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희 센다이한국교육원 원장
‘폭싹 속았수다’라는 제주도 방언을 알고 계시나요? 일본 센다이에서 생활하면서 지상파 방송으로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기는 어렵지만, 오랜만에 넷플릭스를 통해 ‘수고하셨습니다(오츠카레사마)’를 보게 되면서 ‘폭싹 속았수다’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한국인이지만 제주도 방언은 쉽게 접하기 어려우니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속다’의 의미가 ‘고생하다’, ‘수고하다’의 의미로 쓰인다는 것을 장편 드라마에 흠뻑 빠져들면서 조금 이해가 되었다고 할까.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도 방언이다. ‘상당히 속았다’라는 뜻이다. ‘폭싹’은 ‘상당히’ 혹은 ‘아주’라는 의미로 감정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쓰는 표현이다. ‘속았수다’는 ‘속다’의 방언 형태로 과거의 경험이나 느낌을 전달해 준다. ‘폭싹 속았수다’는 누군가에게 큰 실망이나 허탈감을 느꼈던 경험이나 상황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방식이라고 한다. 『폭싹 속았수다』에서 가족으로 얽혀져 긴 시간을 함께 인내하고 살아내면서 쉽게 끄집어낼 수 없는 감정과 애틋함을 표현한 것이 제주도 방언 ‘폭싹 속았수다’이다.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는 2025년은 일본 땅에 살고 있는 재일교포들에게는 감회가 새롭다. 1945년 해방 이후 한・일 간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가슴을 졸이면서도 ‘나의 고향 대한민국’을 항상 마음에 품고 살아왔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K-Food’, ‘K-Pop’, ‘K-드라마’가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대한민국의 국력과 위상이 높아져 이제는 자부심을 갖고 ‘나의 고향 대한민국’을 말할 수 있게 되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2023년 2월에 센다이한국교육원 원장으로 부임하여 ‘한국어와 한국문화 전파를 통한 한일 교육 교류 활성화’를 목표로 맡은 소임을 다하면서, 해마다 모국방문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2023년도에는 충청도와 경기도 지역을 대상으로 남이섬, 단양팔경, 청주 청남대, 수덕사, 아산 현충사, 수원화성 등을 둘러보았다. 2024년도에는 전라도 지역과 백제 문화권으로 여수, 순천만, 부여, 공주, 천안 독립기념관 등을 답사하면서 백제의 역사와 역사 속의 한일 관계를 살펴보았다.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이한 올해에는 미야기민단 관계자(단장 이순오) 및 한국어 문화센터 수강생 25명을 인솔하여 5월 25일(일)부터 30일(금)까지 5박6일 일정으로 ‘제주도 모국방문 수학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2025년은 일본 미야기현에서 제주도민회가 결성된 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제주도는 역사적으로 온갖 시련과 굴곡이 많았던 지역으로 이런저런 사연으로 일본 땅으로 옮겨온 사람들이 많았다. 일본의 여러 지역에 제주도 출신이 많은 이유이다. 필자도 2년간 센다이에 살면서 동북지역의 제주도 출신의 동포에게서 ‘아직 한 번도 고향을 방문한 적이 없다’라는 말을 여러 번 듣고,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이하는 2025년에는 꼭 제주도로 모국방문을 할 기회를 만들겠다.”라고 약속했다. 약속대로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인 수강생들이 제주도를 찾아 우도, 성산일출봉, 섭지코지, 송악산, 주상절리 등 세계자연유산인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만끽하면서, 제주도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고, 별도로 방문한 제주도민회원 11명은 그리운 고향 땅을 밟게 되었다.
첫째 날, 센다이공항을 출발하여 인천공항에 도착한 후, 김포공항 국내선을 이용하여 오후 7시경에 제주공항에 도착하였다. 참가자 26명 중 대부분이 제주도를 처음 방문하는 터라 기대감으로 가득. 늦은 저녁에 제주도의 신선한 횟감으로 만찬을 즐겼는데, 맛있는 음식이 끊이지 않고 나와 모두 놀란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둘째 날, ‘우도’, ‘성산일출봉’, ‘섭지코지’를 둘러보았다. 제주도는 날씨 변화가 많은 탓에 20분이면 갈 수 있는 ‘우도’를 못 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제주도 방문 기간에 날씨가 화창하고,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아서 여행길에 오른 일행들이 어려움 없이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성산일출봉’은 대표적인 제주도의 관광명소로, 세계자연유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정상까지 540계단을 올라 일출봉 정상에서 바라본 제주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셋째 날, 오전에 제주 올레 코스와 송악산 둘레길을 걷고, 오후에는 주상절리와 본태박물관을 구경하였다. 제주도의 ‘올레’는 미야기현에서 ‘오르레(オルレ)’라는 명칭으로 알려져 2025년 현재 모두 7곳의 올레 코스가 개장되었다. 제주도의 ‘올레’ 브랜드가 후쿠오카에 이어서 미야기현에 제일 많은 올레 코스가 생겨났다는 것에서 우리 제주도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올레의 고장 제주도를 방문하여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수강생들과 함께 원조 올레길을 함께 걷게 되어 뿌듯함이 샘솟듯 올라왔다. 송악산 둘레길을 따라 걸으면서 돌고래 떼가 바다를 헤엄치는 멋진 광경이 연출되었다. 돌고래 가족이 모두 나와 일행을 환영해 주다니 모두 감동했다.
넷째 날, 오전에 제주도민회원 11명과 함께 제주도청을 방문하였다. 특히, 제주도민회의 이번 제주도 고향방문에서는, 임원진의 노령화와 차세대 회원의 참여 부족으로 운영상의 어려움에 따라 도민회 해산 결정을 하면서, 제주도청을 방문하여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자산을 매각한 일부 자산 일천만 원을 기부하였다. 제주지사(오영훈)의 “제주도민회 조직 해산 결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마지막까지 고향을 위해 기부까지 해준 마음에 깊이 감사드린다. 제주와 일본의 미래세대가 함께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만들어가는 것이 여러분의 마음에 화답하는 길”이라는 말이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오후에는 제주성읍민속촌을 방문하여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시간을 누렸다.
다섯째 날, 아침 일찍 제주에서 김포로 출발. 아쉽게도 제주도에서의 4박5일 간의 일정을 마치고 서울에서 마지막 귀중한 하루를 보냈다. 오후 개별 자유 시간을 갖기 전에 한복 체험을 했다. 최근에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예쁘게 한복을 차려입고 광화문 등 고궁을 거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 수학여행 단원들도 한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역시 대한민국의 의식주 체험을 해보는 것이 가장 훌륭한 한국을 이해하는 첩경이구나.’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마지막 여섯째 날, 5박6일 간의 ‘제주도 모국방문 수학여행’ 일정을 마치고 센다이로 돌아왔다.
2025년 제주도 모국방문 수학여행을 함께 한 미야기 문화센터 회원분들, 그리고 지난 50년 간의 세월을 인내하며 이겨내며 함께 해온 제주도민 회원분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폭싹 속았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