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림 서울대학교 인문계열 / 자카르타한국학교 졸업
전 세계 재외한국학교 후배님들, 안녕하세요!
저는 인도네시아의 덥고 습한 공기를 마시며 중3부터 고3까지 자카르타한국학교를 다녔던 선배입니다. 베트남, 중국, 혹은 남미 어디에 있든 '재외한국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실 여러분이 참 반갑습니다. 저는 연세대학교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이지만,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은 화려한 성공담보다는 ‘위기 속에서 나를 지키며 공부하는 전략’입니다.
저는 고3 진급을 앞둔 겨울, '초중증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희귀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입시를 위해 달려야 할 가장 중요한 시기에 "치료받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을 듣고 일 년간 휴학해야 했죠. 친구들이 졸업사진을 찍으며 미래를 꿈꿀 때, 저는 항암 치료와 골수 이식의 고통을 견디며 무균실 천장만 바라봐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절망적인 병실 생활 속에서 제가 깨달은 두 가지 실전 공부 전략을 여러분께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하기 싫은 공부를 버티게 해주는 '도피처 공부'를 만드세요. 한국 대학 진학을 꿈꾸는 우리에게 TOEFL은 피할 수 없는 숙제죠. 저 역시 병실에서 토플 공부를 했지만, 항암 치료로 몸이 괴로운데 영어 지문까지 보고 있으면 정말 구역질이 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쓴 전략은 ‘과목 교차 학습’이었습니다. 영어가 죽도록 싫을 땐, 차라리 국어책을 폈습니다. "공부하기 싫어서 공부를 한다"는 게 역설적이죠? 하지만 뇌가 지쳤을 때 책을 덮는 대신 사용하는 뇌의 영역을 바꿔주는 것이 슬럼프를 막는 최고의 방법이었습니다. 여러분도 특정 과목이 막힐 땐 자책하지 말고 과감하게 다른 과목으로 합법적 도피를 하세요. 멈추지만 않는다면 그것은 전진입니다.
둘째, '재외한국학교'라는 환경을 200% 활용하세요. 저는 중학교 때까지 국제학교를 다녔는데, 정해진 교과서가 없어 예습 기준을 잡기가 참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한국학교 전학 후 만난 EBS는 최고의 가이드라인이었습니다. 특히 혼자 공부하기 힘든 문학은 병실에 누워 EBS 강의를 라디오처럼 들으며 작가의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했습니다. 재외한국학교의 커리큘럼은 한국 입시와 가장 직결된 무기입니다. 해외에 있다는 불안감 대신, 한국의 체계적인 콘텐츠를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장점에 집중해 보세요.
다시 학교로 돌아와 맞이한 졸업. 손에 들린 꽃다발보다 더 향기로울 후배들의 꿈을 응원하며.
돌이켜보면 일 년의 투병 생활 동안 저를 지켜준 건 엄청난 독기가 아니라, "나는 환자이기 전에 학생이다"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했던 몸부림이었습니다. 링거 줄이 달린 손으로 펜을 잡았을 때 비로소 저는 아픈 사람이 아닌 꿈 꾸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니까요.
타지 생활이 외롭고 성적 때문에 작아지는 날이 분명 올 것입니다. 하지만 생사의 갈림길에 있던 저도 해냈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책상 앞에 앉아 펜을 쥔 여러분은 이미 충분히 강하고 가능성 있는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요즘 다시 화제가 되는 영화 <주토피아>의 주인공 주디 홉스의 대사를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낯선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에게 큰 울림이 되길 바랍니다.
"현실은 엉망진창이고, 우리 모두에겐 한계가 있어. 하지만 우린 계속 시도해야 해."
병실에 갇혀 있던 저에게도, 타지에서 싸우는 여러분에게도 현실은 때로 엉망진창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펜을 잡는 그 시도가, 결국 우리를 무엇이든 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여러분의 찬란한 미래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선배가-