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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고만녜와 윤동주를 만나다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수도인 연길에서 나고 자란 우리 1학년들. 갓 초등학교에 입학해 자음자와 모음자를 익히고 우리 학교와 우리 동네를 둘러보는 것이 주된 학습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 학교 운동장에는 윤동주의 시비가 3개나 서 있고, 이곳은 중국임에도 한국어(연변어) 소통이 가능하고 한글 간판이 붙어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풍부한 역사성을 지닌 이곳의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어떻게 쉽게 들려줄까 고민하게 되었다.

고만녜를 만나다
1학년에게 역사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같은 이야기는 너무 어렵다. 그래서 찾은 것이 《고만녜, 백 년 전 북간도 이야기》라는 그림책이다. 이 책은 1899년, 11명의 대가족이 고향 함경북도 회령을 떠나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연변, 용정 명동촌에 정착한 이야기로, 우리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의 말괄량이 여자아이 고만녜가 주인공이다. 겨울이 너무 추워 오줌을 누면 그대로 얼어 오줌 기둥이 된다는 이야기, 여자아이들은 이름을 아무렇게나 지어주고(딸은 이제 ‘고만’ 낳자는 의미로 ‘고만녜’) 학교도 보내지 않았다는 이야기, 한글책이 너무 읽고 싶어 막내 동생에게 몰래 한글을 배웠다는 이야기들은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거기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우리 아이들이 깜짝 놀랄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연변지역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윤동주를 만나다
어른들에게 윤동주의 ‘서시’는 너무 좋지만 1학년에게는 너무 어렵다. 우리 1학년 아이들에게도 ‘우리고장 시인’ 윤동주를 소개할 좋은 방법은 없을까 늘 고민하던 중 “윤동주 동시도 얼마나 좋은데요!”라는 도서 담당 선생님 말씀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윤동주는 독립운동가, 민족시인이기 이전에 초등학생 때부터 시를 써온 탁월한 동시 시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더구나 그의 동시들은 1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그 어떤 시보다 쉽고 운율감이 살아있다.
먼저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제작한 만화영상 ‘하늘의 별이 된 시인 윤동주’를 보고 그의 생애를 간략히 소개한 다음, 윤동주 시인의 동시로 만든 노래, 동시 낭송 영상을 함께 보고 공감 이야기를 나눈다. 그중 1학년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개’, ‘나무’, ‘무얼 먹고 사나’ 3편을 골라 《윤동주 동시 컬러링북》으로 만든 학습지에 시를 정성스럽게 쓰고 색칠한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자신이 고른 시를 실감나게 읽어주고, 이 시를 고른 이유와 자신의 느낌도 함께 발표하도록 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모습을 몸으로 나타내기도 하고 눈 위에 찍힌 개 발자국을 칠판에 그려보는 등 역시, 윤동주 시에는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는 생명력이 있음을 새삼 느꼈다.

그 빛을 따라
《고만녜, 백 년 전 북간도 이야기》의 최대 반전과 감동은 '문영미'라는 저자의 이름 속에 있다. 이 책의 주인공 고만녜, 김신묵 할머니는 실존인물로 이후, 야학을 열고, 독립선언 시위에 참여하고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양심수 석방을 외치며 거리에 나서는 '빛나는' 여성이 된다. 무엇보다 그녀는, 윤동주의 절친이자 의로운 종교인의 표상 문익환, 문동환 목사의 어머니이며 이 그림책의 저자, 문영미의 친할머니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성경과 신문을 노래 부르듯 흥얼흥얼 매일 정성스럽게 읽던 할머니를 보고 자란 작가가 할머니의 북간도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이렇게 깊은 감동의 빛을 세상에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1학년 아이들과 나는 이 책이 전하는 빛을 따라 100여 년 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살았던 북간도 이주민들의 생활모습과 윤동주의 아름다운 동시들을 함께 배운다. 이번 가을에는 우리 학교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생가로 현장체험학습을 다녀올 계획이다.

윤동주 시인의 생가 마당에 전시되어 있는 어여쁜 동시들

시인의 집 내부, <고만녜> 에서 소개한 대로 너무 추워서 소와 닭도 실내에서 키우는 북간도의 집

* 수업도움자료

《고만녜, 백 년 전 북간도 이야기》, 문영미, 보림출판사, 2012.
《윤동주 동시 컬러링북》, 루인 그림, 모악, 2021.

남혜진 연변한국국제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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