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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불기(君子不器),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을 기르는 도덕수업

1. 도무지, 도덕
금요일 마지막 교시, 도덕 시간. 수업이 시작되기도 전인데, 학업에 지친 학생들이 책상에 널부러져 있다. 아아, 이런 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수업을 시작해야 할까? 학교에서 도덕 교과의 위치는 애매하다. 중고등 6년을 통틀어 중학교 2학년에서만 매주 2시간씩 배우고 끝나는 데다, 재중한국학교 교육과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어나 중국어, 중요 교과인 국어와 수학, 과학 등에 비하면 입시에 별 영향력 없는 변방 교과목이면서도, 체육이나 미술처럼 그 시간에 즐겁게 활동하는 예체능교과가 아니다. 부담스럽게 지필평가까지 봐야 한다. 또 내용은 어찌나 어려운지 교과서를 이해하기조차 쉽지 않다. ‘사람됨’에 관한 과제라도 낼라치면 ‘아이, 선생님 제발요~’ 우는 소리부터 나온다. 영어, 중국어 단어 시험에 과학 수행발표, 교내 UCC 대회까지 겹쳐 도무지 도덕 과제를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이미 공부할 교과도 넘치는데 왜 이런 교과를 추가로 또 배워야 하는 것일까? 시험에 나오는 지식이나 유용한 기능도 아닌, 인성이나 예의, 사람됨의 도리 등을 가르친다고 배울 수 있기나 한 걸까?

2. 아이히만과 권위에의 복종 실험
도덕 첫 단원, 도덕은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를 배운다. 먼저, EBS 지식채널e, ‘그가 유죄인 이유’ 영상을 보여주며 60년 전,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아이히만의 재판 이야기를 들려준다.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 혐의로 전범재판에 회부된 전 나치스 친위대 중령 아이히만. 사실 그는 악마도 사이코패스도 아니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자신과 가족의 안일을 위해, 시대의 주입된 가치관을 성실히 실천했던, 그저 평범하고 얕은 아저씨였다. 그는 군인으로 상부의 명령을 충실히 따랐을 뿐, 자신은 죄가 없으며 월급을 받으면서도 주어진 일(유대인을 학살하기 위해 운송하는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오히려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라며 자신을 변호했다. 그는 정말 죄가 없을까? 아이들에게 묻는다. 이와 연관지어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의 복종 실험도 소개한다. 4.5달러를 받고 다른 사람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는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 한 문제를 틀릴 때마다 타인에게 가하는 전기충격의 세기가 점차 올라가는데, 상대방이 고통스러워하거나 기절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최고 단계인 450v의 버튼을 누른 사람은 무려 전체 실험참가자의 65%에 이른다. 어차피 누가 시킨 것이며 내 책임이 아니라고 자신을 합리화하며 저지른 일들이다. 다시, EBS 지식채널e‘버튼을 누르지 않은 이유’를 보여주며 붉은 털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비슷한 실험도 소개한다. 버튼을 누르면 내 먹이가 나온다. 대신 유리 너머에 있는 다른 붉은 털 원숭이에게 전기충격이 가해진다. 붉은 털 원숭이는 버튼을 눌렀을까? 붉은 털 원숭이는 15일 동안 버튼을 누르지 않았고 15일 동안 먹이를 먹지 못했다고 한다. 사람은 눌렀는데, 왜 붉은 털 원숭이는 누르지 않았을까? 설마 사람이 동물보다 더 잔인하단 말인가. 그 결정적 차이를 같이 고민해보기 위해‘인간은 동물보다 도덕적인가?’라는 생각하기 과제를 내준다.

3. 생각 노트 쓰기와 포스트잇 반론 쓰기
친구가 써 온 글을 듣고 그에 대한 반론이나 의문 등을 포스트잇에 적어 함께 나눈다.

인간은 동물보다 더 도덕적이다. 첫째,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따른 책임을 지지만 동물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도덕 교과서에 ‘도덕적인 삶이란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 옳은 행동을 실천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삶’이라고 나와 있다. … 둘째, 인간이 도덕적이지 않다면 이미 멸종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날 인간이 동물을 지배하게 된 것이 영리함이나 손 사용능력보다 도덕을 바탕으로 서로 협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도덕적이지 않았더라면 서로간의 관계보다 자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사회를 이루지 못하고 각자 살게 되어 결국 맹수들에게 멸종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도덕성이 가장 높은 동물(인간 포함)이 지구를 지배하는 것이니 인간이 가장 도덕적이다. 셋째, 인간은 도덕적이기 위해 도덕을 만들었다. … -김○○

⇧ 네 발표를 들으니 인간은 동물보다 더 도덕적이지 않다고 한 내 의견이 좀 흔들리는 것 같아☺ -유○

⇧ 도덕적이기 위해 도덕을 만든게 아니라 도덕을 하도 안 지키니까 도덕이란 걸 만든 거임. -민○

⇧ 1차 세계 대전 때 10만명 정도 죽었고 2차 세계 대전 때는 30만 명 정도 죽었다. 사자는 1대 1로 싸워 1명만 죽일 뿐이지만 인간은 탐욕 때문에 무수한 사람을 한꺼번에 죽인다. 인간은 쓰레기... -조○

인간은 동물보다 더 도덕적이지 않다. 첫째, 인간과는 달리 동물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배부른 사자는 동물을 더 잡아먹지 않는다. … 둘째, 동물들은 인간처럼 배신하지 않는다. … 셋째, 동물은 비도덕적인 일에 복종하지 않는다.…전쟁이 나기 전에는 평범했던 많은 사람들이 상관들의 비도덕적인 명령에 복종했다.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의 복종 실험’에서도 65%의 사람들이 가장 높은 단계인 450V의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원숭이는 15일 동안이나 먹이를 먹지 못했어도 친구에게 전기충격을 가하지 않았다. 자신이 굶어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친구에게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배려와 존중심을 보여 준 것이다. … -최○○

⇧ 3가지 근거에 알맞는 이유와 실험 결과를 잘 쓴 것 같아. 절제, 배려, 충성, 인내 등 여러 가지 도덕의 예를 잘 들어 발표했어. -혜○

⇧ 나랑 다르게 생각했던, 내가 생각해 보지 못한 근거들까지 알 수 있어서 좋았엉.☺ 아침까지 했다는데 진짜 그 정도로 열심히 조사한 것 같넹♡ -지○

⇧ 3번째 이유에서 인간에게 실험했을 때에는 옆에 압박을 주는 사람이 있었지만 원숭이에게 실험할 때에는 압박을 주는 것이 먹이였기에 같은 실험조건이 아니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는 것이다. -찬○

⇦ 재반론 : 권위의 압박보다 생존의 압박이 더 강하기 때문에 원숭이가 사람보다 더 큰 유혹을 이겨낸 것이다. -민○

4. 미디어 문해력(Media Literacy) 기르기
뉴스, 광고, 영화, 드라마 등 실제 미디어 자료들을 활용해 어려운 도덕적 개념을 쉽게 이해하고, 정보의 참과 거짓, 맥락과 의도를 파악하는 등 실제 문제에 관한 도덕적 사고를 연습해 본다.

활동자료 주제 주요학습 내용
중국드라마 <燕云台>,27회 폭력의 비도덕성 • 사적복수, 폭력의 악순환
Dove Real Beauty Sketches for Women 정보화시대 도덕 • 사실과 의견, 정보의 참과 거짓 구분하기
• 광고의 의도 파악하기
당신이 혹하는 사이에, ‘코로나19 배후에는 빌게이츠가 있다’ 미디어 문해력 • 가짜뉴스 구분하고 그 의도 파악하기
Dove Real Beauty Sketches for Men, Parody by Cladwell 성의 도덕적 의미 • 남자 뇌 vs 여자 뇌
중앙일보인터넷 기사, ‘중국배우 장솽 대리모 반품 논란’ 정의 • 공리주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vs 칸트 도덕적 절대주의

5. 군자불기(君子不器)
이러한 활동을 하고 난 후, 다시 원래의 질문,‘도덕은 무엇이고 왜 필요한가’로 돌아와 함께 생각해본다. 학교 시험지를 빼내 자녀들에게 정답을 외우게 한 숙명여고 교무부장처럼 부모여도 내게 잘못된 것을 강요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들을 설득해 학도병으로 내보낸 친일교사들처럼 선생님이어도 학생을 죽음과 치욕의 길로 내몰수 있다. 매달 내게 월급을 주는 사장님이어도 비자금을 만들고 탈세를 지시하여 나를 반사회적 인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도덕을 배운다고, 다른 사람의 목적 실현을 위한 도구가 되지 않기 위해, 안중근 의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 아이히만 같은 사람은 되지 않기 위해, 사랑이나 권위, 안전, 유행, 부와 행복 그 어떤 그럴듯한 말에도 현혹되지 않고, 나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책임지는,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도덕을 배운다는 점을 학생들에게 강조한다.“얘들아, 1년 동안 졸음 참으면서 도덕 공부하느라 수고 많았어. 마지막으로 공자의 이 말만은 꼭 기억하자! 군자불기(君子不器), 군자는 쓰임이 고정된 그릇이 아니다. 군자와 같은 사람인 나 역시, 그릇이 아니다, 물건이나 수단이 아니다. 아이히만처럼,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하는 그릇이 되지 말고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나 자신의 목적이 되자! 알겠지?”

남혜진 연변한국국제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