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학교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비록 초등학교 첫 2년은 작은 규모의 재외한국학교에 다녔지만, 내 유년 시절의 기억이 어른거리는 첫머리는 항상 중국 로컬 학교에서 시작한다. 로컬 학교에서 함께 했던 한국인 아이들이 그리 모범적인 편은 아니어서였을까, 막연하게 ‘한국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일반화를 하고 있었다. 내가 한국인을 불편하게 대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재외 학교에 가지 않을래?’ 등의 주제가 나올 때마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빠져나가기 바빴고,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가 재외한국학교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는 말이다.
여느 학생이 그렇듯 이제 정말로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부터 엄마는 내게 의대를 권했지만, 사실 생명 혹은 세상의 법칙, 물리 같은 것들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게 사실이었고, 그보다는 차라리 역사서를 읽는 것이 더 흥미로웠다. 그러다 문득, 아무런 계기도 없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궁금해졌다.
재외한국학교에 들어가기로 한 것은 꽤 충동적이었다. 졸업 후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아무래도 한국인이니 한국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 그리고 무엇보다 단순히 그동안 피해 왔던 ‘대한민국’, 그리고 ‘한국인’이란 존재에 대해 흥미를 느낀 것. 그런 불명확한 것들이 나를 재외한국학교, 내가 지금 다니는 천진한국국제학교로 이끌었다.
착하다. 이곳의 아이들을 처음 봤을 때 들었던 생각이었다. 한국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해서, 현지의 아이들이 마냥 고향 친구처럼 편한 것도 아니었다. 로컬 학교에 다니다 보면 항상 물 속의 기름 한 방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고, 항상 그 아이들과는 다른 위치에 서서 학교생활을 수행하는 느낌이었다. 그건 아마 내가 그들 입장에선 ‘외국인’이어서였을 수도 있고, 단순히 나 스스로가 그다지 주변과 잘 융화되는 성격이 아니어서였을 수도 있다. 다만 천진한국국제학교에서 내가 이전 학교에서 겉돌았던 이유에 대한 핑계들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는 것만은 알 수 있다. 이곳의 아이들과 나는 ‘외국인’의 관계도 아니었고, 내 내성적인 성격이 무색할 만큼 천진한국국제학교의 학생들은 친절하고 구김 없이 나에게 다가왔다. 또래 친구들의 호의, 흥미 어린 시선, 관심은 퍽 새로웠고 기분 좋았다.
당연하게도, 천진한국국제학교는 이전에 다녔던 학교에 비하면 그다지 큰 편에 속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숨길 수 없는 자신감, 힘, 포용력, 배려와 이해는 오히려 작은 규모의 학교에서 더욱 극대화되고 최강의 효과를 불러온다. 무엇보다도 천진한국국제학교만의 가장 큰 장점이 있다면, 앞서 언급한 모든 것들을 갖추고도 학생들에게 제집 같은 아늑함과 따스함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천진한국국제학교 건물은 오랜 세월 학생들을 품어온 만큼 낡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 기반이 튼튼해 아직 건실하게 제 임무를 수행해 나가고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천진한국국제학교는 낡았지만, 허름하다기보다도 정감 있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이 학교에 와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드라마 같은 곳에서 보아왔던 것처럼 선후배 간 위계질서가 딱딱하고 엄격하지 않은, 서로가 고향 친구처럼 친근한 형제, 자매, 남매처럼 지낸다는 사실이다. 로컬 학교에 다녔을 땐 그 수가 적음에도 그 학교에 다니는 한국인들 간의 위계질서가 엄밀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나는 그것이 불편해 더욱 한국 학생들 간의 교류를 꺼려했다. 이후 천진한국국제학교에 와서는 그게 불가피한 일이라 생각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등교한 것이 무색하게, 이곳의 선후배들은 상당히 거리낌 없이 서로에게 다가가고, 대화했다.
칼로 자른 듯 갈라지는 선후배 사이의 관계, 호칭, 대화법 등은 아마 대다수 재외 학생들이 한국의 삶에 적응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에 내가 사는 중국만 해도 이렇다 할 존칭이나 존대가 없는 언어이고, 영어는 더욱더 그렇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천진한국국제학교의 자유롭고 가족 같은 분위기가 불쾌하다기보단 편안하게 다가왔다.
재외 학교에서 살아간다는 건 당연히 한국학교의 생활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로컬 학교와는 더더욱 다르지만, 나는 천진한국국제학교에 온 지 반년도 채 안 돼서 이 학교의 문화와 분위기에 완전히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엔 유쾌한 친구들, 유능하신 선생님과 다정한 선후배들의 덕이 컸고, 항상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학교생활에 성실히 임하고 있다.
어느덧 이 학교에 온 지도 벌써 3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 와중에 기쁘고 슬픈 일, 화나고 짜증 나는 일 등 지금의 나를 구성하게 된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기에, 나는 천진한국국제학교에 왔다는 사실이 나에게 있어 더없는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졸업하는 그 날까지 천진한국국제학교가 나의 꿈을 키워가는 소중한 터전이 되고, 졸업 이후에도 내 청소년기의 추억을 담는 아름다운 그릇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김수영 천진한국국제학교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