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교육기관포털 온라인소식지 Vol.11

본문 바로가기

한국학교 이야기 교원 이야기

칼럼·에세이
함께 성장하는 한울타리, 방콕한국국제학교

이효순 방콕한국국제학교 교사

사와디카! 뜨거운 햇살과 활기찬 미소로 하루를 여는 도시, 방콕.

2025년, 처음 이곳에 발을 내디뎠을 때의 낯선 설렘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그동안 학급 수가 많은 대규모 학교에서 근무하며 다수의 학생을 효율적으로 이끄는 방법을 고민해 왔다. 조직적으로 운영되는 교육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방콕한국국제학교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방콕한국국제학교는 초등 90명, 중고등 90명 등 전교생 약 180명으로 이루어진 작고 아담한 학교이다. 한 학년에 단 한 학급만 있는 이곳에서는 복도에서 마주치는 모든 학생의 이름을 알 수 있고, 학년을 넘어선 교류도 자연스럽다. 학생들은 서로를 가족처럼 대하고, 교사들은 학생 한 명 한 명을 진심으로 돌본다. 작기 때문에 더 가능해진, 깊이 있는 관계가 살아 숨 쉬는 교육공동체 속에서 진심이 통하는 교육을 다시 만났다.

방콕한국국제학교에서의 하루는 아침 식사로 시작된다. 급식실에서 교사와 학생이 자연스럽게 섞여 앉아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으며 하루를 연다. 점심시간에도 학년을 가리지 않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식사한다. “오늘 수업 재미있었어요”, “네 발표 멋졌어” 같은 따뜻한 말들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밥그릇 사이사이를 오간다. 이곳의 급식실은 단순한 식사 공간이 아닌, 관계가 자라고 정이 오가는 진짜 배움의 장이다. 나는 식사 시간 속에서 교육이란 결국 ‘같이 살아가는 일’이라는 걸 다시 느끼곤 한다.

이 작은 학교의 또 다른 강점은 교사들 사이의 협력하는 문화이다. 방과 후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동료 교사와의 짧은 대화 속에도 교육에 대한 고민과 아이디어가 넘쳐난다. “그 활동 해 봤어요? 이런 방식으로 바꾸니 아이들이 더 흥미 있어 해요.” 같은 말들이 오가고, 수업자료를 함께 만들거나 행사 준비를 함께하며 서로를 자연스럽게 돕는다. 경쟁보다 공감이, 비교보다 격려가 중심이 되는 이 문화는 교사로서의 나날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든다. 함께 고민하고, 함께 웃고,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은 나를 다시 ‘좋은 교사’가 되고 싶게 만든다.

방콕에서 처음 맡게 된 도서관 업무는 나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동안은 사서 선생님이 계신 환경에서만 일해왔기에 도서관 전체를 운영해야 한다는 사실이 처음엔 막막했다. 하지만 책을 정리하고, 독서 행사를 기획하고, 도서위원회 학생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는 모든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 ‘세계 책의 날’ 행사를 준비하며 도서위원들과 함께 진행한 활동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인기 책 투표, 릴레이 독서 미션, 스탬프 챌린지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 속에서 학생들은 책 속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며 즐거워했고, 나는 그 모습을 통해 ‘책은 결국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라는 평범하지만 강력한 진리를 다시 깨달았다.

무엇보다 고마운 존재는 학부모 도서위원들이다. 바쁜 와중에도 자발적으로 도서관에 오셔서 책을 정리하고, 학생들의 손길이 닿는 책장 구석구석 물걸레질을 해주신다. 그분들의 진심 어린 동행 덕분에 도서관은 단지 책이 놓인 공간이 아니라, 교사·학생·학부모가 함께 살아 숨 쉬는 공동체의 중심이 되었다. 최근에는 교과서에 실린 동화책 작가와의 만남을 기획하고 있는데, 학생들에게 작가와 직접 소통하는 경험을 선물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가 크다.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리더십이 있다. 교장·교감 선생님은 교사들의 작은 의견에도 귀 기울여주시고, 학교의 방향을 함께 고민해 나가신다. 일방적인 지시가 아닌, 함께 길을 찾는 방식은 교사로 하여금 자율성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게 만든다. 내가 교육자로서 더욱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덕분에 나는 이곳에서 ‘혼자만의 교실’이 아니라 ‘함께 이끄는 학교’를 꿈꾸게 되었다.

‘라우 싸맛 탐다이 툭양’

태국어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이 말처럼, 이 작은 학교에서는 정말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믿게 되었다. 방콕에서의 교사 생활은 단순한 해외 근무가 아니다. 매일 같이 교육의 본질을 되묻고, 관계 속에서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시간이다. 학생들과 웃고, 동료 교사들과 나누며, 학부모와 함께 학교를 만들어가는 지금 이 순간이, 나를 다시 ‘교사’라는 이름으로 서게 한다. 따뜻한 울타리인 교육공동체 속에서 나는 매일 교사로서 더 깊이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