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연 동경한국학교 교사
도쿄에 와서 만난 별이(가명)는 ‘해서 준다’와 비슷한 표현이 많이 들어간 글을 잘 써서 냅니다. 아마 일본어의 피역 또는 사역형의 글을 먼저 떠올리고 그다음에 한국어로 그 문장을 번역하듯이 글을 쓰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매번 끙끙거리며 적는 모습이 귀여운 별이를 보면서 이전에 한국의 학생들에게 우리나라 작가는 노벨문학상을 받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한국어는 그 특성상 번역이 어려운 부분이 너무 많고 그래서 그 맛깔난 표현을 살리지 못해서 좋은 작품이라도 한글 원문 소설만큼 좋은 평가를 얻어내기가 어렵다고 말입니다. ‘고이 접어 나빌레라’, ‘사뿐히 즈려밟고’,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이런 시들을 어떻게 번역할 수 있으며,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풀어서 얘기해 주면 아이들도 공감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런 한국어를 이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타국 땅에 살면서 모국어보다 외국어를 사용하는 편이 더 편한 생활을 하는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날은 올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학생들의 글을 수정하다 보니 이걸 틀렸다는 개념으로 생각하고 글들을 교정해 준다면 납득이 더 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사회는 그 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지금은 문법적으로 맞고 틀림의 문제보다는 한국에서는 이런 표현이 더 자연스럽다고 이야기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이게 번역투의 글이구나.”라고 했지만, 그동안 지도했던 한국의 아이들과 다른 아이들이라는 점을 새삼 체감하고 있습니다. 말속에 담긴 자연스러움이나 연결이 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고, 그건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럴 때면 아이들이 한국어만이 아니라 저의 과목을 통해서 ‘한국적인 감각’까지도 익힐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자리에 서 있다는 걸 다시 실감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끝난 시험 전 수업 중의 일입니다. 시험 진도까지 수업도 다 마치고 아이들의 질문을 받고 있던 중 대화는 자연스럽게 수다로 이어졌습니다. 시험을 앞두고 각오는 되었는지, 기대하는 점수는 얼마인지, 그리고 점수를 잘 받으면 뭔가 받고 싶은 것은 있는지 등을 즐겁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때는 다들 웃으며 시험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었는데, 시험 첫날이 지나고 별이가 모두가 간 교실 책상에 혼자 엎드려 있었습니다. 살짝 가서 시험 잘 봤냐고 물어보니 얼굴을 가린 채 대답이 없었습니다. 잘 못 봐서 그러냐고 물으니 잠시 뒤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당황스러웠습니다. 울고 있는 아이에게 저의 어쭙잖은 위로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열심히 했다고 어깨를 토닥여주고 교실을 빠져나오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노력한 대로 받을만한 점수를 받았을 텐데 열심히 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한국어의 ‘열심히’라는 단어는 참 야속한 단어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별이가 ‘열심히’ 공부한 한국어의 수준이 다른 누구에게는 ‘그냥’ 주어진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 아이들에게 ‘열심히 했다’라는 말은 얼마나 극심한 온도 차이를 보이는 단어일까요?
별이는 아마 ‘열심히’ 했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보기엔 중간에 집중력이 떨어져 노래도 흥얼거리고 몸도 꼼지락거리며 책상에 앉아 있었지만, 별이에게는 한국어란 외국어를 해독하며 앉아 있던 시간, 책을 붙들고 있던 시간, 펜을 쥐고 노트를 쓴 시간 모두 ‘열심히’란 느낌으로 마음속에 남아있을 겁니다.
서두에서 언급한 노벨문학상입니다만,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 표현이 어렵다는 한국어로 쓴 소설로 말입니다. 그때는 그냥 잘 되었다는 느낌이었는데 일본에 온 뒤 시간이 지날수록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 말이, 우리나라 역사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구나, 누군가에게는 영감이 되었구나 하고 의미를 곱씹는 중입니다. 그러니 우리 문학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듯,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우리 아이들도 익숙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른보다 더 적응이 빠르고 씩씩한 별이는 오늘도 자리에 앉아 문제집을 풀고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또 집중력이 떨어져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열심히’ 공부를 할 것입니다. 저는 ‘저 아이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거지.’ 하며 아이들의 글을 고치며 수업을 하고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