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 모든 것이 신기하고 흥미로웠던 시선이 편안하게 안착한 문구가 있었다.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되자”, 바로 상해한국학교 교정 비석에 크게 새겨진 문구였다. 한국의 많은 학교의 교정에서도 볼 수 있는 문구였는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오고 가는 곳에서 읽을 수 있는 글을 보아서 그런지 강렬하고 인상 깊었다. 그렇게 한국학교에서의 교직 생활이 시작되었다. 2년 정도로 마칠 것이라 생각했던 상해한국학교 영어교사로서의 정체성은 6년째에 다다랐다. 만기를 채우고 있다.
연장의 이유는 무엇보다 아이들이었다. 굉장했다. 학업 수준이야 모두 다르지만, 삶에 대한 애정은 모두 컸다. 자기의 삶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이 컸다. 그 태도는 학교생활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의욕적이었고 적극적이었다. 수업 시간이나 행사에서 역량을 키우고 발휘하는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다. 판을 깔아주면 그 안에서 상상 이상으로 해내는 모습에 자주 감격했다. 그래서 나는 종종 카메라를 켰다. 아름다운 모습을 남겨주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나보다. 그래서 학교생활, 아니 직장생활이 참 즐거웠다. 진심으로 학교를 다녔다. 재밌어서.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들에게 어떤 것이 필요할까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먼저, 매력적인 도시 상해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이 이 도시와 더 가까워지고, 한인타운 외에 다양한 도시의 것을 누리며 세상에 대한 안목을 키우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그것이 진정한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아닐까. 보통 재외학교 특성상 역사나 전통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지는데, 그에 못지않게 지역사회와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것들은 체득되어야 하는 것이라 독서나 학습에는 한계가 있었다. 밖으로 나가야 했다. 뭐든 직접 머리와 몸을 써서 움직여야 했고 보아야 했다. 이런 고민들이 수업에서는 프로젝트 수행평가로, 행사에서는 직접 고민하고 설계하여 실행하는 형태로 이어졌다.
수업에서는 프로젝트 수행평가를 설계하였다. 영어가 도구과목이어서 참 다행이었다. 뭐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어를 사용하면 된다. 마침 상해에 대한 영어 자료는 상당히 많았다. 상해에 대한 영어 자료를 읽고, 표현을 정리하고, 주제를 선정하여 주제에 맞는 반나절 여행 코스를 짠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방문해서 영어 인터뷰를 진행한다. 다녀와서는 방문한 곳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발표한다. ‘어린 시절’, ‘기술’, ‘음식’ 등으로 주제를 선정한 아이들은 정말 멋진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물론 안전사고가 나지 않도록 교육했지만, 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평가 기준을 촘촘히 두어 점수의 차등은 있었지만 직접 친구들과 함께 낯선 곳을 다니며 생존력을 키웠다는 것 자체가 모두 만점이었다. 중학생에게는 개별적으로 부모님과 외국어 서점과 조사한 곳을 함께 방문하도록 했는데, 과제를 핑계로 주말에 가족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사심도 있었다. 평가자도 수행자도 피곤한 수행이지만, 아이들에게 학교가 삶과 연결되어 지역사회로, 더 넓은 범위의 어떤 것으로 이어졌다면, 그것으로 참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교실 안에서의 학습은 기본이다. 원서 읽기, 문장 읽기, 작가 소개하기 등.
행사에서는 기존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발자취 행사를 100일간의 프로젝트로 만들어 깊이 고민하고, 당시의 국제 정세에 관한 상해의 명소도 찾아보고 답사하도록 했다. 세계시민의 날에서는 학급이나 동아리, 수업 등의 단위에서 주제를 선정해 부스를 만들어 세계시민 의식을 알릴 수 있도록 했다. 세계시민 프로그램에서는 분야별 전문가 선생님들과 함께 주제별로 문제를 찾고 해결책을 조사하고 활동을 하였는데,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모둠별로 실제로 행동하도록 했다. ‘의류 폐기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방법’, ‘인권 캠페인’, ‘초등학생을 위한 다양성 동화책 만들기’, ‘지역사회 박물관 우리말 오디오북 만들기’, ‘바자회 버리지마켓’ 등 아이들의 활약이 대단했다. 상해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있었고 아이들을 믿는 만큼 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뜻을 같이한 동료 선생님들이 계신 덕에 가능했다. 실수나 문제도 있었지만, 판을 벌리면 응원하고 지지해주고 믿어주고 함께 해주는 마음이 모여 아이들을 위한 고민이 학교 교육과정으로 실현될 수 있었다.
마지막 학기를 시작하였다. 차분히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고3이라는 말보다 12학년이라는 단어가 더 편해진 나는 치열한 봄과 여름을 보낸 12학년 아이들이 원하는 곳에 합격하는 가을을 바라고 있다. 10, 11학년 아이들이 자신의 역량을 맘껏 발휘하는 시간이길 바라고 있다. 7, 8, 9학년 아이들이 자신의 색깔을 찾으며 타인과 함께 하는 방법을 체득하는 학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 아이들의 삶이기도 하고, 나와 사랑하는 동료들의 삶이기도 한 이 학교가 더 좋은 곳이 되길 바라고 있다. 이 바람은 상해한국학교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바람이기도 할 것이다. 그 바람을 따라 약 1,000개의 삶이 모여 있는 이곳은 더 좋은 곳으로 갈 것이라 믿는다.
조민영 상해한국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