지출을 하는데 남편 은행카드를 사용하다 보니 제 카드엔 거래내역이 없어서 재발급 받기가 어려웠습니다. 은행일뿐만 아니라 관공서 일을 처리하자면 하나부터 열까지 물어보면서 해야 하니까 빨리 지치기도 합니다. 외국에서 살아서 서툴다고 일일이 설명하기도 애매하고 서툰 티는 내고 싶지 않고… 인터넷을 열심히 검색하고 와도 긴장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백화점이나 쇼핑몰 포인트 카드도 이제 다 앱으로 바뀌어서 “어머, 손님 앱 없으세요?”라는 말도 몇 번을 들었습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는 자연스럽게 주문하고 싶은데 왜 이렇게 버벅대는지 결국엔 직원의 추천메뉴를 먹게 되었습니다. 3년 동안 크게 변한 건 없는 것 같은데 세세하게 들어가니 변화된 것이 많습니다. 제가 너무 중국 생활에 익숙해져서 어렵게 느끼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머릿속에 가득했던 제 계획표는 계획으로만 남겨두고 오고 싶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참 편하고 좋습니다. 제 손때가 묻은 살림들, 늘 거닐던 익숙한 거리, 익숙한 장소, 익숙한 사람들, 마음이 편해집니다. 중국에 돌아와서 좋은 게 아니라 집에 와서 좋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익숙함이 좋습니다. 누군가는 ‘중국 사람 다 됐네’ 하겠지만 한국 사람이 어떻게 중국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자연환경, 병원, 문화생활, 관공서 시스템, 백화점, 쇼핑몰 등 모든 환경이 이곳보다 훨씬 좋은 것도 알고, 무엇보다 한국말로 얘기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 한국 사람으로 사는 것이 제일 좋죠. 다만 18년을 이 곳에서 살다 보니 익숙함이 습관처럼 몸에 배어서 다른 곳에 가면 뭔가 불편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여행 가서 잠자리가 불편하듯 나이가 드니 익숙하지 않으면 불편해집니다. 한국은 늘 그리운데,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것들이 나를 불편하게 할까봐 지레 겁을 먹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엔 한국 가는 것이 마냥 좋고 즐거운 일이였는데 지금의 마음은 나이가 들어서라고 그렇게 설명하고 싶네요.

집에 오니까 정말 좋습니다….

최희정 재외한국학교 글로내컬 학부모 리포터 2기(소주한국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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