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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교 교원이야기

   >  첫 해외살이가 이곳이어서 다행이야.

첫 해외살이가 이곳이어서 다행이야.

“세상이 그렇게 넓다는데 제가 한 번 가보죠.”

중국의 한 교사가 세상을 향해 한 선전포고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가슴이 쿵쾅대며 나도 그녀처럼 넓은 세상에 나아가 새로운 걸 경험하고 싶은 꿈이 생겼다. 하지만 첫 교직 생활을 하며 당장 눈앞에 놓인 과제들을 해결하는 것도 벅차다고 느꼈고 그 꿈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그렇게 자신을 합리화하던 중, 선배 교사로부터 재외한국학교를 소개받았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뿐더러 전국 곳곳에 계신 열정 가득한 선생님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동료 교사로서 좋은 자극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용기를 내 지원했고 운이 좋게 칭다오청운한국학교에서 꿈을 펼칠 기회를 얻었다.

백 번 보고 듣는 것보다 한 번 경험해보는 게 더 낫다는 말처럼 실제로 겪어본 해외 생활은 상상한 것과는 정말 달랐다. 급하게 준비하느라 현지 언어 공부를 많이 해 오지 못했기 때문에 읽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삼중고가 일단 첫 번째 문제였다. 해외에서 영어로 소통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항공사 승무원마저 영어를 잘 쓰지 않는 것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팅부동’, 알아들을 수 없다는 말뿐. 일주일만에 핸드폰에는 번역 애플리케이션을 돌리기 위한 캡처 화면 수백 장이 쌓였고 울려오는 전화기는 공포 그 자체였다.

하지만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지 어쩌겠는가? 한글보다 중국어가 더 익숙한 우리 반 꼬마 선생님들에게 의지하며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지금은 혼자서 중국 여행도 다니게 되었으니 이 영광을 나에게 유일하게 잔소리할 기회에 신이 나서 스스로 단어장을 만들고 조금이라도 뭉그적대면 불호령을 내리던 호랑이 선생님들에게 바친다. 멀리서 온 낯선 선생님에게도 금방 어여쁜 마음을 나눠주는 학생들은 내가 중국에서 발견한 보물이다.

중국 생활의 두 번째 문제는 한국과는 다른 여러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그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었다. 되는 것도 없지만 안 되는 것도 없다는 모순적인 말이 어울리는 나라이다. 일단 물건 구매, 대중교통 탑승, 본인인증 등 모든 게 QR코드 인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핸드폰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반대로 핸드폰이 없다면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나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처음에 위챗, 타오바오 등 중국 생활 필수 앱이 전부 막혀 꽤 고생했다. 하지만 어찌어찌 풀려서 지금은 그때의 고생이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정보화의 달콤함을 만끽 중이다.

또한, 이곳에 살기로 했다면 예민함은 조금 내려놓고 관대함을 가지는 것을 추천한다. 노동절 연휴 기간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던 지하철 속, 내리기도 전에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결국 내가 원하는 곳에 내리지 못한 적이 있다. 확 짜증이 밀려왔는데 그 순간 나랑 같이 내리지 못한 수많은 사람이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소리를 듣고 있으니 나 또한 이 일이 아무 일도 아니게 느껴지고 왠지 이 분위기가 정겨워 덩달아 웃음이 났다. 이처럼 나만의 잣대로 상황을 판단하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하는 마음가짐만 갖는다면 중국어 주소를 잘 말하지 못하는 나를 기꺼이 기다려주는 택시기사, ‘니하오’ 한마디만 해도 중국어를 잘한다며 환영의 의미로 선물을 주는 큰 형님들이 당신을 맞이할 것이다.

내 세 번째 문제는 재외학교만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해외에서 교사로서의 소명을 어떻게 다할 것이냐에 대한 것이었다. 한국과는 학교 상황, 수업 운영, 업무 방향 등 많은 부분이 달랐다. 안 그래도 해외 생활 적응이 쉽지 않은데 하는 일도 익숙하지 않으니 눈앞이 캄캄했다. 이 모든 고민을 해결해준 것은 다름 아닌 학교였다. 먼저 학년과 업무를 고려해서 배치해 새로 온 교사도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게끔 도와주셨다. 또한, 멘토 교사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좋은 집 구하기, 학교생활 안내 등 유용한 팁을 전수해주었다. 해외에서 만나서 그런지 더 운명적으로 느껴지는 우리 학생들과 학교 일을 본인의 일처럼 생각하고 두 팔 걷어 도와주시는 학부모님들도 큰 힘이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느낀 이런 감정들은 한국에 남아있었다면 절대로 느끼지 못했을 것들이다. 누구보다 서툴고 불안했던 내가 받은 크고 작은 배려들을 잊지 않고,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돌려줄 수 있기를, 그렇게 떳떳하게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금요병을 만드는 무서운 단어장

많은 걸 배운 그 날의 인파

학교(구 건물)에서 즐겁게 수업하는 아이들. 이제 새로운 곳으로 가자!

김민지 재외한국학교 글로내컬 교사 리포터 2기(칭다오청운한국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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