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교육기관포털 온라인소식지 Vol.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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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교 학생 이야기

칼럼·에세이
12년의 인연과 이별의 맞이

이지연 상해한국학교 학생
글로내컬 리포터 4기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초등학교 1학년, 아무것도 모르는 꼬꼬마가, 이제는 의젓해졌다고, 이제는 어린이가 아니라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라고, 저 몸통만 한 핑크색 책가방을 매고 제일 좋아하는 망사 스커트를 입고 등굣길을 나서는 그날이.

소스라치게도 나는 이 학교-상해한국학교-를 다닌 지 벌써 12년 차다. 어느새 나는 소위 말하는 학교 ‘일짱’이 되었고, 선배가 없어 무서울 게 없는 학년이 되었다. 1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체감은 마치 12개월을 보낸 것처럼 짧기만 하다. 4,383일이 이렇게 순식간에 흘러갔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구구단을 더 잘 외운다고 서로 자랑하며 순수하게 뛰놀던 초등학생 시절,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에서 친구들과 밤새 통화하며 놀던 중학생 시절, 그리고 입시에 모든 것을 쏟아내며 몸과 마음이 시들어갔던 고등학생 시절까지. 돌아보면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시절이 모두 나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반년도 채 남지 않은 시간 속에서, 가족 같은 내 학교와 이별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한중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나는,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신생아 때부터 남달랐던 울음소리로 세상을 맞이했다. 기억조차 없는 아기 시절을 베이징에서 보낸 뒤, 3살 때 지금 내가 현재 살고 있는 도시, 상하이로 이사 오게 되었다. 나는 한국 유치원을 다녔고, 졸업반 언니, 오빠들 대부분 그랬듯, 유치원을 다닌 친구들과 함께 상해한국학교로 입학했다. 엄마의 따뜻한 손을 잡고 처음 들어간 학교는 거대했고, 마치 하나의 테마파크 같았다. 나는 괜히 사명감 같은 것이 생겨, 평소보다 더 과장되게 어깨를 폈고, 패션쇼에서 워킹하는 모델처럼 발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누구보다 당당했던 자세와 달리, 눈빛만큼은 조금 겁에 질려 있었다. 그렇게 입학식을 마치고 교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고, 그 순간이 어느덧 12년이 되었다.

상해한국학교와 보낸 시간만큼 이 학교에서 12년 동안 배운 것은 정말 풍부하다. 그중에서도 성인을 앞둔 18살의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이 있다면, 바로 학기마다 치렀던 시험을 통해 얻은 배움일 것이다.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교무실 앞에는 “들어오면 시험 문제 어려워짐.” 같은 선생님들께서 준비한 교무실 출입 금지 포스터가 붙고, 우리는 자연스레 “아, 시험은 왜 보는 거야...” 같은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시험의 표면적 목적은 학습한 개념의 이해도를 점검하는 데 있다. 그러나 상당수 친구는 어른이 되면 활용하지 않을 지식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시험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렇지만 나는 시험을 통해 오히려 매우 가치 있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바로 내 잠재력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시험을 준비하는 기간은 길게는 4주, 짧게는 20일 정도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오로지 시험 준비에만 몰두한다. 평소에 좋아하던 것들을 잠시 멀리하고, 몸이 피곤해도 오늘 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잠을 줄인다. 이 경험은 수학 공식을 외우는 것보다 훨씬 큰 가치를 남겼다. 시험 기간은 내가 어려움이 닥쳤을 때도 끝까지 버텨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었고, 또 다른 고난이 찾아올 때 이를 해결하고 견뎌낼 힘을 길러주었다. 이 깨달음은 고등학생인 지금뿐 아니라, 곧 대학생이 될 나에게, 더 나아가 성인이 될 나에게도 이어질 것이다. 앞으로 어떤 어려운 상황이 오더라도,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차분하게 문제를 풀어갈지에 대한 지혜를 시험이 가르쳐준 셈이다.

그 과정에서 나에게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준 세 분의 선생님, 중학교 철학 선생님, 10학년 영어 선생님, 그리고 11학년 담임 선생님께 꼭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분들의 지지와 조언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중학교 철학 선생님께서는 놀기만 좋아하던 나에게 “아무리 노는 게 좋더라도, 학생일 때는 공부도 꼭 해야 한다”라고 강조하셨다. 특히 학벌로 인해 얕보이는 굴욕은 절대 겪지 말라고 하시며, 가장 가성비 있게 노력할 수 있는 시기인 학생 때 최선을 다해 최고를 달성하라고 일깨워주셨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이, 인생에서 공부에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닐까? 학생이라면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10학년 영어 선생님께서는 고등학생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서두르지 말고,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조언해 주셨다. 그 당시 나는 어떤 일이든 의욕이 넘쳐 학교 활동이면 모두 참여하고, 10만 하면 되는 일도 15, 20까지 과하게 만들어버리곤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영어 선생님은 입시는 마라톤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깨달았다.
지금 이렇게 불꽃처럼 타올라도 이게 불꽃놀이처럼 잠깐 반짝이는 것이라면 결국 꺼지고 말겠다.
그 두려움이 나를 멈춰 세웠고, 그 순간부터 나는 나의 활동들을 돌아보며 안정적으로 오래 타오르는 장작불 같은 사람이 되기로 했다. 선생님의 조언은 내가 무리할 때는 속도를 늦추게 해주었고, 힘들 때는 잠시 쉬어가도 된다는 용기를 주었다.

마지막으로 11학년 담임 선생님은 나의 가장 어둡고 침전된 시기를 누구보다 따뜻하게 안아주신 분이다. 재외한국학교 특성상 우리는 11학년에 가장 큰 스퍼트를 내야 한다. 그 시기 나는 친구들과의 연락까지 모두 끊고 홀로 입시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가 극심해져 몸도 마음도 많이 무너졌고, 정신적으로도 혼미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럴 때마다 담임 선생님은 나를 붙잡아주셨고, 내 눈물을 받아주시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독여주셨다. 상담 시간이 되면 자리에 앉자마자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터지곤 했다. 그때 선생님이 해주신 말 중 가장 큰 위로가 된 문장은 바로 이것이었다. “잘하고 있어. 걱정하지 마. 너라서 할 수 있는 일을 네가 해내고 있어. 할 수 있어.” 고2의 방황 한가운데에서, 11학년 담임 선생님은 어떤 기둥보다도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 나를 지탱해 주었다.

이제는 그동안 손으로 쓰고 머리에 새겼던 지식들, 그리고 과분하게 받았던 응원과 사랑을 양분 삼아 도약할 때가 왔다. 상해한국학교는 단순히 무언가를 배우는 공간을 넘어, 내가 사람이 되는 법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깨닫게 해준 소중한 곳이다.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진심 어린 웃음을 터뜨려보기도 했고, 세상이 무너질 듯 울어보기도 했으며, 잠들기 전 이불을 걷어차게 될 만큼 얼굴이 화끈거렸던 순간들도 겪어왔다. 더불어, 사랑하는 선생님들, 함께 이 여정을 보내온 친구들, 그리고 내 꼬르륵거리는 배를 챙겨주신 영양사 선생님까지, 그분들은 청소년 시절의 나에게 잊지 못할 추억과 깊은 가르침을 남겨주었다. 이 모든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날아오르려는 출발점에서 든든한 날개가 되어주고 있다. 앞으로 몇 번의 희망과 절망을 마주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모든 길 위의 나에게 조용히 응원과 행운을 보낸다.

상해한국학교야 그동안 고마웠어.
더 멋진 모습이 되어, 또 보러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